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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사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1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고향인 코르시카에서 슬픈 편지 한 통이 그에게 배달되었습니다. 그 ‘슬픈 편지’를 우리는 ‘부고’ ‘부음’ ‘통부’ ‘휘음’ 등으로 부릅니다. 즉, ‘부고’(訃告)란,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글’입니다. ‘부보’(訃報)나 ‘부음’(訃音)이나 ‘통부’(通訃)나 ‘휘음’(諱音) 등이 모두 같은 말입니다. 보통 ‘부고를 받다.’라고 말합니다.
나폴레옹이 받아서 펼쳐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기별이었지요. ‘죽은 사람’을 가리켜서 ‘황천객’(黃泉客)이라고 합니다. ‘황천’은 ‘중국 오행(五行)에서 땅의 빛을 노랑으로 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이는, ‘땅속의 샘’ 또는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곳, 즉 저승’을 이릅니다. 이를 다른 말로는, ‘구천지하’(九泉地下)라고도 일컫습니다.
그리고 높임말로 ‘죽음’을 ‘작고(作故)하다.’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타계(他界)하다.’라고 하기도 하지요. ‘타계’는 ‘다른 세계’, 즉 ‘저승’을 가리킵니다. 이 말의 본뜻은 ‘불교의 십계(十界) 가운데 인간계 이외의 세계’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별’(奇別, 寄別)은 ‘소식을 전한다.’ 혹은 ‘소식을 전하는 통지’ 등을 가리킵니다. 조선시대에 임금의 명령을, 들이고 내는 관청은 ‘승정원’(承政院)입니다. 이 곳에서는 그 전날에 처리한 일들을 적어서 매일 아침마다 널리 알렸습니다. 일종의 관보(官報)라고 할 수 있는, 이를 가리켜서 ‘기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별을 담은 종이’는 당연히 ‘기별지’(奇別紙)라고 불렀겠지요. 어떤 일이 확실히 결정되었는가를 알려면, 무엇보다 먼저 이 기별지를 확인해야 되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일이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물을 때, ‘기별이 왔는가?’라고 말하는 이유도 그 연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폴레옹은 구로지감이 밀물처럼 차올랐습니다. ‘구로지감’(劬勞之感)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는 임종을 못한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질 듯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임종’(臨終)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운명할 때에 그 옆에 모시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다른 말로는 ‘종신’(終身)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미어지다.’는 ‘무엇인가 꽉 차서 터질 것 같은 일반적인 상황’에 두루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주로 씁니다. 본뜻은 ‘종이나 천이 압력을 받거나 팽팽하게 당겨지면 그 압력 때문에 터지게 됨으로써 구멍이 뚫리거나 틈이 벌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요. 나폴레옹은 당장 코르시카로 달려가서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보고 싶었겠지요. 아버지가 ‘코르시카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던 목소리도 들리어 오는 듯했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풍수지탄으로 눈물만 하염없이 흘릴 뿐이었습니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은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어버이를 여읜 자식의 슬픔’을 이르는 말입니다. 같은 뜻으로 ‘풍목지비’(風木之悲) 또는 ‘풍수지감’(風樹之感) 등의 말이 있습니다. ‘하염없다.’의 본뜻은 ‘하는 것이 없다.’입니다. 지금은, ‘시름에 싸여 멍하니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나 끝맺을 데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어머니의 붕성지통이 얼마나 클까를 생각하고, 나폴레옹은 더욱 슬픔에 젖었습니다. ‘붕성지통’(崩城之痛)은 ‘성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이란 뜻으로, ‘남편을 여읜 아내의 슬픔’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와 반대로 ‘아내를 여읜 슬픔’을 ‘고분지통’(鼓盆之痛)이라고 합니다. 이는, ‘물동이를 두드리며 한탄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곧잘 ‘남편을 여의고 홀로 된 여인들을 부를 때’에 ‘미망인’이란 말을 씁니다. 그런데 이는 마땅하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 하면, 원래 ‘미망인’(未亡人)이란 ‘남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못한 여인’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가부장제도 아래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는 일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미망인’은 그 때에 생겨난 말이지요. 본래는 ‘홀로 된 여자’를 낮춰 부르던 이 말이, 오늘날에는 ‘남편을 여읜 여자’를 높이는 말처럼 사용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순’(矛盾)은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래 ‘모순’은 ‘창과 방패’를 이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옛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옛날, 중국의 초(楚)나라에 ‘창’(矛)과 ‘방패’(盾)를 파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의 창과 방패를 팔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창은 어떤 방패라도 다 뚫을 수 있소. 그리고 이 방패는 어떤 창이라도 모두 막을 수 있소.”
그러자 많은 구경꾼 중에서 한 사람이 나서서 물었습니다.
“그럼, 당신의 창을 당신의 방패로 막는다면 어찌되겠소?”
그 말에 장사꾼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답니다.
그 장사꾼의 말을 ‘궤변’이라고 합니다. ‘궤변’(詭辯)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로 그럴 듯하게 둘러대는 말솜씨’를 가리킵니다. 궤변 중에서도 ‘견백동이’라는 말이 특히 유명합니다. ‘견백동이’(堅白同異)는 ‘중국 전국시대의 공손용(公孫用)의 궤변’입니다. 그는 ‘단단하고 흰 돌은 눈으로 보아서 희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단단함은 알 수 없으며, 손으로 만져 보아서 단단한 것은 알 수 있으나 빛깔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단단한 돌과 흰 돌은 동일물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일을 가리켜서 ‘자가당착에 빠졌다.’라고 말합니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은 ‘언행의 앞뒤가 맞지 않음’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자기모순’(自己矛盾) 또는 ‘모순당착’(矛盾撞着)이라고도 합니다. (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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