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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어머니도 만나서 그 큰 슬픔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도 없었을 테지요. 그저 애만 끊어질 듯했을 겁니다. ‘애가 끊어질 듯하다.’는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애’는 ‘창자’를 가리키는 옛말입니다. 그러나 요즘에 흔히 말하는 ‘애가 끓는다.’든지 ‘애 먹다.’라든지 ‘애 타다.’라는 등에 쓰이는 ‘애’는 앞에 말한 ‘애’와는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앞의 ‘애’는 ‘창자’를 나타내지만, 뒤의 ‘애’는 ‘근심에 싸인 마음속’을 가리킵니다.
사관학교의 규칙은 아주 엄격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생도는 학교에서 멀리 떠날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슬픔을 꾹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또 참았습니다. ‘참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됩니다. ‘참을 인자(忍字) 셋이면 살인(殺人)도 피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참을성이 많으면 몹시 노여운 일이라도 잘못되게 할 일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나폴레옹은 현명한 사람이기에 그 ‘참는 마음’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바꾸고는 절차탁마로 열심히 공부에 임했습니다. ‘절차탁마’(切磋琢磨)는 ‘옥과 돌을 갈고 닦아서 빛을 낸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덕(德)을 쌓고 학(學)을 이루는 것도 그와 같이 전력을 다하여 닦고 다듬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침내 나폴레옹은, 엔간한 성적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엔간하다.’는 앞에서 설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복습해 볼까요? 이는, ‘호락호락하지 않고 웬만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입니다. 원래는 ‘어연간하다.’의 준말이지요. 다시 말해서 ‘어떤 표준에 가깝거나 정도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알맞다.’라는 말입니다.
이 때, 나폴레옹의 나이는 16살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새파란 나이입니다. 아직도 전도요원합니다. ‘전도요원’(前途遼遠)이란, ‘앞으로 갈 길이 아득히 멀음’을 뜻하고, ‘목적하는 바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멀음’을 나타냅니다.
나폴레옹이 16살의 어린 나이로 사관이 된 반면에, 나는 40살이 넘어서야 늦깎이로 문인이 되었습니다. ‘늦깎이’는 ‘세상 이치를 남보다 늦게 깨달은 사람’을 보통 이릅니다. 그 외에도, 나이가 들어서 장인 등으로 ‘무슨 일에 우뚝 서게 된 사람’이거나, 과실 또는 채소 따위의 ‘늦게 익은 것’ 등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본래는 ‘늦게 머리 깎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나이가 들어서 머리 깎고 스님이 된 사람’을 가리켰지요. 물론, 지금도 이 뜻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답니다.
프랑스 남쪽에 있는 ‘바랑스’라고 불리는 조그만 읍이 있었는데, 그 읍을 한 포병부대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때가 1785년입니다. 이로써 프랑스에는 그 당시에 벌써 포병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는 광무(光武) 4년인 1900년에 베풀어진 포병대가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는, 시위대(侍衛隊)에 딸렸으며 산포와 야포로 조직되었습니다. ‘산포’(山砲)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산지 따위의 전투에 적합하도록, 전체를 몇 개로 분해하여 따로 운반하기 쉽게 된 작은 대포’를 말합니다. 그리고 ‘야포’(野砲)는 ‘야전포’(野戰砲)의 줄임말이며, 글자 그대로 ‘들에서 벌이는 전투에 사용되는 대포’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포병대는 융희(隆熙) 원년에 폐지되었다는군요. ‘융희’는 조선조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의 연호입니다.
(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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