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92) 수에즈 운하를 계흭하다

시조시인 2008. 11. 27. 22:24

(92)

  또한,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배로 갈 수 있도록 수에즈 운하를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마, 어린이들 중에는 이 말이 금시초문인 사람들이 많을 듯합니다. ‘금시초문’(今始初聞)은 ‘듣느니 처음’ 또는 ‘이제야 비로소 처음 들음’을 나타냅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금시초견’(今始初見)이 있습니다. 이는, ‘보느니 처음’ 또는 ‘이제야 비로소 처음 봄’을 가리킵니다. 수에즈 운하를 처음으로 계획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폴레옹이라니 말입니다. 또 한 번, 그의 선경지명에 놀라움을 갖게 됩니다. ‘선경지명’은 앞에서 설명했지요?

그럼 여기에서 ‘수에즈 운하’에 대하여 대강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수에즈’(Suez)는, 통일아랍공화국의 북동부에 위치한, 홍해 연안에 있는 항만 도시입니다. 즉, 수에즈 운하의 남단인데, 카이로와도 철도로 연결된답니다.

16세기에는 오토만 제국의 해군 근거지였다고 합니다. ‘오토만 제국’(Ottoman 帝國)은 ‘오스만 제국’(Osman 帝國)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오스만1세가 셀주크(Seljuk) 제국이 쇠하여짐에 따라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세운 회교국가입니다. 16세기에는 극히 성하여 그 영토가 아시아와 유럽 및 아프리카의 세 대륙에 걸쳤으나, 17세기 말부터 쇠퇴하여 제1차 세계대전 후에 국민혁명에 의하여 멸망되었습니다.

‘수에즈 운하’(-運河)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경계인 수에즈 지협(-地峽)을 인공적으로 뚫음으로써 홍해와 지중해를 이은 운하이지요. 이 운하를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레셉스(Lesseps)입니다. 그는, 1858년에 ‘만수수에즈해양운하회사’를 설립하여 1869년 11월에 수에즈 운하를 개통하였습니다. 그리고 1888년에 콘스탄티노플 조약에 의해서 각국 선박의 자유항해가 인정되었습니다.

만일에 나폴레옹이 좀더 이집트에 머물면서 이 운하를 완성시켰다면, 이는 아마도 그의 가장 큰 업적이 되었겠지요. 다시금 ‘시불가실’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시불가실’의 뜻은 가슴에 새겨 두고 있겠지요?

이집트에 있는 나폴레옹에게 프랑스 신문이 전달되었습니다. 그 신문에는 프랑스의 여러 소식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차근차근 신문을 읽어 나가던 중에 갑자기 책상을 치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아아, 이게 무슨 일인가? 프랑스가 외국 군대의 공격을 받고 있다니! 이제 우리는 프랑스로 돌아가야 한다.”

그의 말대로 박부득이 서둘러 이집트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박부득이’(迫不得已)는 ‘일이 매우 급하여 어찌할 수가 없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는 ‘박어부득’(迫於不得)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철수’(撤收)는 ‘군대의 주둔지에서 모든 장비를 거두고 물러남’을 말합니다.

그가 그렇듯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는 일구월심으로 코르시카의 평화와 부강을 바라고 있었지요. 프랑스가 침략을 받는다면, 코르시카도 곤란을 겪게 됩니다. 그렇기에 나폴레옹은 순망치한을 걱정하였을 겁니다. ‘일구월심’(日久月深)은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순망치한’(脣亡齒寒)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이해관계가 서로 밀접하여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보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