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93) 나폴레옹을 프랑스로 돌아오게 하다

시조시인 2008. 11. 28. 09:38

(93)

  그래서 영국은 이집트까지 쫓아와서 프랑스 함대를 공격하기도 했고, 이제는 프랑스 본토를 공격함으로써 이집트에 나가 있는 나폴레옹을 다시 돌아오게 하려는 계책을 쓴 듯합니다. 이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고금동서’(古今東西)는 ‘예와 이제, 동양과 서양’의 뜻으로 ‘이제까지의 모든 시대와 모든 지역’을 나타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해방도 그와 비슷한 경로로 맞게 되었군요. 1945년 8월에 연합군이 일본 본토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원자탄으로 공격하지 않았다면 일본이 그리 쉽게 항복할 리가 없었겠지요. 그 당시에 세계 여러 곳에 나가 있던 일본 군대의 힘은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본토에서 그러한 일을 겪었으니 무슨 수가 있었겠습니까? 항복하는 도리밖에 없었겠지요. 그 때의 엄청난 원폭 피해상황을 조금 옮겨 보겠습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일본의 히로시마 하늘에 미국의 ‘비29’(B29) 폭격기 한 대가 나타나서 단 한 개의 폭탄을 떨어뜨리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폭탄은 570미터 상공에서 곧 폭발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폭발이 있었는지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그저 그들은 ‘번쩍’ 하는 빛만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나타난 참상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폭발한 중심지 부근에서는, 건물이며 가로수며 사람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가 섭씨 수천 도의 열에 의해 한 순간에 증발해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런 형체도 남기지 않고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반경 5백 미터 내에서는 기와가 녹아 버렸고, 3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는 숲이 불탔으며, 4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져 있었던 사람들도 노출된 피부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 있던 건물들은 거의 무너져 버렸습니다.

열과 폭풍이 지나간 다음에는 검은 먼지와 방사능 낙진이 히로시마를 뒤덮었습니다. 강물에는 수많은 시체가 떠내려가고, 거리는 온통 불구덩이가 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심한 화상도 고통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각종 장애와 만성 후유증 등으로 평생을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3일 뒤에는 나가사키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너무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지요?

그 때의 원폭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압니까?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만, 히로시마에서 16만 명이고, 나가사키에서는 7만5천 명이었답니다. 그 외에 화상을 당하였거나 간접 피해를 당한 사람들까지 합친다면 부지기수일 터이지요. ‘부지기수’(不知其數)는 ‘그 수를 알지 못함’ 또는 ‘매우 많음’을 나타냅니다.

  그리 뜨거운 맛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직도 못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채, 우리 독도를 탐내고 있습니다. 언제 철들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옛날의 전쟁과는 달리, 지금의 전쟁은 대학살을 하게 됩니다. 그 참상이 너무나 끔찍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무서운 폭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명분으로도,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