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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폴레옹은 이집트에 학사원을 만들고, 학자들로 하여금 이집트의 역사를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그 조사는, 그냥 책을 통해서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보고 하는 연구이기에 아주 의미가 깊습니다. ‘백문불여일견’이란 말이 여기에 맞겠네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은 ‘여러 번을 말로만 듣는 것보다 실제로 한 번을 보는 게 더 나음’을 말합니다. 이 말에는 이런 고사가 있습니다.
중국 한(漢)나라에 조충국(趙充國)이란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흉노족과의 싸움에 원정하였고, 흉노나 ‘강’이란 민족을 토벌하는 장수로 유명해졌습니다. ‘강’(羌)은, 중국 서방의 변두리에 흩어져 있던 티베트 계(Tibet 系)의 유목민족입니다.
그런데 조충국의 나이가 70살이 넘었을 때, 그 ‘강’이 한나라로 쳐들어왔습니다. 그 기세가 대단해서 한나라 군사는 크게 패하였습니다. 한나라 왕은 급히 조충국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토벌군의 장수로 누구를 보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장 조충국은 회답하기를, 자기가 가장 적당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자천’(自薦)이라고 합니다. 그는 곧 왕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장군이 강을 토벌하려면 어떤 묘책이 있소? 또 군사는 얼마나 필요하오?”
조충국은 수문수답하는 모습이 아주 시원했습니다. ‘수문수답’(隨問隨答)이란, ‘묻는 대로 거침없이 대답함’을 나타냅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습니다. 원컨대 현지에 가서 보고 도면으로 방책을 올리겠습니다.”
이집트로 온 학자들은 피라미드 연구도 했습니다. 그럴 때, 어떤 사관이 로제트에서 이상한 돌을 발견하여 학자들에게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 돌에는 아주 오래된 이집트 문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바로 그 돌을 가리켜서 ‘로제타 석’(Rosetta 石)이라고 합니다. ‘로제트에서 발견한 돌’이라는 뜻입니다.
‘로제트’는, 통일아랍공화국의 북동부에 위치한, 나일 강의 어귀 가까이에 있는 상업도시입니다. 1799년에 ‘로제타 석’이 그 곳에서 발견됨으로써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면 ‘로제타 석’은 무엇이기에 그리 소중하게 여기는 걸까요? 이는, 한 마디로 석비(石碑), 즉 ‘돌비석’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원전 196년에 이집트의 신관들이 총회에서 결의를 한 내용이 그 안에 적혀 있다는 겁니다.
‘신관’(神官)은 ‘신에 관한 일에 종사하는 관리’를 가리킵니다. 즉, ‘로제타 석’은 상형문자와 고대의 민간에서 사용하던 글자 및 그리스 문자의 세 가지 글씨로 검은 현무암에 이집트 왕인 프롤레마이오스 5세에 대한 찬사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돌의 발견으로 오랫동안 베일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이집트 문자의 수수께끼도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무암’(玄武岩)은 ‘화산암의 한 가지인데, 빛깔은 흑색이나 짙은 회색이며, 질이 매우 단단한 돌’을 말합니다. 그리고 ‘베일’(veil)은,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거나 꾸미기 위해서, 쓰거나 두르는 망사와 같이 얇은 천’을 나타내는데, ‘무엇을 싸서 숨기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로제타 석’의 연구는 1882년에 프랑스 학자인 샹폴리용에 의해 빛을 보게 됩니다. 그는 ‘로제타 석’과 ‘오벨리스크의 명문’을 비교하여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성공했습니다. ‘명문’(銘文)은 돌 따위에 새긴 글‘을 말합니다. 그로써 그는 새로이 ‘이집트 학’(-學)을 창시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말년에 이집트 문법과 사전을 거의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이집트에 대하여 이제까지 몰랐던 흥망성쇠의 오랜 역사가 조금씩 청천백일 아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흥하여 일어남과 망하여 세력이 약해짐’을 가리키고, ‘청천백일’(靑天白日)은 ‘환하게 밝은 대낮’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오벨리스크’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벨리스크’(Obelisk)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이나 왕 무덤에는 제전이 있는데, 그 앞에 세워진 ‘네모의 끝이 뾰족한 돌기둥’을 말합니다. 그 기둥의 면에 상형문자로 임금의 공적이나 그 외의 명문 및 도안이 새겨져 있답니다. 높이가 20미터가 넘는 게 많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문화재를 더욱 소중히 생각하여 보존하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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