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도 근친끼리는 결혼을 피한다
김 재 황
젊은 남녀가 고아원에서 만난 후에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워낙 외롭게 살아온 터라, 두 사람의 사랑은 쉽게 뜨거워져서 곧 결혼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를 어찌하랴. 그들은 어렸을 적에 헤어진 오누이 사이였으니.
두 사람은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며 서로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별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그들은 끝내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참으로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귀뚜라미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 행동을 보면, 쉽고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때쯤, 댓돌 밑에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귀뚜라미는 앞으로 닥칠 겨울을 걱정하여 우는 것인가. 아니다. 귀뚜라미는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서 세레나데(serenade)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암수의 귀뚜라미 모두가 우는 게 아니라, 수컷만이 암컷을 애타게 부르며 운다.
암컷은 수컷의 울음소리를 듣고,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선택한다. 물론, 그 울음이 얼마나 힘차고 아름다운가를 따질 것이겠지만, 그들은 다른 조건도 알아보는 성싶은 행동을 한다.
학자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암컷은 수컷 가까이로 다가가서 위턱과 아래턱 촉수를 사용하여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귀뚜라미의 촉수 끝에는 감각세포가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수컷의 몸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을 감지하여 근친 관계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암컷은, 가까운 혈통이 아닌 수컷을 자신의 짝으로 선택한다고 한다. 서로가 풍기는 화학물질은 가까운 근친일수록 비슷한 냄새를 지니고 있을 것이므로, 알맞은 상대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또 도덕적인가. 귀뚜라미의 암컷은, 수컷이 가까운 혈족으로 일단 밝혀지면, 절대로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놀랍다.
귀뚜라미의 수컷은 앞다리에 청기(聽器)가 있고, 발성기(發聲器)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종류가 꼭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귀뚜라미는 온 세계의 열대와 온도에 분포하는데, 자그마치 1천2백여 종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귀뚜라미를 비롯해서 검정귀뚜라미․왕귀뚜라미․애귀뚜라미․알락귀뚜라미 등을 만날 수 있다.
보통의 귀뚜라미는 몸길이가 약 15㎜ 정도가 된다. 몸빛은 진한 갈색이고, 복잡한 얼룩점을 지닌다. 더듬이가 몸보다 길 뿐더러, 뒷다리도 긴 편이다. 그 반면에 뒷날개는 작아서 퇴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꼬리 끝에 산란관이 있는데, 그것을 땅속에 꽂고는 알을 낳는다. 알은 땅속에서 겨울을 난다.
가을밤에 듣는 귀뚜라미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쓸쓸하게 흔들어 놓는다. 여기서 ‘귀뜰 귀뜰’, 저기서 ‘귀뜰 귀뜰’. 자기의 짝을 찾아서 애달프게 노래하는 귀뚜라미 소리에, 가을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귀뚜라미를 한명(漢名)으로는 ‘실솔’(蟋蟀), ‘청렬’(蜻蛚), ‘촉직’(促織)이라고 부른다. 그 모두가 그 울음 소리에서 비롯된 것인 성싶다. 그러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들은 지가 언제였던가. 지금은 일부러 들으려고 해도 듣기 어렵게 되었다. 어디를 가나,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콘크리트로 포장을 하여 놓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농약을 어찌나 뿌려 댔던지, 시골에서도 귀뚜라미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귀뚜라미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도덕심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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