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공자께 시를 다시 여쭙다
-강상기 시인의 신작시 15편
김 재 황
(1)
시는 왜 쓰는가?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수신(修身)의 방편(方便 upāya)’이라고 답하겠다. 문인이라면 마땅히 수신을 해야 될 퇴이고, 수신을 하려면 마땅히 시를 지어야 한다. 물론, 내 자신이 시를 짓기도 게으르게 하지 말아야 되겠지만, 남의 시를 읽기도 게으르게 하면 안 된다. 그 안에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小子 何莫學夫詩. 詩 可以興 可以觀 可以羣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소자 하막학부시. 시 가이흥 가이관 가이군 가이원, 이지사부 원지사군. 다식어조수초목지명).”(양화9) 이는, ‘너희들은 왜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그것으로 느낌을 자아낼 수 있고 그것으로 여럿이 모일 수 있으며 그것으로 원망할 수 있고, 가까이로 아버지를 섬기고 멀리로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씀 중에서 특히 ‘여럿이 모일 수 있음’에 주목한다. 나는 2월 23일 동방문학 모임에 참가했는데, 그날 나는 ‘동방문학통권 제88호’를 받게 되었고 그 책에서 강상기 시인의 신작 15편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승 공자께 강 시인의 작품을 보여 드린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말씀을 생각해 보았다.
(2)
그녀는 독립운동가였다
잔인한 일제 형사의 고문으로
그녀는 두 눈이 뽑혔다
그녀는 외쳤다
나는 지금 두 눈이 없다
그러나 머지않아 일제가 망하고
우리가 승리하는 날이 환하게 보인다.
-작품 ‘눈이 없어도 보인다’ 전문
스승 공자님과 제자 자공(子貢)이 나눈 말을 본다.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자왈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자공왈 “시운여절여차 여탁여마 기사지위여.” 자왈 “사야 시가여언시이의. 고저왕이지래자.”)>(학이15) 이는, <자공이 말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돈이 많아도 교만하지 아니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그 길을 즐기고 돈이 많으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 담긴 여절여차 여탁여마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자공)야, 비로소 함께 시를 논할 만하다. 지나간 일을 말하면 돌아올 일을 아는구나.”>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나는 ‘고저왕이지래자(지나간 일을 말하면 돌아올 일을 아는구나.)’에 주목한다. 그렇다. ‘지나간 일을 말했을 때, 돌아올 일쯤은 알아야’ 시를 함께 논할 수 있다. 앞의 시에서 ‘눈을 잃은 독립운동가’는 시인 자신이다. 어찌 미래가 보이지 않겠는가.
온통
꽃밭인데
한쪽에서는
웃음꽃
또 한쪽은
지는 꽃
-작품 ‘명암’ 전문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본다.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관저 낙이불음 애이불상).”(팔일20) 이는, “‘관저’라는 시는 즐거워하되 어지럽지 않고, 슬퍼하되 몸을 다치게 하기에 이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관저’에서 ‘관’은 ‘새 울음의 의성어’라고 하며, ‘저’는 ‘물수리’를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 뜻은 ‘물수리 울다.’이다. 이 시는 ‘어여쁜 처녀를 짝사랑하는 노래’라는데 시경의 첫 자리를 의젓하게 차지하고 있다.
짝사랑의 아픔은,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른다. 세상이 온통 꽃밭이어도 그녀의 눈짓 하나에 웃음꽃도 피고 그녀의 싸늘한 눈길에 철렁하고 마음의 꽃이 진다. 물론, 이 세상에서도 명암이 분명하여 웃음꽃이 있는가 하면 울음 꽃도 있게 마련이다. 언제나 우리의 삶은 명암이 교차되고 이를 우리는 피할 수도 없다. 그러니 공자님 말씀대로 ‘즐겁더라도 어지러운 마음을 갖지 말고, 슬프더라도 몸을 다치게 하기에 이르지 말아야’ 한다.
황금빛 은행잎이 바람에 나부낀다
은행나무가 전부 황금이라면
다가오는 겨울 추위와 배고픔을
걱정 안 해도 좋으련만-
실업과 배고픔에 누렇게 뜬 사람들의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인다.
-작품 ‘은행나무’ 전문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본다.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 不去也. 君子 去仁 惡乎成名. 君子 無終食之間 違仁 造次 必於是 顚沛 必於是(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 득지 불처야, 빈여천 시인지소오야 불이기도 득지불거야. 군자 거인 오호성명. 군자 무종식지간 위인 조차 필어시 전패 필어시).”(이인5) 이는, “부귀는 누구나 바라는 바이지만 바른 길로 얻은 게 아니라면 머무르지 아니하고, 빈천은 누구나 싫어하는 바이지만 바른 길로 얻은 게 아니라도 버리지 아니한다. 군자가 어짊을 버리고 어찌 이름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 먹는 동안이라도 어짊을 어기지 아니하고 다급한 때라도 반드시 어짊에 있고 넘어져서 자빠지는 때라도 어짊에 있어야 한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불이기도 득지 불처야’(바른 길로 얻은 게 아니라면 머무르지 아니하다.)에 주목한다. 설령 떨어져서 땅에 구르는 은행나무 잎이 황금이라고 하여도 마음대로 주워서 쓰면 안 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라에서도 국민들에게 공짜로 돈을 나누어 주면 안 된다. 올바른 일을 해서 떳떳하게 돈을 받도록 해야 한다. 공짜는 사람의 마음을 썩게 만든다.
다행이 은행나무 잎에서 약재를 얻을 수 있으니 이 잎은 돈이 되기는 한다.
도시의 건물마다
따닥따닥 붙은 광고판을 보라
광고판이 눈을 부릅뜨고
몸부림을 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호객행위가 처절하다
-작품 ‘광고판을 보며’ 전문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본다.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부문야자 색취인이행위 거지불의 재방필문 재가필문).”(안연20) 이는, “대체로 소문을 바라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짊을 행하는 척하고 실제로 행동은 어긋나면서도 조금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나라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겉으로만 소문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라는 뜻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광고’라는 것도 ‘소문을 퍼뜨리는 일’이니 ‘색취인위행위’(어짊을 행하는 척하고 행동은 어긋난다.)이기에 크게 믿을 것이 못 된다.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또 다른 공자님 말씀을 본다. “巧言令色 鮮矣仁(교언영색 선의인).”(학이3) 이는, “예쁘게 꾸민 말과 곱게 꾸민 얼굴빛에는 어짊(착한 마음)이 드물다.”라는 뜻이다. 속이는 말일수록 달콤하게 들린다. 광고가 바로 그렇다.
잎과 꽃이 서로 볼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다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는
그날을 향하여
뜨겁게 외치는 저 붉은 함성
우리는 하나다.
- 작품 ‘상사화 군락과 함께’ 전문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본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위정15) 이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롭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배움’을 꽃이라고 하면 ‘생각’을 ‘잎’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에게 있어서도 잎만 있어서도 안 되고 꽃만 있어서도 안 된다. 둘 모두 있어야 한다. 모두가 공존해야 되니 그것은 하나일 수밖에.
식물에게 있어서 꽃과 잎은 그 역할이 다르니 반드시 서로 만나야만 될 필요는 없다. 그 나름의 생존을 위한 방책으로 스스로가 그 시기를 결정할 뿐이다. 반드시 하나가 아니어도 좋다. 먼 피붙이보다 가까운 이웃이 좋을 수도 있다. 우리의 부부 사이를 생각해 보자. 남편과 아내가 하나라는 구속보다는, 서로 다르게 아끼는 배려가 필요하다.
물위를 걷는
맨발이 아니다
붉은 양탄자를 밟는
악어가죽 빛나는 구둣발이 아니다
사람의 심장을 함부로 짓밟는
군화발이 아니다
군사분계선을 드나드는
남북정상의 저 아름다운 발
-작품 ‘2018년 4.27의 발’ 전문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본다.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인이무신 부지기가야. 대거무예 소거무월 기하이행지재).”(위정22) 이는,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 마땅함을 알지 못한다. 큰 수레에 ‘예’(멍에가로맥이, 끝채)가 없든가 작은 수레에 ‘월’(멍에맥이, 쐐기)이 없으면 그 무엇으로 끌어가겠는가.”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예’나 ‘월’이 모두 ‘믿음’을 나타낸다고 본다.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손잡고 드나드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두 사람 모두가 진정한 믿음을 지니고 한 행동이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요즘의 정치판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살기 아니면 죽기이다. 전쟁터에는 믿음이 없다.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 된다. ‘병불염사’(兵不厭詐)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이는, ‘전쟁에 관한 일이라면 속임도 꺼리지 않음’을 나타낸다. 어느 나라에서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서 졌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속여서라도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조국과 민족 생각에 골몰해 길을 걷다가
마주 오는 보행자와 부딪쳤다
이, 늙은이가!
똑바로 보고 다녀!
젊은이가 소리쳤다
그래! 똑바로 보니까
네 놈과 부딪치는구나
중얼거리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작품 ‘똑바로 보기’ 전문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본다.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유인자 능호인 능오인).”(이인3) 이는,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남을 좋아할 수도 있고 남을 미워할 수도 있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늙은 사람일수록 어짊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요즘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손자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탕 몇 개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손에 쥐어주곤 한다.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하는데, 그런 젊은이가 노인이라고 싫어하겠는가. 노인들이 모든 일에 솔선수범해야만 한다.
공자님과 그 제자가 나눈 말을 본다. <樊遲 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번지 문인. 자왈 “애인.” 문지, 자왈 “지인.”)>(인연22) 이는, <제자인 ‘번지’가 어짊에 대하여 물으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남을 아낌이다.” 다시 앎에 대하여 물으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남을 알아봄”이다.>라는 뜻이다. 기독교의 10계명 중에서 가장 큰 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인데, 그것 하나만 실천하면 온 세상이 환하게 된다. 특히 논어에서는 ‘인’(人)이 ‘남’을 나타낸다.
눈이 펑펑 내릴 때
제주 홍동백 보러 가자
눈 덮인 가지에 빨갛게 핀 꽃
땅 위 내려 앉아 다시 피는 꽃
4.3 가신 이의 넋으로
힘들게 피고 지고
추워 더욱 붉은 꽃
쓰러져 더욱 아픈 꽃
- 제주 ‘홍동백’ 전문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본다. “伯夷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백이숙제 불념구악 원시용희).”(공야장23) 이는, “백이와 숙제는 지난날의 나빴던 일을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원망하는 일이 드물었다.”라는 뜻이다. 알다시피 ‘백이’라는 사람과 ‘숙제’라는 사람은 옛날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로서 정의와 결백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사람이다. 그들은 부정과 불의를 미워하는 도가 몹시 심했다. 그러나 악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에서 거론한 ‘4.3’은 1947년 3월1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군경토벌대 사이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허겁지겁 제주도까지 피란을 갔기 때문에 조금은 목격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총을 들고 싸우는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애꿎은 양민들이야 그저 한낱 파리 목숨에 불과하게 된다.
열차는 진정 오고 있는가요
아지랑이 어른대는 속
철길 끝 소실점에
하염없이 머문 당신
왜 이리 더디 오시나요
어서 오셔요
내 심장의 박동은
조국통일의 톱니바퀴소리
사랑이 진동하고 있어요.
-작품 ‘열차를 기다리며’ 전문
공자님과 제자 ‘염구’가 나눈 이야기를 본다.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 畫(염구왈 “비불열자지도 역부족야.” 자왈 “역부족자 중도이폐 금여 획).”>(옹야10) 이는, <제자 ‘염구’가 여쭈었다. “선생님의 길을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오나 힘이 모자랍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모자라는 사람은 도중에서 그만두는 법이다. 이제 너는 금을 긋는구나.”>라는 뜻이다.
나는 철원 월정리역을 다녀온 적이 있다. 월정리역에 가면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팻말 옆에 녹이 슨 상태로 멈추어 서 있는 열차도 볼 수 있다. 이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철수하면서 앞부분만을 가져갔기 때문에 그 객차로 쓰인 뒷부분이 남아 있는 것인데, 현재는 안보관광 코스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 광경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어서 통일이 되어서 이어져야 한다. 공자님의 말씀대로 ‘스스로 처음부터 한계를 그어놓고 더 나아가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욱 분발하여 힘을 내도록 해야 한다. 반드시 통일이 되어서 누구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오가지 못한다면, 그깟 철도가 이어졌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귀가 윙윙거리고 몹시 아프구먼
좀 봐드리죠
귓속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곧 빼드리죠
아, 큰 벌레가
그놈의 미국선녀 벌레 짓이었군!
-작품 ‘이명’ 전문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본다. “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多聞 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개유부지이작지자, 아무시야. 다문 택기선자이종지 다견이지지 지지차야).”(술이27) 이는, “대개 알지도 못하면서 창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이런 일이 없다. 여러 들은 것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서 따르고, 많이 보고 그것을 새김이 아는 것 다음은 된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다문 택기선자이종지(여러 들은 것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 따르다.)’에 주목한다. ‘이명’은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 등이 나는 것이고 그 원인은 여러 가지라고 한다. 다만, 이명은 듣는 게 아니라 인지하는 것이란다. 아무튼 ‘들은 것 중에 좋은 것을 골라서 따라야 할 텐데’, 들을 수 없다면 큰일이다. 이명은 빨리 고쳐야 한다.
‘미국선녀벌레’는 무엇인가? 이는 북미에 서식하는 매미목 선녀벌레과 곤충이라고 한다. 학명은 ‘Metcalfa pruninosa'라고 알려져 있다. 과일나무 등 활엽수에 기생하여 잎이나 줄기의 수액을 빨아먹음으로써 심각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돌발외래해충‘으로 분류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미
장벽은 금이 갔다.
온몸 가득 황홀하게
가슴 빠개진 모습이여.
-작품 ‘석류’ 전문
다음은 공자님의 성품을 가리키는 내용이다. ‘子 絶四 毋意毋必毋固毋我(자 절사 무의무필무고무아).’(자한4) 이는 ‘선생님께서는 끊어 버린 일이 네 가지가 있는데, 자기 뜻대로 하시는 일이 없었고, 기필코 하시는 일이 없었으며, 고집스럽게 하시는 일이 없었고, 자신을 내세우시는 일이 없었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고집’이 시에서 가리키는 ‘장벽’이리라.
장벽은 무너져야 한다. 이미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이제 우리나라 ‘휴전선 장벽’도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석류는 그야말로 그 안에 ‘장벽’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과일이다. 오래 전에 시안에서 진시황 왕릉을 올라갔던 적이 있었는데, 산처럼 거대한 그 왕릉에 수많은 석류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 열매를 따서 팔기도 했다. 쪼개니 붉은 알갱이들이 가득했고, 꺼내는데 핏빛 물이 떨어져서 손에 물이 들 정도였다. 시에서 ‘황홀하게’가 가슴에 와 닿는다.
낡은 기와집
용마루의 마른 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장대 끝에 앉은
잠자리의 투명한 날개에
서늘한 빛이 스친다
내 오래된 육신의
신경 끝 안테나도
조국의 하늘이
가늘게 떨고 있다
-작품 ‘늦가을’ 전문
공자님이 냇가에서 하신 말씀을 본다. “逝者 如斯夫. 不舍晝夜.(서자 여사부. 불사주야).”(자한16) 이는, ‘떠나가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일까? 밤낮없이 멎지 않는구나.’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일명 ‘천상탄(川上嘆)’이라고 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 때가 늦가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늦가을은 더욱 쓸쓸한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낡은 기와집 용마루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풀의 이름은? 나는 그 풀을 짐작하고 있다. 바로 그 풀이야말로 ‘고들빼기’가 분명하다. 그리고 장대 끝에 앉은 잠자리라면 ‘고추잠자리’가 틀림없다. 그래야 가을 맛도 난다. 꿈에 ‘고추잠자리가 무리를 지어서 나는 것’을 보면 길하다고 한다. 즉, 해몽은 ‘귀한 사람을 만나서 좋은 일이 생긴다.’라고 한다. 어렸을 적, 장대 끝에 앉아 있는 고추잠자리를 보면 살며시 다가가서 그 긴 꼬리를 두 손가락으로 잡곤 했다. 그때가 그리워진다. 나도 역시 내 기억의 안테나가 가늘게 떨린다.
그곳은 따듯하고 포근한 곳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곳은 책임질 일도, 걱정거리도 없고
갈등과 고통도 없었으면 한다
그곳은 평화와 침묵 속에서 그러나,
모든 존재계가 궁전이 되고 엄마가 되는 집이다
더 많은 자유와 평화, 아름다움이 있는 집,
아, 내 안에 있는 나의 조국에 내가 있다
- 작품 ‘나의 조국’ 전문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본다. “里仁 爲美 擇不處仁 焉得知(이인 위미 택불처인 언득지).”(이인1) 이는, “어진 마을에서 사는 것이 아름다우니 가리고 골라서 어진 마을에 살지 않으면 어찌 앎을 얻었다고 하겠는가.”라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일찍이 노자(老子)께서는 덕경(德經)을 통하여 소국과민(小國寡民)을 말씀하시기도 했다. 나라가 크면 클수록 국민들이 욕심을 크게 갖기 때문에 오히려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문명의 발전이 없었던 때가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았던 때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세계는 좁아졌다. 나라가 한 마을처럼 생각된다.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나라든지 가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어진 나라를 가리고 골라서 살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단일민족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이나 ‘조국’의 개념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모든 인류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만이’를 버리고 ‘온 인류가 함께’를 외쳐야 한다. 다만, 우리가 태어나서 자란 이 땅을 떠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기에, 이 땅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어진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사민중사이불원사(使民重死而不遠徙)’! 즉,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무겁게 생각하여 멀리 옮기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이게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마음에 두어야 할 말이다.
조국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이 별 저 별을
헤매어 찾지 않는다
내가 찾는 것은
이제
밤하늘에 있지 않다
오직
나의 뜨거운
심장 안에 있다
-작품 ‘별’ 전문
공자님과 그 제자의 대화를 본다. <司馬牛 問仁 子曰 “仁者 其言也 訒.” 曰 “其言也 訒 斯謂之仁矣乎.” 子曰 “爲之難 言之得無訒乎.”(사마우 문인 자왈 “인자 기언야인.” 왈 “기언야인 사위지인의호.” 자왈 “위지난 언지득무인호.”)>(안연3) 이는, <제자 사마우가 어짊을 여쭈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짊이라는 것은 말을 참는 것이다.” (다시) 여쭈었다. “말을 참는 것이 어짊이 되겠습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행하기가 어려우니 말하기를 참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는 뜻이다.
시에서 나타낸 ‘별’을 생각해 본다. 그게 ‘뜻’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말’로 가슴에 둔다. 사람은 ‘말’로 말미암아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말 한 마디’로 해서 어려움을 당했겠는가. 말을 했으면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말’을 가슴에 둔다. 그렇다. 뜨거운 가슴에 넣어 둔 말일수록 오히려 반짝이는 별이 될 수도 있다.
갇힌 세계를 빠져나온 나비들이
하늘하늘 날고 있다
첫봄 속에서 파릇파릇한 아이들이
나란히 양지쪽에 붙어 서듯
노란 산수유꽃나무들이 나란히 서 있는 곳
팽목항에
나비가 난다.
-작품 ‘나비’ 전문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본다.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오상종일불식 종야불침 이사 무익 불여학야).”(위영공30) 이는, “내가 일찍이 하루 내내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자지 않고 사색하였으나 아무 보람이 없었고 배우는 것만 못하였다.”라는 뜻이다.
나는 여기에서 ‘사색’에 주목한다. ‘사색’이 무엇인가? 바로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가 아닌가? 봄이 되면 갖가지 꽃이 피어나니 그에 따라서 ‘사색’이 ‘나비’처럼 날아다니게 된다. 자연히 ‘사색’에 잠기면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누구나 ‘아이’들이 된다. 게다가 산수유가 꽃을 피우면 그 노란 꽃 속에 긴 꽃술이 옆집 순이의 긴 속눈썹처럼 보이기도 한다.
팽목항은 진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이다. 바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묻어 있는 곳이다. 그 많은 아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은 바다가 그 앞에 있다. 여기에서 ‘사색’의 나비는 더 이상 아름다움을 지닐 수가 없다. 이제는 ‘사색’을 접고 ‘배움’으로 나아가야 하겠다.
(3)
이번에 선보인 강상기 시인의 작품은 한 마디로 ‘조국에 대한 사랑’이다. 그의 시작 노트를 보면 그 사실이 확연하다. 여기에 그 일부를 소개한다.
“이데올로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사상과 표현이 자유를 한 것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조국분단으로 인한 구조적 모순은 하루 빨리 청산되어야 하고 이에 시인은 침묵해서는 안 된다. 시인의 양심으로써 시 작품으로 실천에 옮겨야 한다.”
나라를 걱정하는 일은 국민 모두의 몫이다. 그리고 국민이 나라 걱정을 하지 않도록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정치가들의 몫이다.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도록 만드는 정치가는 모두 그 자리에서 쫓아내야 한다.
공자께서 하신 말씀을 또 하나 본다. “人無遠慮 必有近憂(인무원려 필유근우).” 이는, “사람이 먼 앞날을 머리가 무겁게 걱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날에 발걸음이 무거운 근심이 생긴다.”라는 뜻이다. 이 땅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나는 이 자리에서 한 마디를 덧붙이고자 한다.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이 땅에서 지켜야 한다. 자유 대한민국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고 우리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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