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동산
김 재 황
얽히는 마음이라 풀고 나면 높아지고
푸름을 따라가서 비질하는 가을 언덕
쓸고서 다시 닦으면 하룻날이 열린다.
배고픈 새들이야 쪼았으나 아침 자락
몸으로 비비다가 해를 멀리 밀었는지
웃으며 이야기해도 흰 머리가 날린다.
물빛은 일찌감치 들 밖으로 떠났는데
잎들이 꼿꼿하게 일어서서 찌른 거기
놀라니 구름 살결이 서산으로 쏠린다.
[시작 메모]
볏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큰 무리를 이루고 산다. ‘억새’라는 이름에서 ‘새’는 ‘띠나 억새 따위의 볏과 식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면 ‘억’이란 말이 왜 붙었을까? 내 생각에는, ‘결심한 바(높은 곳에 터를 잡는 것)를 이루려는 뜻이 굳고 세차다.’라는 뜻의 ‘억세다’에서 ‘억’이 오지 않았나 싶다. 나는 ‘하늘공원’의 억새를 보고 이 작품을 지었다. 하늘공원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공원인데 옛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 위에 조성되었다.
자유시와는 달리, 시조는 ‘지’(志, 자유시에서는 意: 말로 하는 생각이나 뜻)와 ‘관’(觀, 자유시에서는 論: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알리는 것)과 ‘풍’(風, 자유시에서는 流: 무리나 갈래)을 지닌다. ‘지’는 ‘마음을 정하고 나아가는 뜻’을 나타낸다. ‘관’은 ‘황새가 먹을 것을 찾아서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풍’은 ‘동굴에서 바람이 나오는 것이 마치 벌레들이 들고나는 것과 같음’을 뜻한다. 다시 쉽게 말해서 이 ‘풍’은 ‘기질’이나 ‘모습’을 의미한다.
김 재 황
1987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시조집 [묵혀 놓은 가을엽서]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나무 천연기념물 탐방] [워낭 소리] [서다] [서다2] [지혜의 숲에서] 외. 동시조집 [넙치와 가자미]. 시조선집 [내 사랑 녹색 세상] 당시와 시조 [마주하고 다가앉기] 산문집 [비 속에서 꽃 피는 꽃치자나무] [시와 만나는 77종 나무 이야기] [시와 만나는 100종 들꽃 이야기] [그 삶이 신비롭다] 등. 시집과 평론집 다수. 세계한민족문학상 대상 수상 및 제36회 최우수예술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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