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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고 올바른 사람을 위에 앉힌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왔으나, 끝내 노나라는 공자를 등용하지 못하였으며, 공자 또한 관직을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공자는 마음을 비웠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공자에게 자문했던 듯싶습니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받은 의논은 ‘세’(稅)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그 의논을 하려고 공자를 찾은 사람은, 공자의 제자인 ‘염유’(冉有)였습니다. ‘염유’는 알고 있지요? 일명 ‘염구’(冉求)라고도 합니다. 그는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季康子) 밑에서 벼슬을 살고 있었지요. 계강자는, 공자를 내쫓은 계환자(季桓子)의 후계자입니다.
“선생님, 여쭐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일인지, 말해 보아라.”
“나라에서 거두어들이는 땅의 세를 고치고자 하는데, 그에 대하여 선생님께 여쭈려고 합니다.”
계강자는 한 ‘정전’(井田)을 만들어 놓고 법으로 세금을 거두어들이려고 했습니다. 그 ‘정전’이란, 주나라 때에 농지 1리를 ‘정’(井) 자 모양으로 9등분을 한 뒤에 중앙의 한 구역을 공전(公田)이라고 하였으며 주위의 8구역을 사전(私田)이라고 하였는데, 농가 여덟 집에 ‘사전’을 나누어서 사유(私有)로 맡기고 이들 여덟 집이 공동으로 ‘공전’을 경작하게 함으로써 그 수확을 국가에 바치게 했던 제도입니다.
그에 대하여 공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그러나 염유는 세 번이나 다시 찾아와서 간곡히 물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염유의 뜻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고 싶은 계강자의 뜻이었지요. ‘공자가어’에는 그때 공자가 염유에게 한 말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求)야! 이리로 오너라. 너는 듣지 못했느냐? 옛날에 선왕이 토지를 제정할 때 ‘임금이 몸소 농사짓던 밭’에 중점을 두고 한 것은 토지를 멀고 가까운 데가 없이 일률적으로 가지런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그 수입이 있고 없는 것을 보아서 세금을 받게 했으며, 힘에 맞게 일을 시키려고 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늙은이와 어린이는 제외했다. 그렇기에 환과고독(鰥寡孤獨)에 대하여, 특별한 군사의 일이 아니고는 ‘부세’라는 것을 일체 없애 버렸다. 어쩌다가 불행하게도 군사의 일이 있을 적에는 전지 한 정(井)에 대해서 벼 몇 단과 쌀 몇 말, 그리고 짚 몇 묶음씩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것도 결코 힘에 지나치게는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선왕은 항상 백성들을 넉넉하게 살필 수 있었다. 또 군자의 행실이란 반드시 예절부터 헤아려 보고 하기에 베풀기를 후하게 하며, 이와 반대로 시키는 일은 힘에 맞게 하고, 또한 거두는 부세는 되도록 적게 했다. 이렇게만 정치를 하는 세상 같으면 나도 역시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같이 예절도 헤아리지 않고 물욕을 탐하는 욕심으로 정치를 한다면 아무리 부세를 많이 거둔다고 하더라도 장차 부족하게 된다. 또한, 자손마다 반드시 이러한 법을 취해서 행하려고 한다면, 주공이 만들어 놓은 법도 있지 않은가. 또, 이 법을 범하려면 그대로 해볼 것이지, 하필 나를 찾는 이유가 무엇이냐?”
염유는 공자의 이 말을 계강자에게 전했으나, 계강자가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었지요. 계강자는 끝내 자기의 생각대로 세법을 고쳐서 실시했습니다. 그에 따라 엄청난 돈이 계강자의 주머니 속으로 굴러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공자는 크게 노했습니다. 어느 날, 공자는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그 내용이 논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씨가 주공보다 부유한대도 염구가 계씨를 위하여 백성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여서 그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에 공자가 말하였다. “그는 나의 제자가 아니니, 너희들은 북을 울리며 그를 책망해도 좋다.”(계씨 부어주공, 이구야 위지취렴이부익지. 자왈, 비오도야 소자. 명고이공지 가야.: 季氏 富於周公, 而求也 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非吾徒也 小子. 鳴鼓而攻之 可也.)【논어 11-17】
여기에서 ‘계씨’는 계강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주공’(周公)은, 문왕(文王)의 아들이자 무왕(武王)의 동생으로 성왕(成王)의 숙부랍니다. 이름은 ‘단’(旦)으로, 노나라 시조입니다. 그러나 ‘주천자(周天子)의 경사(卿士) 노릇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는 이설도 있지요.
그런 일이 있었지만, 계강자는 한 술을 더 떴습니다. 세를 올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전유’(顓臾)를 치려고 하였습니다. ‘전유’는, 노나라에 딸린 속국으로, 노공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노나라의 ‘부용국’(附庸國)이었지요. ‘부용국’이란, 지방 50리도 못 되는 작은 땅을 지니고 제후에 부속되어 조공을 천자에게 바치는 나라를 가리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전유’를 치는 게 옳지 않다는, 공자의 그 말을 들어 보기로 할까요?
계강자가 전유를 치려고 하니, 염유와 자로가 공자를 뵙고 말했습니다. 이 당시에 자로 또한 계강자 밑에서 벼슬을 살고 있었지요.
“계씨가 장차 전유를 정벌하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가 말했습니다.
“구(求)야!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겠느냐? 전유는 옛날에 주나라 선왕이 동몽(東蒙)의 제주(祭主)를 삼으시고, 또 노나라 역내(域內)에 있으므로 이 나라의 신하인데, 어찌 정벌하겠느냐?”
이에, 염유가 대답했습니다.
“대부인 계씨가 치려고 하는 일이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구야! 주임(周任)이 말하기를 ‘힘을 다하여 맡은 바 직책을 다하다가 감당할 수 없거든 물러난다.’라고 하였다. 위태로워도 붙잡아 주지 않으며 엎어지게 되어도 붙들어 주지 않는다면, 그러한 도움을 장차 어디에 쓰겠느냐? 또 네 말이 잘못이다. 호랑이와 들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거북이의 등뼈와 구슬이 궤 속에서 깨어졌다면,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이 말 중에서 ‘주임’은 주(周)나라 문왕(文王) 때의 사관(史官)을 가리킨답니다.
염유가 또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날 전유는 성곽이 견고하고 비(費) 땅에 가까우니, 지금 정벌하지 않으면 후세에 반드시 자손들에게 근심거리가 되기에 십상입니다.”
‘비’ 땅이란, 계손씨의 사사 고을을 일컫지요. 그 말을 듣고, 공자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는 상상이 갑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야! 군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욕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다른 구실로 꾸미는 걸 싫어한다. 내가 들으니, ‘나라를 가진 제후나 가문을 지닌 대부는 토지가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토지를 가지런히 하면 가난하지 않고, 화락하면 백성이 적을 일이 없을 것이며, 편안하면 기울어지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먼 데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화와 도덕과 예악에 의해 교화하여 스스로 오게 하고, 오면 이들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제 ‘유’(由)와 ‘구’(求)는 대부인 계씨를 도우면서, 먼 데 사람이 복종하여 쫓아오게 못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라가 붕괴하고 인심이 돌아서는데도 지키지 못하고, 도리어 나라 안에서 싸움 일으키기를 꾀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계씨의 근심이 ‘전유’에 있지 않고 ‘소장’ 안에 있을까를 저어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장’(蕭墻)은, ‘문 안에 둘러놓은 담장’을 가리킵니다. 이 담장은,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았답니다. 이는, ‘계강자 자신 밑에 있는 가신들이 자기를 잘 돕지 못하는 걸 걱정하고 있을 것 같다.’라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붉히고 물러가서 계강자에게 그 말을 전하였고, 그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계강자는 ‘전유’를 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계강자가 또 다른 일을 벌이고자 했습니다. 즉, 계강자는 태산(泰山)으로 가서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려고 하였습니다.
염유는 그 일을 공자에게 알렸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는 말했습니다.
“네가 그 일을 막을 수 없겠느냐?”
염유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길게 탄식했습니다.
“아! 슬프다. 저 태산의 산신이 예의 근본을 물은 ‘임방’만도 못하단 말인가!”
‘임방’(林放)이라는 사람은 알고 있지요? 노나라 사람으로 호(號)는 ‘자구’(子丘)입니다. 어느 때, 그가 공자에게 예의 근본에 관하여 물은 적이 있지요. 그러므로 공자의 이 탄식은, ‘임방 같은 사람도 예의 근본 이치를 물었거늘, 어찌 태산의 신이 계씨의 어긋난 제사를 받겠느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논어에도 씌어 있습니다. 공자는 이렇듯 계강자의 잘못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계강자는 모든 일에 대하여 공자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답니다.
한 번은, 계강자가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그 내용이 논어에 담겨 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계강자가 물었다. “백성이 공경하고 충성하며 몸과 마음을 다하여 권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공자가 대답하였다. “백성들에게 장중하게 대하면 공경스러워지고, 효도와 자비를 보이면 충성스러워지며, 착한 이를 등용하고 능하지 못한 사람을 가르치면 권면하게 될 것이오.”(계강자 문 사민경충이권 여지하. 자왈 임지이장즉경 효자즉충 거선이교불능즉권.: 季康子 問 使民敬忠以勸 如之何. 子曰 臨之以莊則敬 孝慈則忠 擧善而敎不能則勸.)【논어 2-20】
그 외에도 계강자는 여러 가지를 물었지요.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계강자가 정치에 관하여 물으니 공자는 대답했습니다.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니, 당신이 솔선하여 바르게 되면 누가 감히 바르게 아니할 수 있겠소?”
또 어느 날은, 계강자가 도둑이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하여 가르침을 구하니, 공자는 대답했습니다.
“진실로 당신이 많은 재물을 탐내지 않는다면 상을 준다고 하여도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오.”
또 다른 날은, 정치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면서, 계강자는 다음과 같이 뚱딴지같은 말을 했습니다.
“만약에 나쁜 사람을 죽이고 좋은 사람은 가까이하면 어떻겠습니까?”
공자는 그 말에도 대답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어찌 함부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게요? 당신이 착함을 실행하려고 하면 백성도 착함을 실행하게 되는 법이오. 다스리는 사람의 덕이 바람이라면 백성의 덕은 풀이라오. 풀 위에 바람이 가면 풀은 바람을 따르게 된다오.”
‘풀 위에 바람이 가면 풀은 바람을 따른다.’라는 말이 정말 큰 울림을 줍니다. 이를 논어에서는 ‘초상지풍 필언’(草尙之風 必偃)이라고 했지요. ‘언’은 ‘부’(仆)와 같아서 ‘쓰러짐’을 나타냅니다. 즉, ‘풀은 바람을 따라서 바람이 가는 방향으로 쓰러진다.’라는 말이지요.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물은 사람은, 계강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노나라 임금인 애공(哀公)도 많은 물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애공’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습니까? 물론, ‘애공’이라는 그 이름은 그가 죽고 난 후에 붙여졌습니다. 그러니 그의 생애가 순탄하지 않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생애 중 노나라의 마지막 군주입니다. 아버지인 ‘정공’(定公)이 죽고 나서 그는 기원전 494년에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그 때, 애공의 나이는 겨우 10살 안팎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공자의 나이는 58세였지요. 그의 재위 16년에 공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언제인가, 애공이 공자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논어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습니다.
애공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백성이 복종하게 될까요?”공자가 대답하였다. “곧은 사람을 들어서 굽은 사람 위에 놓으시면 백성이 따르게 되겠지만, 그 반대로 그릇된 사람을 뽑아서 정직한 사람 위에 두시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게 됩니다.”(애공문왈 하위즉민복. 공자 대왈 거직조저왕 즉민복, 거왕조저직 즉민불복.: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 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논어 2-19】
여기에서 주목할 글자는 바로 ‘저’(諸)와 ‘조’(錯)입니다. ‘저’는 보통 ‘지어’(之於)의 합성어로 봅니다. 그리고 ‘조’는, ‘거’(擧)의 맞서는 동사가 아니라, 그냥 ‘놓는다’로 보지요. 그리고 ‘왕’(枉)은 그 뜻 그대로 ‘구부러지다’의 의미이고, ‘직’(直)은 ‘왕’과 반대되는 ‘곧다’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거직조저왕’(擧直錯諸枉)은 ‘곧은 사람을 들어서 굽은 사람 위에 놓는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왜 이게 맞는 뜻인가 하면, 이 말이 바로 공자의 어투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번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번지가 ‘지’(知)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번지에게 ‘곧은 사람을 뽑아서 굽은 사람 위에 두면 굽은 사람이 곧게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공자는, 굽은 사람을 버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바르게 만들어서 쓰려는 큰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지요. 굽은 사람을 버리는 일이야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다시 애공이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가 또 대답했습니다.
“정치에 있어서 백성을 ‘부’(富)하게 하고 ‘수’(壽)하게 하는 게 제일 급한 일입니다.”
애공이 급히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백성에게 부역을 덜어 주고 세금을 적게 하면 백성이 ‘부’하게 되고, 예절과 교육을 많게 하고 죄와 질병을 멀리하게 하면 ‘수’하게 됩니다.
애공이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선생님 말씀대로 하여 보고자 했으나, 나라가 워낙 빈약하여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공자는 몸을 바로 하고 대답했습니다.
“시에 이르기를 ‘개제한 군자는 백성의 부모로다.’라고 했으니, 이는 쉽게 말하자면 ‘자식이 부유하게 살면 빈약한 부모가 있을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옳은 말이지요. 그런데 이 시를 더 알고 싶지는 않습니까? 이 시는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개제군자(愷悌君子): 화락하고 단정한 지도자는
민지부모(民之父母): ‘백성의 부모’라고 하였으니
비지덕(非至德): 지극한 베풂이 아니면
기숙능순민(其孰能順民): 그 누가 백성이 따르게 할 수 있음을
여차기대자호(如此其大者乎): 이처럼 크게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때, 애공이 공자에게 또 물었습니다.
“띠(紳)를 느긋이 두르고 장보 갓을 높이 쓰는 일은 어진 데 유익함이 됩니까?”
공자는 얼굴빛을 엄숙하게 하고 대답했습니다.
“임금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상옷(衰麻)을 입고 상장(喪杖)을 짚은 자가 음악에 뜻을 두지 않는 것은, 귀에 들리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의복이 그렇게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불 옷을 입고 면류관(冕)을 쓴 자가 얼굴을 만홀(漫忽)하게 갖지 못하는 것은, 그 성품이 자기 자랑하기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의복이 그렇게 시키는 것입니다. 또 갑옷을 입고 칼을 잡은 자가 물러서거나 게으른 기색이 없는 것은, 그 몸이 용맹스러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의복이 그렇게 시키기 때문입니다. 또한 듣건대 장사꾼은 청렴치 못하고 점잖은 어른은 시장에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유익함이 있고 없는 것을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옷이 날개’라는 의미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말에 내가 이처럼 동조하는 까닭이 있지요. 내가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을 때, 해병대 복장의 장병 한 사람이 나타나면 육군이나 공군 등의 장병들이 슬슬 자리를 피했지요. 모두 똑같은 한국 사람인데, 왜 그랬을까요? 이는, 그 말대로 해병대 복장이 그를 남보다 용감하게 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자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이 외에도 애공은 공자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으며, 그때마다 공자는 아주 자세하게 애공에게 답해 주었습니다. 그럼, 그 이야기들을 들어 보기로 할까요?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오늘날의 임금 가운데 누가 제일 어질다고 생각하십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어짊을 지닌 임금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굳이 말씀하라시면 위영공(衛靈公)을 들 수 있을까 합니다.”
애공이 다시 물었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그의 규문(閨門) 안은 분별이 없다는데, 선생님께서는 어질다고 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신이 말씀 올리는 것은 그 조정에 대해서 하는 것이지, 그 사사(家庭)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자 애공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조정에서 한 일은 어떠했습니까?”
이에 공자가 말했습니다.
“영공의 아우에 공자거모(公子渠牟)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지혜가 족히 천승의 나라를 지킬 만하였으므로 영공은 그를 사랑하여 나랏일을 맡겼습니다. 또 선비에 임국(林國)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진 자를 보면 반드시 나아가서 방문하고 물러 나와서는 자기의 봉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영공은 이 선비를 내버려 두지 않고 어질게 여겨서 높이 받들었습니다. 또 선비에 경족(慶足)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위(衛)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와서 다스리고 나라에 일이 없으면 물러가서 어진 사람을 천거했습니다. 그래서 영공은 기뻐하고 공경하여 잘 대우했습니다. 또 대부로서는 사추(史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언젠가 그는 위나라를 버리고 갈 일이 생겼습니다. 영공은 사추를 작별하고 3일 동안이나 대궐 안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가 기어이 사추가 돌아온 뒤에야 들어갔습니다. 신은 이런 일로 보아서 그를 어질다고 했습니다.”
또 애공이 공자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일을 심하게 잊기 잘하는 사람은 자리만 옮겨 앉아도 자기 아내조차 잊어버린다고 하니, 그런 사람도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로 심할 때는, 자기 몸까지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애공이 얼른 말했습니다.
“그 자세한 말씀을 듣고자 원합니다.”
이에 공자가 말했습니다.
“옛날에 하걸(夏桀)은, 귀하기로는 그 몸이 천자요, 부유하기로는 사해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조(聖祖)의 도를 잊어버리고 그 법을 무너뜨려서 종묘의 제사까지 폐해 버리고 음탕한 놀이만 일삼으며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첨하는 신하들은 임금의 눈치만 살피면서 그 마음을 유인하고, 충성스러운 선비들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때문에 온 천하의 사람들이 걸을 죽이게 되었고, 은나라 탕이 그 나라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몸조차 잊어버렸던 예입니다.”
시시때때로 애공과 공자의 문답은 이어졌습니다. 애공이 또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하늘의 도는 물건을 내는 데 민첩하고 사람의 도는 정치를 하는 데 민첩하며 땅의 도는 물건을 심어서 키우는 데 민첩합니다. 정치라는 것은 포노(蒲盧, 나나니벌)와 같은 것이니, 이는 변화하는 것을 기다려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올바른 정치를 하자면 올바른 사람을 얻어야 합니다. 옳은 사람을 얻자면 자기의 몸부터 옳은 일을 해야 하며, 도를 닦는 데에는 어질게 해야 합니다. 어진 일을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친한 자를 친해야 하며, 의리라는 것은 마땅하게 한다는 것이니 어진 자를 높여야 합니다. 그러나 친한 자를 친하게 하는 데도 정도가 있어야 하며, 어진 자를 높이는 데도 차등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예법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 예법이라는 것은 곧 정치하는 근본이 됩니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자기의 몸부터 닦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의 몸을 닦고자 생각한다면 자기의 부모를 잘 섬기지 않을 수 없으며, 부모를 잘 섬기고자 생각한다면 사람 자체를 알아야 할 것이며, 사람 자체를 알자면 하늘 이치를 몰라서는 안 됩니다. 천하에 통하는 도가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 다섯 가지를 행함에 있어서는 다시 세 가지 요령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도는, 군신과 부자와 부부와 형제와 붕우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요령은 ‘지’(智)와 ‘인’(仁)과 ‘용’(勇)으로 이루어지는 덕입니다. 이를, 혹은 태어날 때부터 알게 되는 사람도 있고, 혹은 배운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사람도 있으며, 혹은 곤란한 일을 겪어야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알게 됨에 있어서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혹은 편안하게 행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이익이 있는 줄로 알고 행하는 사람도 있으며, 혹은 억지로 실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 여부에 있어서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애공은 공자의 이 말을 모두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로 해낼까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지혜가 있는 것에 가깝고, 행하기를 힘써서 한다는 것은 어진 사람에 가까우며,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용맹스러운 데에 가깝습니다.
이 세 가지를 알면 자기 몸을 닦는 것도 알게 되고, 자기 몸 닦는 것을 알면 사람 다스리는 방법도 알게 되며, 사람 다스리는 것을 알게 되면 능히 천하와 국가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애공은 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정치라는 것은 이것만 다하면 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대체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는 ‘아홉 가지 떳떳한 요령’(九經)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로 자기 몸을 닦아야 하며, 둘째로 어진 사람을 존경해야 하며, 셋째로 친한 사람을 친하게 대해야 하며, 넷째로 대신을 공경해야 하며, 다섯째로 여러 신하를 한 몸뚱이처럼 여겨야 하며, 여섯째로 백성의 여러 무리를 중히 여겨야 하며, 일곱째로 백 가지 기술자들이 저절로 모여들게 해야 하며, 여덟째로 먼 지방 사람을 휘어잡아야 하며, 아홉째로 모든 제후를 품 안에 넣어야 합니다. 내 몸을 닦으면 도가 저절로 서게 되고, 어진 사람을 존경하면 의혹이 없어지게 되며, 친한 사람을 친하게 대하면 집안에 원망이 없게 되며, 대신들을 공경하면 모든 일이 현란하지 않게 되며, 여러 신하를 한 몸뚱이처럼 여기면 선비들이 믿고 일하게 되며, 여러 백성을 중히 여기면 백성이 서로 권하여 복종하게 되며, 여러 기술자가 모여들면 재정이 넉넉하게 되며, 먼 지방 사람을 휘어잡으면 사방에 있는 이웃나라들도 나에게로 돌아오게 되며, 모든 제후를 품 안에 넣게 되면 천하가 모두 두려워하게 됩니다.”
애공이 또 물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수로 이런 일을 다 실천합니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의복을 깨끗이 입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몸을 닦는 일이며, 참소하는 말을 듣지 않고 여색을 멀리하여 이익과 욕심을 천하게 여기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어진 사람을 높이는 일입니다. 능한 자를 벼슬자리에 앉히고 그 좋고 나쁜 노력을 같이하는 것은 친한 사람을 친하게 하는 일이며, 그 관직을 풍성하게 하고 그 책임을 맡기는 것은 대신을 공경하는 일이며, 충성하고 미더운 마음으로 ‘녹을 중하게 주는 것’은 선비를 권장하는 일입니다. ‘한가로울 때 복역시키고 세금 징수를 박하게 하는 것’은 여러 백성을 모두 아들처럼 여기는 일이며, 날마다 돌아보고 달마다 살펴서 일하는 실적을 보고 급료를 주는 것은 여러 기술자를 모여들게 만드는 일입니다. 가는 자는 보내고 오는 자는 맞이하며 착한 사람은 아름답게 여겨서 권장하고 능하지 못한 자는 불쌍히 여겨서 독려하는 것은 먼 곳에 있는 자를 휘어잡는 일입니다. 끊어진 세대는 이어 주고 없어지게 된 나라는 도와주며 어지러운 곳은 잘 다스려 주고 위태로운 곳은 붙들어 주어서 조회와 외교에 대하여 때를 맞추어서 하며, 가는 사람을 후하게 대접하고 ‘오는 사람을 박하게 대우하는 것’은 모든 제후를 품 안에 넣는 일입니다. 이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떳떳한 요령인데, 이것을 행함에 있어서는 오직 한 가지 길이 있을 뿐입니다. 이 한 가지 길이란, 그 말과 모든 행동을 성실한 마음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무슨 일이든지 미리 준비하면 이룰 수 있으며 예비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되고 맙니다. 그런 까닭에 말을 하는 데도 미리 정한 것이 있으면 곤경이 없게 될 터이며, 행동에서도 미리 정한 것이 있으면 궁한 경우가 없게 되는 법입니다. 그렇게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게 되면 백성을 얻어서 다스리지 못하게 됩니다. 윗사람의 신임을 얻는 방법이 있으니, 친구에게 신용이 없으면 윗사람에게도 신임을 얻지 못합니다. 친구에게 신임받는 방법이 있으니,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친구에게 신임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오직 자기 몸 반성하기를 성실히 하지 않으면 부모에게도 순종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 몸을 성실히 갖는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착한 일에 밝지 못하면 자기 몸을 성실히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 성실이라는 것은 하늘의 길이요, 마음을 성실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일이 이치에 맞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일이 이루어지게 되며 조용하게 도에 맞아서 나가게 되는 것이니, 이는 성인이 체계를 정해 놓은 것이며, 성실하게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곧 착한 일만 가려서 마음을 단단히 하고 행하는 데 있습니다.”
애공이 다시 또 물었습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은 가히 완비(完備)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 중에서 제일 먼저 행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세우는 요령은 부모를 사랑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백성을 가르치는 데는 화목해야 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세우는 요령은 어른을 공경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백성을 가르치는 데는 순리로 해야 합니다. 자애와 화목으로 가르치면 백성도 모두 부모가 있는 것처럼 귀하게 여길 일이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가르치면 백성도 모두 명령을 귀중하게 알게 됩니다. 백성들이 이리 부모에게 효도하고 또 명령을 순종하게 된다면, 비단 노나라만이 아니라, 온 천하를 다스린다고 할지라도 마땅할 일입니다.”
공자의 말이 끝나자, 애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이 좋은 말씀을 들었으나 한편으로 염려되는 것은 능히 행하지 못하고 도리어 죄만 얻을까 두렵습니다.”
어느 때, 애공은 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의 명(命)과 성(性)이란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도에서 나누어진 것을 ‘명’(命)이라 말하고 하나에서 형성된 것을 ‘성’(性)이라 말하며, 음양에서 변화하여 형상으로 바뀐 것을 ‘생’(生)이라 하고 변화가 다 하고 수효가 끝나는 것을 ‘사’(死)라고 말합니다. 그런 까닭에 ‘명(命)이란 것은 성품의 시작’이며 ‘죽는다는 것은 삶의 끝’이니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겨날 때도 완전히 갖추어지지 못한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능히 볼 줄을 모르며 능히 먹을 줄을 모르며 능히 걸을 줄을 모르며 능히 말할 줄을 모르며 능히 변화할 줄을 모르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태어나서 석 달만 되면 눈이 보이게 되며, 여덟 달만 되면 이빨이 나서 음식을 먹을 줄 알며, 3년이 되면 이마가 단단해지고 말도 할 줄 알며, 열여섯 살이 되면 정기가 통해져서 능히 변화할 줄도 알게 됩니다. 음이 극도에 가면 양으로 되돌아오는 까닭에 음은 양으로 변하고, 양이 극도로 가면 음으로 되돌아오는 까닭에 양은 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덟 달이면 이가 났다가 여덟 살이 되면 그것을 새로 갈게 되며, 여자는 일곱 달이면 이가 났다가 일곱 살에 가서 그것을 갈게 되고 열네 살이 되면 능히 변화할 줄 알게 됩니다. 이 하나인 양과 음이 서로 합쳐서 짝을 지은 연후에라야 도(道)도 제대로 맞고 변화할 것도 제대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여기에서 성(性)이니 명(命)이니 하는 단서가 나타나게 됩니다.”
애공과 공자의 문답은 이보다 더 길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나의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을 골라서
혼자 산으로 간다.
쌓인 눈 속에 고요가
작은 떡잎을 조용히 내밀고 있는 곳
잠들지 않고 서 있는
키 큰 먼나무 곁으로 간다.
흰 옷을 몸에 걸치고
그 나무와 함께 거니는 이는 누구인지
나는 서둘러 산을 오르지만
그는 이미 떠나고 없다.
- 시 ‘함께 거니는 이’ 전문
애공이 공자에게 ‘어떻게 해야 백성이 복종하게 되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곧은 사람을 들어서 굽은 사람 위에 놓으시면 백성이 따르게 되겠지만, 그 반대로 그릇된 사람을 뽑아서 정직한 사람 위에 두시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곧은 사람을 구하느냐’에 있습니다. 요즘에도 곧은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게다가 곧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함부로 정치판에 뛰어들겠습니까?
그 답답한 마음을 달랠 수 없기에, 나는 ‘눈 내린 날을 골라서’ 혼자 산으로 갑니다. 그렇게 산으로 오르면 ‘쌓인 눈 속에 고요가 작은 떡잎’을 조용히 내밀고 있습니다. 나는 그곳에 ‘잠들지 않고 서 있는 먼나무’ 곁으로 갑니다. 아마도 육지에서만 살아온 사람은 ‘먼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 나무인지를 모를 성싶습니다. 나는 서귀포에서 살았을 적에 이 나무와 아주 가까이 지냈습니다. 이 나무는 10월이 되어야 붉게 타는 열매를 내보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흰 눈을 맞고 꿈을 꿉니다. 아, 그 아름다움을 상상해 보십시오.
나는, ‘흰옷을 걸치고 먼나무와 함께 거니는 사람’을 만나려고 서둘러 산을 오르곤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반듯한 발자국 몇 개만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서 곧은 사람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고 어렵습니다.(글: 김 재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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