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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쓰임에 머물지 않는다
한 마디로 공자는 ‘군자’(君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 ‘군자’란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가 궁금해집니다.
공자는 말했습니다.
“군자는 무게가 없으면 위엄이 없으니 배워도 견고하지 못하게 된다. 충과 신을 주로 할 것이며, 나만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이는, ‘군자’가 유의할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는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기도 합니다. 먼저, 군자는 위엄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유머’를 중시하는 시대라 그런지, 위엄을 갖춘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많이 배운 학자까지 그렇습니다. 또, 무엇보다 ‘군자’에겐 ‘충’(忠)과 ‘신’(信)이 중요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충’은 ‘마음이 가운데에 자리 잡음으로써 흔들리지 아니함’을 가리키고 ‘신’은 ‘말을 했을 때, 그 말에 신험(神驗)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훌륭한 벗을 사귀고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야 더욱 나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지요.
그래서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자는 다투는 법이 없다. 그러나 굳이 다툼이 있다고 말한다면 ‘활쏘기’ 정도가 되겠다. 활을 쏘려고 당에 오를 때에도 서로 읍하는 예를 한다. 또 당에서 내려와서는 벌주를 마신다. 이러한 다툼이야말로 군자답지 아니한가?”
여기에서의 ‘읍’(揖)은 ‘두 손을 모아서 위로 올리며 절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활쏘기’에서 진 사람은 당에서 내려온 후에 ‘벌주’(罰酒)를 마시게 됩니다. ‘벌주’란, ‘벌로 마시는 술’을 말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위로로 마시게 하는 술’이라고도 합니다.
공자는 다시 말했습니다.
“군자는 긍지를 가지나 다투지 않으며,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는 하지만 패거리를 만들지는 않는다.”
이는, ‘지도자는 자기 몸가짐을 공정하고 근엄하게 가지므로 남과 다투지 않고, 여러 사람과 가깝게 지내면서도 욕심이 없으므로 자기들만의 무리를 짓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 시대의 지도자, 특히 정치가들이 꼭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합니다. 남을 이끌려면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하지요.
아무래도, ‘군자’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알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 특히 제자들의 입을 빌려야 하겠습니다. ‘논어’에는 가장 먼저 자공이 공자에게 ‘군자’에 관해 묻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공이 군자에 관해 물으니, 공자가 대답하였다. “먼저 그 말을 행하고, 뒤에 그 말을 꺼내야 한다.”(자공 문군자, 자왈 선행기언 이후종지.: 子貢 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논어 2-13】
여기에서 ‘선행기언’(先行其言)은, ‘말하려고 하는 바를 먼저 행동으로 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후종지’(而後從之)는, ‘그런 뒤에 말이 그 행동의 뒤를 따름’을 가리킵니다.
자공은 공자의 여러 제자 중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공자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입이 무거워야 합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이 무겁고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의 실행이 그리 쉽지는 않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공자도 스스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문은 나도 남만 못하겠는가? 그러나 군자의 도를 실천하는 데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 경지’란, ‘군자의 경지’를 말합니다. 그러니 참으로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공자가 군자의 도를 실천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누가 그 경지에 도달했다는 말인가요? 다른 사람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만큼 군자의 도를 실천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 실천에도 요령이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공자의 말이 ‘논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 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실천하기가 어렵다.”(자왈 기언지부작 즉위지야난.: 子曰 其言之不作 則爲之也難.)【논어 14-21】
여기에서 말하는, ‘작’(作)은 ‘참’(慙)과 같이 ‘부끄러워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위지야난’(爲之也難)에서 ‘위’(爲)는 ‘행하는 것’을 말하고 ‘난’(難)은 ‘행하기 어려운 것’을 이릅니다. 또, ‘야’(也)는 주격조사로 강조하는 말이지요.
이는, ‘큰소리나 치고 말을 가볍게 여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실천을 보이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실천하는 사람은, 말의 잘못을 아주 부끄럽게 여긴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와 같은 뜻으로 공자는 또 말했습니다.
“군자는 말을 부끄럽게 하고 행동은 여유 있게 한다.”
이는, ‘말은 지나치게 하기가 쉬우므로 부끄럽게 하여야 하고, 행동은 말에 따르지 못하기가 쉬우므로 여유 있게 행동하여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군자’는 행동보다 말을 앞세우면 안 됩니다.
그런데 ‘군자’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자공만이 아니었습니다. 자로도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군자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수기이경이다.”
‘수기이경’(修己以敬)은 ‘자기 언행을 수행하여 경건하고 성실하게 하는 것’을 이릅니다.
그 말을 듣고, 자로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됩니까?”
공자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수기이안인이다.”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 중에서 ‘안인’(安人)은 ‘자기 덕행을 남에게까지 미치게 하여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자, 성미 급한 자로가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됩니까?”
이에, 공자는 또 말했습니다.
“자기를 수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기란 요순(堯舜)도 고심하셨다.”
예로부터 중국의 요(堯) 임금이나 순(舜)임금은 성군(聖君)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들도 실천하기가 어려워서 늘 고심하였던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공자는 말했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지요.
그렇기에 군자는, ‘병무능언’이고 ‘질몰세이명불칭언’이었습니다. ‘병무능언’(病無能焉)은 ‘자기 재능이 모자라서 무슨 일을 잘 해내지 못함을 걱정한다.’라는 말이고, ‘질몰세이명불칭언’(疾沒世而名不稱焉)은 ‘종신토록 세상에 이름이 칭송되지 않음을 걱정한다.’라는 말이랍니다.
지도자로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른 몸가짐’입니다. 특히 재물을 모으는 데에 ‘올바른 몸가짐’이 필요합니다. 요즘에도 ‘청문회’를 여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에 대한 공자의 말이 ‘논어’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부귀는 누구나 바라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지 않았다면 군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빈천은 누구나 싫어하는 바이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지 않았어도 군자는 버리지 않는다. 군자가 ‘인’을 버린다면 어찌 ‘군자’라는 이름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인’을 어기지 아니하고 다급한 때라도 반드시 ‘인’에 의지하며 넘어져 자빠지는 때에도 ‘인’과 함께 있다.”(자왈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 득지 불처야. 빈여천 시인지소오야 불이기도 득지 불거야. 군자 거인 오호성명. 군자 무종식지간 위인, 조차 필어시 전패 필어시.: 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 不去也. 君子 去仁 惡乎成名. 君子 無終食之間 違仁, 造次 必於是 顚沛 必於是.)【논어 4-5】
여기에서 말하는, ‘부’(富)는 ‘재물을 얻는 것’을 말하고 ‘소오’(所惡)는 ‘싫어하는 것’을 말하며 ‘불거’(不去)는 ‘싫어하여도 떠나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빈’(貧)은 ‘재물이 없는 것’을 이르고 ‘오호성명’(惡乎成名)은 ‘어찌 군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를 이르며, ‘조차’(造次)는 ‘다급한 때’를 이릅니다. 또, ‘전패’(顚沛)는 ‘넘어져 자빠짐’의 뜻으로 ‘위급한 때’를 나타내며, ‘어시’(於是)에서 ‘시’(是)는 ‘인’(仁)을 가리킵니다.
이 글을 읽으니,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는, ‘구차한 중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긴다.’라는 뜻이지요. 이 말은, 가난함이 좋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정당하게 얻지 않은 부귀보다는 인(仁)에 의해 가난함을 택한다는 말입니다.
한때, 공자가 구이(九夷) 땅에서 살기를 원하니, 그에 대해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누추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이에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군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한 게 있겠는가?”
이 말 중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먼저 ‘구이’ 땅은, 동쪽의 작은 나라들, 즉 중국에서 생각하기를 ‘미개한 나라들’을 가리킨다고 여겨집니다. 하기는 우리도 중국을 ‘오랑캐’라고 불렀으니, 마찬가지 논리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문맥으로 보아서 ‘어떤 제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점은, 공자가 스스로 ‘군자’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공자는, ‘군자는 누추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가슴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누추한 곳에 산다면 군자를 자처할 수 있지 않겠느냐?’ 혹은 ‘군자는 사는 데가 누추하거나 안 하거나를 따지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자신 있게 스스로 ‘군자’라고 말했겠지요.
또, 이렇게 공자는 말했습니다.
“군자는 도를 꾀할 뿐이고 먹을 것을 꾀하지는 않는다. 농사를 지어도 배고플 수 있으나, 배우면 녹(祿 또는 福)이 그 가운데 있으니 군자는 도를 근심하나 가난을 근심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녹이 그 가운데 있다.’라는 말입니다. 원문에는, ‘녹재기중의’(祿在其中矣)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 중에서 ‘녹’(祿)은, 보통 ‘녹봉’(祿俸)으로 여기고 있지만, 나는 ‘복’(福)으로 풀이하고 싶습니다. 배움이 취직하기 위함이라고 여긴다면, 너무나 세속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군자’ 역시 출세와 결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녹재기중의’를, ‘구하지 않아도 기쁨이나 행복은 그 안에서 자연히 얻게 된다.’라는 말로 받아들입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군자’는 두려움을 갖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각오가 군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만듭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나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소나무’나 ‘잣나무’는 사람으로 치면 ‘군자’에 해당하겠지요. 그런 내용의 이야기가 ‘논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더디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논어 9-27】
이 말에서 ‘송’(松)은 ‘소나무’를 말하고 ‘백’(栢)은 ‘잣나무’를 말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소나무’와 ‘잣나무’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소나무는 한명으로 ‘적송’(赤松) 또는 ‘여송’(女松)이라고 합니다. 즉, 소나무는 줄기의 색깔이 붉으므로 ‘적송’이라고 했으며, 그 잎이 유연하고 아름답기에 여인에 견주어서 ‘여송’이라고 했지요.
소나무는 늘푸른나무이기 때문에 푸른 믿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나무는 기름진 땅보다는 척박한 땅에서 견디는 힘이 큽니다. 이 또한 어려움을 잘 견디는 ‘군자’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소나무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특히 강원도 지방의 소나무는 줄기가 곧게 쭉쭉 뻗어 있습니다. 그 이름을 ‘강송’(剛松)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이 나무의 이름을 ‘미인송’(美人松)이라고 붙였습니다. 아주 적절한 이름이지요.
‘군자’는 죽은 후에 그 빛난 이름을 남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나무는 죽은 다음에 훌륭한 보물을 남깁니다. 즉, 소나무를 베고 나서 몇 년이 지나면 그 땅속의 뿌리에 균이 침입하여 집을 짓는데, 그 집을 ‘복령’(茯苓 또는 伏靈) 및 ‘복토’(伏兎)라고 합니다. 이 ‘복령’은 신장(腎臟)의 병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소나무를 보면, 그 잎이 2개씩 한 묶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엽송’(二葉松)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저절로 자라는 소나무류 중에서 2엽송의 나무로는 ‘소나무’ 외에도 ‘곰솔’이 있습니다. 이 ‘곰솔’은 바닷가에서 흔히 자라기에 ‘해송’(海松)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줄기의 빛깔이 검으므로 ‘흑송’(黑松)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살지는 않으나, 그 줄기의 빛깔이 흰 소나무의 종류도 우리나라에서 어렵사리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나무를 ‘백송’(白松)이라고 부릅니다. 이 나무는 중국 원산입니다. ‘백송’은 그 잎의 묶음이 3개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삼엽송’(三葉松)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적송’은 솔잎 속에 ‘관속’(管束)이 2개 있고 ‘백송’은 솔잎 속에 ‘관속’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묶음’보다 ‘관속’이 두 나무의 관계를 아는 데 더욱 중요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관속’이 같아야 ‘가까운 나무’라는 뜻이지요.
그런가 하면, ‘잣나무’는 그 잎의 묶음이 5개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엽송’(五葉松)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엽송’, 다시 말해서 ‘잣나무’는 그 잎 속에 ‘관속’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백송’은 ‘소나무’보다 ‘잣나무’와 더 가까운 사이랍니다.
‘잣나무’는 줄기가 굽는 일이 거의 없고 곁가지를 고루 사방으로 뻗습니다. 그렇기에 단정하고 아담한 모습으로 안정된 느낌을 전합니다. 게다가 잎이 빽빽하게 나 있어서 짙은 녹색을 지니기에 깊은 사색의 느낌도 받습니다. 그러니 척 보아서 ‘군자’의 나무로 안성맞춤이지요.
‘잣나무’는 한명으로는 ‘백자목’(栢子木) 또는 ‘신라송’(新羅松)이라고 합니다. 옛날, 신라 시대에 우리나라 잣나무의 열매인 ‘잣’은 중국에서 그 인기가 꽤나 높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잣’을 ‘신라송자’(新羅松子)라고 불렀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나무 이름이 ‘신라송’으로 되었습니다. ‘잣나무’는 우리나라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만주나 시베리아 및 우수리 지방 그리고 일본에 약간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잣나무’는 더운 지방보다는 추운 지방에서 잘 자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잣나무’는, 남쪽 지방보다 이북의 고산지대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군자’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어느 문헌을 보니, 앞에서 공자가 말한 ‘송백’(松栢) 또는 송백(松柏)은, ‘소나무’와 ‘잣나무’의 두 나무가 아니라, 두 글자가 한 나무인‘향나무’를 가리킨다고 씌어 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더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몇 번을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은 게, ‘말조심’입니다. 이에 대한 공자의 말이 다시 한번 ‘논어’에 펼치어져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말을 어눌하게 하려고 하며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고 한다.”(자왈 군자 욕눌어언이민어행.: 子曰 君子 欲訥於言而敏於行.)【논어 4-24】
‘군자’라면 마땅히 말에는 ‘느리고 둔하기를’ 바라고, 행동은 ‘민활하고 민첩하기를’ 바라야 한답니다. 그래서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자는 말을 가지고 사람을 천거하지 않으며, 사람을 가지고 그 말을 버리지 않는다.”
이 말은, ‘군자는 언제나 공정하므로 사람을 등용하면서 그 말이 착하다고 하여 바로 믿지 않으며, 또 그 사람이 착하지 않다고 하여 그 사람의 착한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라는 뜻이랍니다.
공자의 말은 또 이어집니다.
“언론이 독실하다고 그 인격을 허여한다면 그 사람이 과연 군자인지 아니면 겉만 꾸민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이 말 또한, 말이나 얼굴만 가지고 사람을 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말이나 얼굴은 얼마든지 좋게 꾸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군자’는 신념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이에 대한 해답도 ‘논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곧으면서도 무턱대고 나쁘게 곧지는 않다.”(자왈 군자 정이불량.: 子曰 君子 貞而不諒.)【논어 15-36】
여기에서 말하는 ‘정’(貞)은 ‘바른 일을 굳게 지킴’을 말하고, ‘양’(諒)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집착함’을 말합니다.
이는, ‘대의에 대해 굳은 신념을 지켜나가지만, 옳고 그름을 불문하고 소신을 지키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아, 그리고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공자의 말도 있습니다. 앞에서도 조금 이야기했듯이, ‘군자’는 결코 그 쓰임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쓰임’은 방편일 뿐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는 ‘방편’을 ‘목적’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강(江)이라는 이름의 도도히 흐르는 삶을 만났을 때 그 삶의 깊은 ‘강’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배’(舟)라는 이름의 ‘쓰임’(그릇)이 있어야 편리합니다. 하지만 ‘강’을 건너기 위해 꼭 ‘배’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마음만 단단히 먹는다면, ‘배’를 택하지 않고 헤엄쳐서 강을 건널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중학교 시절만 해도, 나는 실제로 한강을 헤엄쳐서 건너곤 하였습니다. 물론, 힘이 많이 듭니다. 그렇지만, 힘이 많이 든 만큼 자부심도 크게 지닐 수 있겠지요. 우리 삶에서 그런 일은 ‘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논어’를 읽다 보면, ‘군자’와 ‘소인’의 이야기가 서로 대비되어 나오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군자’나 ‘소인’은 모두 ‘선비들’, 즉 ‘지도자들’ 중에서 이르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백성 중에서는 ‘군자’나 ‘소인’이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면 ‘논어’에 기술되어 있는 ‘군자’와 ‘소인’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두루두루 보편적이고 편파적이지는 않으나 소인은 두루두루 편파적이고 보편적이지는 않다.”(자왈 군자 주이불비 소인 비이부주.: 子曰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논어 2-14】
여기에서 말하는, ‘주’(周)는 ‘보편적’을 가리키고 ‘비’(比)는 ‘편파적’을 나타냅니다. ‘논어’에서는 ‘주’를 ‘선’(善)으로, ‘비’를 ‘악’(惡)으로, 쓰고 있답니다. 그리고 ‘주’를 ‘의’(義)로, ‘비’를 ‘이’(利)로, 풀이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회 환원적 사명’을 지니지만 소인은 ‘이기주의적 탐욕’을 지녔다고 보아야 옳지요.
그 외에도 ‘논어’에는 ‘군자’와 ‘소인’을 대비적으로 기술해 놓은 내용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보기로 할까요?
‘군자의 마음은 평탄하고 너그러우며, 소인의 마음은 항상 근심에 차 있다.’라거나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하며, 군자는 형벌을 생각하고 소인은 은혜를 생각한다.’라거나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라거나 ‘군자는 위로 통달하고 소인은 아래로 통달한다.’라거나 ‘군자는 남의 선하고 아름다운 점을 권장하여 이루게 하고, 소인은 남의 악한 일을 권장하여 이루게 한다.’라거나 ‘군자는 화(和)하되 동(同)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동(同)하되 화(和)하지 아니한다.’라거나 ‘군자는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나 태연하지 못하다.’라거나 ‘군자는 자신에게 책임을 추궁하나, 소인은 남에게 책임을 추궁한다.’라는 등의 여러 이야기입니다.
‘공자가어’에는 ‘군자’와 ‘소인’에 대한 내용이 이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가 자로에게 말했습니다.
“어른을 뵈었을 때 어른의 말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리 갑자기 바람과 비가 몰아친다고 해도 자리를 떠나면 안 된다. 그런 까닭으로 군자는 자기의 능한 바를 가지고 남을 공경하는 것이고 소인은 이와 반대로 한다.”
공자가 또 말했습니다.
“군자는 자기 마음으로 귀와 눈을 인도하며 의지를 세워서 용맹스러운 일을 하지만, 소인은 이와 반대로 귀와 눈을 가지고 마음을 인도하여 공손하지 못한 태도를 용맹한 일로 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남에게 배척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 자라면 그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도 좋다고 말하겠다.”
또한, 안회도 군자에 대하여 알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안회는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그 내용이 ‘공자가어’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요.
안회가 물었습니다.
“군자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진 데에 가깝고 일을 법도대로 하는 것은 지혜로운 데 가까우며, 자기 몸을 위해서는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남을 위하는 데에는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
안회가 또 물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배우지 않아서도 행하며 생각하지 않고서도 얻는 것이니. 소자들아! 힘써 해야 한다.”
어느 때, 안회가 이어서 물었습니다.
“소인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킵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남의 착한 일을 헐뜯는 것으로 자기가 말을 잘한다고 하며, 남을 속이고 교활한 짓을 하는 것으로 지혜롭다고 하며, 남의 허물 있는 것을 다행으로 알며, 배우기를 부끄러워하면서 자기가 능하지 못한 것도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소인이라고 한다.”
안회가 다시 말했습니다.
“소인의 말도 군자의 말과 같은 것이 있으니,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공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자는 행동으로 말을 대신하고 소인은 다만 혀로만 말을 한다. 그러한 까닭에 군자는 의리에 대하여 서로 권하므로 물러가서도 서로 사랑하게 되며, 소인은 어지러운 일에 대하여 서로 사랑하므로 물러가면 서로 미워하게 된다.”
‘군자’에게도 안 보이는 ‘룰’이 있습니다. 즉,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에 관한 내용이 ‘논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경계해야 할 일이 3가지 있다. 즉, 젊었을 때는 혈기가 잡히지 않았으므로 여자를 경계해야 하고, 장년에는 혈기가 바야흐로 왕성하므로 싸움을 경계해야 하며, 노년에는 혈기가 이미 쇠잔하였으니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공자왈 군자 유삼계. 소지시 혈기미정 계지재색 급기장야 혈기방강 계지재투 급기로야 혈기기쇠 계지재득.: 孔子曰 君子 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논어 16-7】
여기에서 말하는, ‘계’(戒)는 ‘경계함’을 말하고, ‘미정’(未定)은 ‘아직 잡히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장’(壯)은 ‘30살부터 40살까지’이고 ‘노’(老)는 ‘50살 이후’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평균수명이 짧았기 때문이지요. 또, ‘강’(剛)은 ‘굳셈’을 이르고 ‘득’(得)은 ‘재화를 탐내는 것’을 이릅니다.
이 말은 ‘군자’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경계해야 할 일들입니다. 모두 가슴에 새겨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군자’가 두려워해야 될 일들도 있습니다. ‘논어’에 기록된 그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공자가 말했습니다.
“군자가 두려워해야 할 일이 오직 세 가지가 있다. 즉, 천명을 두려워하며 높은 어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한다. 소인은 천명을 알지 못하여 두려워하지 않으며 높은 어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어서 존경하지 않으며 성인의 말을 업신여긴다.”
그러고 보면, 천명을 모르면 ‘소인’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고말고요. ‘군자’는 천명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그 하늘로부터 받은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노심초사(勞心焦思)해야 하겠지요.
또, 공자가 말했습니다.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다. 즉, 보는 데는 맑기를 생각하고 듣는 데는 총명하기를 생각하며 용모에는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태도에는 공손하기를 생각하며 말에는 충실하기를 생각하고 일에는 조심하기를 생각하며 의심이 가는 것에는 묻기를 생각하고 화가 치밀 때는 어려운 일 당할 것을 생각하며 이득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한다.”
‘논어’뿐만이 아니라, ‘공자가어’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씌어 있습니다. 이왕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그 내용 또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공자가 말했습니다.
“군자에게는 3가지 용서하는 법이 있다. 임금이 있어도 능히 잘 섬기지 못하다가 신하에게 자기를 잘 섬기도록 요구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 아니며, 부모가 있어도 능히 효도를 못 하다가 자식에게 잘 보답해 주기를 요구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또 형이 있어도 능히 공경하지 못하다가 아우에게 순종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비로서 능히 이 3가지 용서하는 법의 근본을 밝게 한다면 자기의 몸을 단정히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는 또 말했습니다.
“군자는 세 가지 생각하는 게 있으니 잘 살펴서 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젊었을 때 배워두지 않으면 자라서 무능하게 되는 것이고, 늙도록 자식을 가르치지 않으면 죽어서 아무것도 생각지 못하게 되는 것이며, 재물이 있어도 이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으면 자기가 궁해져도 남이 구원해 주지 않게 되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젊어서는 그 자랐을 때의 일을 생각해서 학문에 힘쓰는 것이요, 늙어서는 죽을 때의 일을 생각해서 가르치기를 힘써서 하며 재물이 있을 때는 그 곤궁할 때의 일을 생각해서 남을 구제하기에 힘쓰는 것이다.”
공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군자는 3가지 근심이 있다. 즉, 군자는 듣지 못한 것이 있을 때는 그것을 미처 듣지 못할까 근심하고 이미 듣고서는 배우지 못할까 걱정하며 또 이미 배우고 나서는 능히 행하지 못할까 근심한다. 그 덕은 있어도 그 문장이 없으면 군자는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이미 얻었던 것을 잃게 되어도 군자는 그것을 부끄러워한다. 땅덩이는 있어도 백성이 부족하면 군자는 그것을 부끄러워하며 업적은 마찬가지인데 저 사람이 공로가 더하면 군자는 그것을 부끄러워한다.”
이 말은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맞추어서 음미해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 대목은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인 ‘군자’에 대한 내용이라고 여겨집니다. 국토는 있어도 국민이 부족하면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이민 가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잘 되어 간다면 왜 타국으로 떠나겠습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를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또, 나의 시 한 편을 소개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너는 어찌 똑같은 풀로 태어나
귀한 존재가 되었는가.
너는 어찌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
젖은 시름을 견디는가.
너는 어찌 추운 계절에 꽃 피어
매운 품격을 지키는가.
너는 어찌 잡혀 온 몸이면서도
높은 자리에 앉았는가.
너는 어찌 가난한 나에게로 와서
슬픈 의미로 머무는가.
- 졸시 ‘한란아, 너는 어찌’ 전문
나무에 있어서는 ‘소나무’나 ‘잣나무’가 군자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면, 풀에 있어서는 ‘한란’이 군자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란’은 난초과의 늘푸른여러해살이풀입니다.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걸쳐서 꽃을 피우는데, 향기를 지닙니다. 한라산 남쪽 기슭의 상록수림 밑에서 자랍니다. 내가 제주도 서귀포에 살 때 이 ‘한란’을 많이 보았지요. 다른 풀들에 비해, 그 기품이 아주 고고합니다. 그러니 ‘군자’에 비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부귀는 누구나 바라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지 않았다면 군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빈천은 누구나 싫어하는 바이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지 않았어도 군자는 버리지 않는다. 군자가 ‘인’을 버리고 난 후에 어찌 ‘군자’라는 이름을 이루겠는가?”
비록, 억울하게 얻게 된 ‘빈천’이라고 하여도, 군자는 불평하지 않고 그 ‘빈천’을 받아들인다고 하는 그 말이 커다란 감동으로 나에게 다가옵니다. ‘한란’이 왜 그토록 ‘추운 계절의 개화’를 고집하고 있는가를 이제는 알겠습니다.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더디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라는 공자의 말처럼,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한란의 꽃과 향기가 더욱 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군자’를 만나고 싶거든 서귀포로 가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한란’을 만나 보십시오.(글: 김 재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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