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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게 없다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온 후에 정치에 대한 꿈을 접고 오직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공자는 주로 ‘시’(詩)와 ‘서’(書)와 ‘예’(禮)와 ‘악’(樂)을 중심적인 교재로 삼아서 가르쳤는데, 제자가 3,000명에 이르렀고, 그 중 ‘육예’(六藝)에 통달한 제자만 하더라도 72명이나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육예’는 알지요? 즉, ‘예’(禮)와 ‘악’(樂)과 ‘사’(射)와 ‘어’(御)와 ‘수’(數)와 ‘서’(書)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는, 공자가 네 방면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했지요. 그것은 바로 ‘문’(文)과 ‘행’(行)과 ‘충’(忠)과 ‘신’(信)입니다. 그리고 4가지를 금지하도록 했는데, 그것은 ‘억측하지 말 것’과 ‘독단하지 말 것’과 ‘고집하지 말 것’과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말 것’이었답니다.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는 ‘논어’ 중의 ‘술이’(述而) 편에도 분명히 씌어 있습니다. 즉, ‘자이사교 문행충신’(子以四敎 文行忠信)이라고 되어 있지요. 여기에서 ‘문’(文)은 ‘역대의 문헌’이고, ‘행’(行)은 ‘사회생활에서의 실천’이며, ‘충’(忠)은 ‘다른 사람에 대한 정성’이고, ‘신’(信)은 ‘사람과 교제할 때의 믿음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문’(文)은 ‘넓은 뜻의 배우는 것’을 가리키고, ‘행’(行)은 ‘도를 배워서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나타내며, ‘충’(忠)은 ‘성심껏 노력하는 것’을 이르고, ‘신’(信)은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가르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속담까지 생겼겠습니까? 이는, ‘애탄 사람의 똥은 몹시 쓰다는 데에서, 선생 노릇이 몹시 힘듦을 이르는 말’이지요. 그래서 보람도 있기는 있습니다.
공자는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하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하여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입으로 말하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원문으로 ‘불왈여지하여지하자’(不曰如之何如之何者)입니다. 즉, 심사숙고하지 않거나 호들갑을 떨며 ‘행’(行)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의 핵심을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또 다른, 공자의 ‘학문하는 태도’에 대한 언급이 논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자는 말했다. “온종일 여럿이 모여 있으면서 말이 의로움에 미치지 못하고 잔꾀만 부리고 있다면 참으로 딱한 일이다.”(자왈 군거종일 언불급의 호행소혜 난의재.: 子曰 羣居終日 言不及義 好行小慧 難矣哉.)【논어 15-16】
여기에서 말하는, ‘군거’(羣居)는 ‘여럿이 함께 모여 있음’을 가리키고, ‘언불급의’(言不及義)는 ‘그들의 말이 의로움에 언급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소혜’(小慧)는 ‘사사로운 지혜’ 또는 ‘자질구레한 꾀’ 등을 이르며, ‘난의재’(難矣哉)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려운 일’ 또는 ‘덕을 지니기가 어려운, 아주 딱한 일’ 등으로 풀이됩니다.
이는, ‘여럿이 모여서 종일 이야기를 하면서도 잡담만 하고 의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학문을 이루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배우는 사람으로서 덕을 쌓기도 힘들다.’라는 의미입니다. 공자가 ‘참 딱한 일이다.’라고 한 말에는, ‘학문을 이루기가 어렵다.’라거나 ‘그런 사람을 가르치기가 어렵다.’ 등의 뜻이 숨겨져 있음이 분명합니다.
어느 선생님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공자에게도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되는 제자가 있었을 터입니다. 그리고 그런 제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세심한 평가가 이루어졌을 듯싶습니다. 다음은 논어에 담겨 있는 내용입니다.
어느 날, 계강자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중유(仲由)에게 정사를 맡겨도 되겠습니까?”
‘중유’는 바로 ‘자로’(子路)를 가리킵니다.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중유는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으니, 정사를 맡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여기에서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음’을, 공자는 ‘과(果)하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자, 계강자는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사’(賜)에게 정사를 맡겨도 되겠습니까?”
‘사’는 ‘자공’(子貢)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에, 공자는 말했습니다.
“‘사’는 모든 일에 통달해 있으니, 정사를 맡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여기에서 ‘모든 일에 통달해 있음’을, 공자는 ‘달(達)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공자의 말을 듣고, 계강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구(求)에게 정사를 맡겨도 되겠습니까?”
‘구’는 ‘염유’(冉有)를 이릅니다. 또 공자는 대답했습니다.
“‘구’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니, 정사를 맡아 보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여기에서 ‘재능이 있음’을, 공자는 ‘예(藝)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렇듯 공자는 그 제자의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로는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고, 자공은 ‘모든 일에 통달’하였으며, 염유는 ‘재능’이 있음을, 공자는 환히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세 사람은 공자의 많은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들로 일컫는 사람들입니다. 공자는 이들 외에도 많은 제자의 성품이나 능력 등을 헤아리고 있었겠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특성을 ‘과하다’라거나 ‘달하다’라거나 ‘예하다’라고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다만 놀라울 뿐입니다.
제자들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는 ‘공자가어’에도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날, 자하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안회의 사람됨이 어떠합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회(回)의 믿음성으로 말하면 나보다 낫다.”
자하가 다시 물었습니다.
“자공의 사람됨은 어떠합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사(賜)의 예민함은 나보다 낫다.”
자하가 또 물었습니다.
“자로의 사람됨은 어떠합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유(由)의 용맹은 나보다 낫다.”
자하가 물었습니다.
“자장의 사람됨은 어떠합니까?”
공자가 대답했지요.
“사(師)의 엄숙함은 나보다 낫다.”
그 말을 듣고, 자하는 자리를 피하면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네 사람은 무엇 때문에 선생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리 오거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회(回, 안회)는 마음에는 능하나 일을 돌이켜서 생각하는 데는 능하지 못하고, 사(賜, 자공)는 예민하기는 하나 남에게 굽힐 줄을 모르며, 유(由, 자로)는 용맹스럽기는 하지만 능히 일에 겁낼 줄을 모르고, 사(師, 자장)는 엄숙하기는 하나 능히 남과 화합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네 사람(제자)의 장점을 다 가져와서 나와 바꾸려고 할지라도 내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거다. 이것이 그들이 나를 스승으로 섬기면서도 의심하지 않는 까닭이다.”[居! 吾語女. 夫回能仁而不能反 賜能辯而不能訥 由能勇而不能怯 師能莊而不能同 兼四子之有以易吾 吾不許也 此其所以事吾而不貳也 (列子 仲尼編)]
어느 때, 공자가 ‘자하’에게 이른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공자가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너는 군자의 선비가 되고 소인의 선비는 되지 말거라.”
여기에서 ‘군자’(君子)는 ‘자기 자신을 수양하면서 지(智)와 행(行)이 일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소인’(小人)은 ‘자기의 이익과 명예를 앞세우는 속된 인간’을 말합니다. 물론, ‘군자’나 ‘소인’은 모두 선비 중에서 나누어지게 됩니다. 일반 백성 중에서는 따로 ‘소인’을 지칭하는 경우가 없지요.
그건 그렇고, 공자는 자하를 어떻게 평가하였는지를 알고 싶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도 ‘공자가어’에 담겨 있습니다.
어느 때, 공자가 외출하려고 했습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우산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우산은 상(商)에게 있습니다.”
‘상’(商)은 ‘자하’(子夏)의 이름입니다. 그의 성은 ‘복’(卜)이었지요. 제자들의 말을 듣고,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은 사람됨이 재물에 너무 인색하다. 내가 듣기로는 남과 교제하는 데 있어서 그 장점은 추켜세우고 그 단점은 숨겨 주면 교제가 능히 오래 계속된다더라.”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했음을 나타내는 내용이 ‘논어’에 씌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할까요?
공자가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무엇을 숨기고 있다고 여기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숨기는 게 없다. 내가 하는 일이라면 너희들에게 보여 주지 않은 일이 없으니, 이는 바로 내 모습이다.”(자왈 이삼자 이아위은호. 오무은호이. 오무행이불여이삼자자, 시구야.: 子曰 二三子 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논어 7-24】
여기에서 ‘이삼자’(二三子)는, 앞에서 말했듯이, 공자가 제자들을 부를 때의 호칭으로 ‘너희들’ 또는 ‘자네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아위은호’(以我爲隱乎)는 ‘내가 숨긴다고 생각하느냐?’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무은호이’(吾無隱乎爾)는 ‘나는 숨기는 따위의 짓은 하지 않는다.’를 이릅니다. 또한, ‘시구야’(是丘也)라는 말은 ‘이는 바로 공구의 모습이다.’라는 뜻이지요. ‘구’(丘)가 ‘공구’(孔丘)이고, ‘공구’는 공자의 이름이라는 사실은 잊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공자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하고 절로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아마도 공자는 이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제자들은 내 지(知)와 덕(德)이 너무 넓다고 여기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모두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불만이 있는 성싶다.’
공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그 나름대로 어떤 눈치를 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도, 공자는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숨기는 게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공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더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부지런히 배우려는 사람이다.”
이 말은, ‘너희들도 옛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부지런히 배운다면 나처럼 많은 것을 알게 된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많이 아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열심히 배우기만 하면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를 논어의 원문에서는 ‘아비생지지자’(我非生知之者)라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제자들을 향하여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함께 가면 그 가운데에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의 좋은 점을 골라서 따르고 좋지 못한 점을 거울로 삼아서 고쳐야 한다.”
가슴에 와 닿는, 참으로 귀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꼭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어야 나의 스승이 되는 게 결코 아니지요.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도 그의 결점을 거울로 삼아서 나를 바르게 세우게 된다면, 그는 바로 나의 스승이 아니겠습니까?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라는 이 말을 반드시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하루는, 자로가 공자에게로 왔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물었지요.
“지혜가 있는 자는 어떠하며 어진 자는 어떠하냐?”
자로가 대답했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남에게 나를 알게 하며, 어진 사람은 남이 자기를 사랑하게 합니다.”
공자는 자로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선비라고 말할 수 있다.”
자로가 물러가고 나서 이번에는 자공이 들어왔습니다. 공자는 자공에게도 똑같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자공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사람을 알아보고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공자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가히 선비라고 할 수 있겠다.”
자공이 물러가고, 또 안연이 들어왔습니다. 공자는 안연에게도 같은 내용의 질문을 했습니다. 안연이 대답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를 알고 어진 사람은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사군자’(士君子)라고 말할 수 있다.”
‘사군자’는, 앞에서 공자가 자하에게 말한 ‘군자의 선비’라는 뜻일 성싶습니다. 이는, ‘소인의 선비’에 반대되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안연은 다른 제자들보다 뛰어났으며, 그에 따라 공자는 더없이 지극한 사랑을 아낌없이 그에게 주었습니다. 안연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공자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하지만, 안회가 너무 가난하였으므로, 공자는 그게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자공은 장사하는 데 재주가 있어서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말했습니다.
“회(回)는 도(道)에 가까울 정도로 학문이 완성되었으나 자주 뒤주가 비었다. 그러나 사(賜)는 하늘의 이르는 바(天命)가 아니어도 돈을 굴렸는데 그 투기가 잘 적중되었다.”
학문과 재물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학문의 성취도가 높은 ‘안연’은 지극히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자공’은 학문의 성취가 ‘안연’보다 못 하였으나 돈을 버는 데는 남다른 재주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논어의 원문을 보면, ‘누공’(屢空), 즉 ‘자주 비었다.’라는 말과 ‘누중’(屢中), 즉 ‘자주 맞추었다.’라는 말에 주목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자주 비었다’라는 ‘뒤주가 비었다’라는 말이고, ‘자주 맞추었다’라는 ‘이렇게 하면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게 자주 들어맞았다.’라는 말입니다.
하루는, 염유가 조정에서 물러 나오자, 공자가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염유가 대답했습니다.
“정사의 일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가 말했습니다.
“사사로운 일이었겠지. 만약에 정사 때문이었다면 내가 등용되지 않은 처지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 일을 들었을 테지.”
공자의 이 말은, 염유가 계강자의 사사로운 일을 보느라고 늦었음을 질책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염유가 계강자의 사적인 일을 돌보면서 나쁜 짓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 날, 공자가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써 소송의 판결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유’밖에 없겠다.”
‘유’(由, 자로)는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한 번 남에게 머리를 끄덕거린 일에 대하여는 결코 미루는 일이 없이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고 합니다. 이는, 원문으로 ‘자로 무숙락’(子路 無宿諾)의 풀이입니다.
공자의 자로에 대한 사랑은, 안연에 대한 사랑과는 그 빛깔이 달랐다고 여겨집니다. 안연은 가장 뛰어난 제자였으나 가난했지요. 그러나 자로는 가장 믿음직한 제자였으나 너무 굳세었습니다.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 ‘굳세다’라는 점에서, 공자는 자로가 어떤 화를 당하여 목숨을 잃을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짐작하게 하는 일화가 논어에 나타나 있습니다.
즉, ‘민자(閔子)가 옆에서 모실 때는 공손하고 정직한 모습이었고 자로(子路)는 지나치게 강한 모습이었으며 염유(冉有)와 자공(子貢)은 온화하고 즐거운 모습이기에 공자는 기뻐하였다. 그리고 (공자는 말하기를) 유(由)와 같은 사람은 제대로 죽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민자’(閔子)는 제자인 ‘민자건’(閔子騫)을 나타내고, 물론 ‘유’(由)는 ‘자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원문을 보면, ‘공손하고 정직한 모습’은 ‘은은’(誾誾)이라고 하였으며, ‘지나치게 강한 모습’은 ‘항항’(行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화하고 즐거운 모습’은 ‘간간’(侃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참으로 그 솜씨가 놀랍습니다.
그런데 끝에 붙인 공자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제대로 죽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라는, 공자의 이 말은, ‘어떤 재앙으로 죽게 될 우려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 원문은 ‘부득기사연’(不得其死然)으로 되어 있는데, 이 말 중에서 ‘연’(然)이 ‘아직 그렇다는 것은 아니나 염려된다.’라는 뜻이지요.
공자는 많은 제자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의 배움의 정도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공자는 그에 대한 일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함께 배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깨우침으로 나아갈 수는 없고, 같은 깨우침을 이룬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자리에 설 수 없으며, 같은 자리에 선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일의 경중을 함께 저울질할 수는 없다.”(자왈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가여적도 미가여립, 가여립 미가여권.: 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논어 9-29】
앞의 말 중에서 ‘적도’(適道)는, ‘적’(適)을 ‘가다’의 뜻으로 새겨서 ‘깨우침으로 나아감’을 이릅니다. 그리고 ‘권’(權)은 ‘권세’라는 의미보다는 ‘저울추’ 또는 ‘무게를 달다.’ 등의 뜻으로 여겨집니다.
왜 공자는 이런 말을 했을까요? 공자는 제자들에게 열심히 노력하기를 늘 당부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땀 흘려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그 이루는 것이 다르게 됨을 이렇게 말했을 듯싶습니다. 공자는 자주 시의 구절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즐겼습니다. 한 번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런 말도 했습니다.
“어떤 시에 ‘산앵두나무의 꽃이 하늘하늘 나부끼니, 내 어찌 그대가 그립지 않겠는가마는 그대의 집이 너무 멀구나.’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정으로 그리워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정말로 그렇지 않다면 어찌 먼 게 문제가 되겠는가?”
이 말은, ‘진리를 진정으로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멀고 가까움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라는 뜻으로도 풀이됩니다. 그건 그렇고, 이 시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시의 원문은 ‘당체지화 편기반이, 기불이사 실시원이’(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당체’(唐棣)는 어떤 나무를 가리킬까요? ‘체’(棣)란, 아가위나무(山査)를 가리킨다고도 하고, 산앵두나무를 가리킨다고도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산앵두나무’가 아닐까 합니다. ‘아가위나무’는 능금나뭇과의 식물이고, ‘산앵두나무’는 철쭉과의 나무입니다. 그런데 시에서 ‘하늘하늘 나부낀다.’라고 하였으니, 그 모습에 산앵두나무의 꽃이 더 어울릴 성싶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공자가 한가하게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장’과 ‘자공’과 ‘자유’가 함께 모시고 있다가 예(禮)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여기 앉아라. 내가 천하에 두루 행하는 예를 말해 주겠다.”
자공이 좌석을 넘어와서 말했습니다.
“예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마음껏 공경하되, 예에 맞지 않으면 도리어 야비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또 얼굴빛은 공손하되, 예에 맞지 않으면 남으로부터 속인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용맹이 있되, 예에 맞지 않으면 남을 거스른다는 말을 듣게 된다. 말만 영리하게 하는 사람은 인자한 마음이 없는 법이다.
자공이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에 맞는다고 하겠습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다만, 예대로 실행할 뿐이다. 대개 예란 것은, 무슨 일이든지 적중하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자공이 물러나고, 자유가 나와서 물었습니다.
“예는 나쁜 것을 다스리고 완전히 좋게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그 말이 맞습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할 뿐이다.”
자유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교묘(郊廟)와 사직의 예는 귀신을 어질게 여기는 까닭이며, 천자의 대제(大祭)에 대한 예는 ‘조상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차례’를 어질게 여기는 까닭이며, 빈소(殯所)에 상식(上食)을 올리는 예는 죽어서 초상 치르는 것을 어질게 여기는 까닭이며, 향사(鄕射)의 예는 향당(鄕黨)을 어질게 여기는 까닭이며, 국제적인 연회의 예는 빈객(賓客)을 어질게 여기는 까닭이다. 이 ‘교묘와 사직’의 뜻과 ‘천자의 대제’의 예를 밝게 만들다 보면 나라를 다스리기란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보다 더 쉽다. 그러므로 가정에 예가 있기에 어른과 어린이가 분별이 있고, 집안에 예가 있기에 삼족이 모두 화목하며 조정에 예가 있기에 관작(官爵)이 질서가 있고, 전렵(田獵)에도 예가 있기에 군사가 한가로운 시간을 가지며 군여(軍旅)에도 예가 있기에 무공이 이루어진다.”
이번에는 자유가 물러나고 자장이 나와서 물었습니다.
“예는 무엇을 가리켜서 일컫는 말입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예는, 직접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군자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처리할 줄을 알아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예가 없으면 마치 눈먼 사람이 길잡이가 없이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이렇듯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난 후, 자공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하면 옛날 ‘기’(虁, 음악을 맡은 관리)와 같은 자도 예를 잘 몰랐다고 하겠습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아무리 옛날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禮)에만 통달하고 악(樂)에 통달하지 못하면 너무나 편벽된 사람이 될 뿐이다. ‘기’라는 사람도 ‘악’에는 통했을지언정 ‘예’에는 통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그 옛날 사람이라는 이름만 전하게 되었다. 대체 제도라는 것도 예에 있고, 문무라는 것도 예에 있다. 그러나 행하는 것은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공자의 이 말을 듣고, 세 제자는 서로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마음이 상쾌하기가 마치 무엇을 덮어썼다가 벗어 버린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읽으니, 내 마음속까지 후련해집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자공과 안연의 공자에 대한 말이 다음과 같이 씌어 있습니다.
자공이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시와 서와 예와 악에 대한 가르침은 들을 수 있으나, 선생님의 천도(天道)와 성명(性命)에 대한 가르침은 들을 수 없었다.”
‘천도’는 ‘천지자연의 도리’ 또는 ‘천체가 운행하는 길’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명’은 ‘인성과 천명’ 또는 ‘생명’을 나타냅니다. 공자는, 이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묻지 않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더 시급한 가르침들이 많았기 때문이겠지요.
옆에서 안연이 탄식하며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도학은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깊이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앞에 있는가 하고 생각하면 홀연히 뒤에 가 있다.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사람을 잘 이끌어 주시고 풍부한 전적과 문장으로 나를 박식하게 해주시며, 예의와 도덕으로 나를 절제하게 하시니 내가 학문을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내 재주를 다하여 보았다. 그러나 선생님의 학문은 탁연히 내 앞에 우뚝 서 있으므로 아무리 따라가려고 해도 따라갈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아, 공자와 그 제자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들을 한없이 사랑하고 제자들은 이처럼 선생님을 우러러보며 따랐습니다. 그러나 세워짐이 있으면 반드시 무너짐도 있는 법! 공자의 제자들에 대한 이런 끔찍한 사랑은, 제자들이 하나둘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공자 자신의 목숨까지 단축하는 결과를 빚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또 나의 시 한 편을 소개해야 하겠습니다.
오로지 지닌 손이 넓으면
그 마음 또한 커다랗다고 하였던가.
남에게 베푸는 즐거움으로
그 빛깔이 마냥 푸르기만 하다.
생겨나서 단 하루도 쉴 틈이 없이
부지런히 일에만 매달렸으니
그 살결이야 당연히 거칠지 않겠느냐
굵은 힘줄이 드러나 있어서
고단한 네 일상을 짐작하게 한다.
가는 바람이 손등을 쓰다듬고
오는 가랑비가 주름을 적시는데
나는 하늘의 빛나는 일들을 떠올린다.
늘 펴서 밝히고 있으므로
아무것도 안 숨김을 나는 아노니
그 몸과 마음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사랑을 다시 빚는다.
- 졸시 ‘떡갈잎 그 손’ 전문
공자가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무엇을 숨기고 있다고 여기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숨기는 게 없다. 내가 하는 일이라면 너희들에게 보여 주지 않은 일이 없으니, 이는 바로 내 모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자, 보아라. 나의 빈손을!’이라고 하며 제자들의 눈앞에 손을 벌려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공자의 손은 ‘위대한 손’입니다. 넓은 ‘떡갈잎 그 손’이 공자의 손을 닮았습니다. 지닌 손이 크니, 그 마음 또한 커다랗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즐거움으로 그 빛깔이 마냥 푸르기만 합니다. 태어나서 단 하루도 쉴 틈이 없이 공부하는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어느 땐가, 공자는 말하기를 ‘나는 곤궁하게 자랐기에 손재주가 좋다.’라고 했지요. 굵은 힘줄이 드러나 있어서 고난의 그 일상을 짐작하게 만듭니다. ‘가는 바람이 손등을 쓰다듬는 때’도 있었고 ‘오는 가랑비에 손등의 주름이 젖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빛나는 일’(天命)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부지런히 배우려는 사람이다.”
나는 공자의 이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어두움을 벗어나려면 그저 배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함께 가면 그 가운데에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의 좋은 점을 골라서 따르고 좋지 못한 점을 거울로 삼아서 자기의 결점을 고쳐야 한다.”(글: 김 재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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