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쿠러, 콩쯔

28.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4. 09:22

28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궁금증은 아무래도 죽음에 관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과연, 죽고 난 후에는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가? 천당이 있고 지옥도 있는가? 그리고 ‘귀신’이라는 게 정말 있는가? 또, 더 나아가서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는가?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하느님이 있다면, 정말로 그가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는가? 등등. 이런 여러 가지 의문은 언제나 사람들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공자는 이런 일들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었을까요? 공자는 제사를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자가 귀신을 중히 여긴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귀신에 대한 확신이 없이, ‘어찌 그리 번거로운 제사를 강조하였겠는가.’라고 여겼지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자만은 죽음과 사후의 세계와 귀신 등에 대하여 명약관화(明若觀火)한 해답을 우리에게 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의 기대는 무참히 모두 무너져 버렸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공자는 괴이한 것이나 폭력이나 문란한 것이나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근원지는, ‘논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에 대한 ‘논어’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자는 괴이한 것이나 힘으로 하는 것(폭력)이나 어지러운 것이나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자 불어괴력난신. 子 不語怪力亂神)【논어 7-20】

 여기에서 말하는, ‘괴’(怪)는 ‘괴이하다’ ‘기이하다’ ‘기이하게 여기다’ ‘의심함’ ‘이상야릇하다’ ‘불가사의함’ ‘도깨비’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여기에 열거한 모든 의미가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렇듯 정상적이 아닌 일은 도(道)에도 어긋난다고, 공자는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力)은, ‘힘’ ‘힘쓰다’ ‘군사’ ‘심하다’ ‘하인’ ‘일꾼’ 등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이 ‘역’ 자는 ‘물건을 들어 올릴 때 생기는 근육의 모양을 본뜬 글자’라고 합니다. 힘을 쓰는 일은 야만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공자는 인자(仁者)의 도리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던 성싶습니다.
 그 반면에, ‘난’(亂)은 ‘어지럽다’ ‘난리’ ‘얽히다’ ‘반역’ ‘배반하다’ ‘다스리다’ 등의 의미를 이릅니다. 이는,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는 실을 손으로 잡아당겨서 풀고 정리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난동을 부려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을 가리킨다고 여겨집니다. 이런 일은 공자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또, ‘신’(神)은 ‘귀신’ ‘하늘의 신’ ‘상제(上帝)’ ‘신령’ ‘마음’ ‘영묘하다’ ‘불가사의한 것’ ‘혼’ 등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귀신’을 가리켰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겠지요. 말하자면 공자는 귀신을 논한다는 게 허무맹랑(虛無孟浪)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자는 ‘터무니없이 미덥지 못하고 실제의 모양이나 내용이 없는 일’을 함부로 말할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문득, 한비자와 제(齊)나라 왕이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제나라 왕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그리기가 가장 어려운가?”
 “개와 말을 그리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그리기가 가장 쉬운가?”
 “귀신과 도깨비를 그리기가 가장 쉽습니다.”
 이 이야기 중에서 ‘귀신과 도깨비를 그리기가 가장 쉽다.’라는 말의 원문은 ‘귀매최이’(鬼魅最易)라고 되어 있습니다. ‘귀매’(鬼魅)의 사전적 풀이는, ‘도깨비와 두억시니 따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두억시니’는 ‘모질고 악한 귀신의 하나’를 이릅니다. 알려져 있기로는 ‘야차’(夜叉)라고 하지요. ‘야차’는, 모습이 추악하고 잔인한 귀신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합니다.
 아무튼 도깨비나 귀신은 누구도 본 사람이 없으므로 아무렇게나 그려도 된다는 말일 터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그런 것들에 대하여 입을 닫았음이 분명합니다.
 ‘공자가어’에는 귀신에 대한 공자의 말이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재아’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귀신의 이름만 듣고 그 사실을 몰라서 선생님께 듣고자 합니다.”
 공자가 말했습니다.
 “사람이 생겨날 때는 기운도 있고 넋도 있는 것이니, 이 기운이란 것은 사람의 정신이 왕성하다는 징조이다. 그러나 사람은 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며, 죽으면 몸뚱이는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인데 이를 귀(鬼)라고 하며, 혼(魂)과 기운은 하늘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것을 ‘신’(神)이라고 부른다. 이 귀와 신을 합하여 제사 지내는 것은 효도의 지극함이며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이 여기에서 생기게 된다. 죽은 사람의 뼈와 살은 들판 위에 떨어져서 흙으로 변해 버리게 되고, 혼과 기운은 위로 치솟아서 이것이 혼신(魂神)의 나타나는 상징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께서는 물건의 정기로 인해서 지극한 법을 만들고 이것을 ‘귀신’(鬼神)이라고 이름 지어 백성에게 법이 되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혼신이 나타나는 상징’이라는 구절이 나에게는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상징’이란 말 자체가 ‘어떤 관념이나 사상을 구체적인 사물이나 심상을 통하여 암시하는 일’을 이릅니다. 게다가 ‘성인이 백성에게 법이 되도록 했다.’라는 말은, ‘백성들에게 효도를 권장하는 방편’으로 귀신을 만들어 냈다는 뉘앙스가 풍깁니다. 그러면 공자의 말을 더 들어 보도록 할까요?
 “그렇게 하고서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하여 사당을 짓고 종묘와 원묘(遠廟)를 설치하여 봄과 가을로 두 차례씩 제사를 올리게 했다. 여기에서 친하고 서먹서먹한 사이를 구별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를, ‘옛일을 회복하고 처음 일을 다시 하도록 하는 것’은 그 처음에 생겨난 바를 감히 잊어버리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렇군요. 귀신을 만든 이유는 ‘처음 생겨난 바를 감히 잊어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야만 효도하게 될 터이니까요. 짙게 끼었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합니다. 더 공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옛날 문왕께서 제사 지낸 이야기를 들으면 대략 다음과 같다. 문왕은 죽은 사람 섬기기를 살아 있는 사람 섬기듯이 하여 제삿날을 맞이하면 반드시 슬퍼하는 얼굴과 조용한 마음으로 부모의 얼굴을 뵙는 듯이 하며 부모가 좋아하던 바를 자기가 보는 것처럼 했다. 이런 까닭에 ‘시’에 이르기를 ‘밤이 새도록 잠자지 않고 두 분 부모를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제사가 드는 전날은 밤이 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부모를 생각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며, 또 생각하기도 깊게 한다. 그리고 제삿날을 당해서는 ‘즐거워하는 마음이 반이고 슬퍼하는 마음이 반’이라는 것이니, 왜냐하면 제사를 지낼 때는 부모가 와서 친히 흠향하는 듯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이 든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제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부모를 따라갈 수가 없으니 슬픈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효자의 정(情)이니 이 일은 오직 문왕이 능히 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부모가 와서 친히 흠향하는 듯싶은 생각이 든다.’라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는, ‘부모가 와서 친히 흠향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자가 귀신의 존재에 대하여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면 ‘부모가 와서 친히 흠향하기 때문에’라고 분명히 기술하였겠지요.
 이와 비슷한 내용이 ‘논어’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상을 제사 지낼 때는 앞에 있는 듯이 하고, 신을 제사 지낼 때는 신이 있는 듯이 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나는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제여재 제신여신재. 자왈 오불여제 여부제.: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논어 3-12】

 여기에서도 ‘신이 있는 듯이’라는 말이 ‘공자가어’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즉, ‘없어도 있는 듯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학자는, ‘조상을 제사 지낼 때는 조상이 앞에 있는 듯이 하고, 신을 제사 지낼 때는 신이 있는 듯이 하였다.’라는 앞의 말이 공자의 말이 아니라, 고경(古經)의 말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공자가 전부터 이미 행하고 있음을 밝힌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은 ‘내가 직접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내가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라는 공자의 말입니다. 이는, 귀신이 객관적인 게 아니라 주관적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귀신’이라는 존재는 각자의 마음속에 상상으로만 있기에,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은 제사는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가슴에 조상 등의 귀신을 상상으로 모시는 일은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기는, 많은 사람 중에는 귀신의 존재를 단단히 믿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요. ‘보이지는 않지만, 있기는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귀신의 형상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 또한 자기대로 상상하는 모습을 만들게 됩니다. 그에 대한 공자의 말이 ‘공자가어’에 씌어 있습니다.
 자유(子游)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장사를 지내는 데 있어서 풀잎으로 귀신의 형용을 만드는 법은 예전부터 있던 법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여러 사람 중에 혹 허수아비를 만드는 자가 있는데, 이것은 초상을 치르는 데 아무런 유익함이 없는 게 아닙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풀잎으로 귀신의 형용을 만든 자는 혹 잘했다고 하겠지만, 허수아비를 만든 자는 어질지 못하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산 사람을 거기에 쓰려고 하지 않겠느냐?”
 공자의 이런 생각은 아주 자연스럽게 제자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그 한 예로, 제자인 서문표(西門豹)의 이야기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문표는 업(鄴)이라는 땅에 군수(令)로 가게 됩니다. 그가 한 고을에 이르니, 마을이 썰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네 촌장에게 물었습니다.
 “이 곳이 왜 이렇소?”
 촌장이 대답했습니다.
 “강의 물귀신이 부인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 마을에서는 수해를 막기 위하여 해마다 강의 물귀신에게 제사를 지냄과 동시에 마을의 처녀를 한 명씩 바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한 음모가 숨겨져 있었지요. 즉, 마을의 권세 있는 세 노인과 아전 몇이 짜고서 물귀신에게 제사를 올린다는 핑계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많은 돈을 거둔 다음, 그중에 극히 일부만을 제사의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 돈은 자기들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제사가 치러지는 그날이었습니다. 서문표가 강가로 나가니, 마침 세 노인과 아전들을 비롯하여 무당 등,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물귀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서문표는 그들에게로 다가가서, 물귀신에게 바칠 처녀를 데려오도록 한 후에 한마디 했습니다.
 “이 여자는 잘못 골랐다!”
 그리고는 좌중을 둘러본 후에, 무녀의 우두머리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물귀신과 가장 잘 통하는 사람이니, 저 여자 대신으로 네가 먼저 물귀신에게로 가서 ‘내가 며칠 후에 더 좋은 여자를 구해서 보내 주겠다.’라는 말을 전하여라.”
 말을 마친 다음, 서문표는 그 무녀를 강물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습니다. ‘첨벙’하고 물속으로 들어간 그 늙은 무녀는, 한참 동안을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서문표가 다시 말했습니다.
 “왜 이리 소식이 없느냐? 안 되겠다. 이번에는 네가 들어가야 하겠다.”
 그렇게 하여 서문표는 늙은 무녀를 비롯하여 무녀 두 사람을 더 강물에 빠뜨리고 난 후에 이번에는 세 노인과 아전들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자, 이제 누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겠느냐?”
 그러자, 세 노인과 아전은 물론이고 그들의 음모를 방조한 모든 사람이 벌벌 떨며 다시는 그런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겠노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그 후에 서문표는 그곳에 댐을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귀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확신하지 않고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나는, 공자의 말 중에 ‘시에 이르기를, 밤이 새도록 잠자지 않고 두 분 부모를 생각한다.’라는 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노래(詩)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지요. 아무래도 그 ‘시’를 짚어 보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이 시는, 공자가 모아놓은 305편의 시들 속에 들어 있습니다. 즉, ‘소아’(小雅)의 ‘조그만 산비둘기’(小宛)라는 시 속의 한 구절입니다. 이 시의 주제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형제들끼리 몸을 삼가고 부모를 욕되지 않게 하려고 함’입니다. 그러면 그 내용 중에 한 연을 소개하겠습니다.

완피명구 宛彼鳴鳩 조그만 산비둘기 꾹꾹꾹꾹
한비여천 翰飛戾天 하늘 저쪽으로 날아서 사라지네.
아심우상 我心憂傷 내 마음 어둡고 아파할 때
염석선인 念昔先人 돌아가신 부모님 간절한 생각
명발불매 明發不寐 날이 새도록 뒤척거리며 
유회이인 有懷二人 두 분을 한없이 그리워하네.

 이 시는 이 외에도 5연이 더 이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한 연만을 맛보기로 보여 드렸습니다. 이 부분만 읽어 보아도 부모를 그리는 정이 짜릿하게 전해져 옵니다. 공자가 이 시를 외며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정경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귀신이 있다고 믿으면서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놓은’ 아무 귀신에게나 복을 구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런 ‘발복’(發福)의 헛된 믿음이야말로, ‘미신’(迷信)에 불과합니다. ‘미신’은 ‘마음이 무엇에 끌려서 잘못 믿음’을 가리킵니다.
 ‘논어’에도 이를 경계하는 공자의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예컨대 ‘논어’의 둘째 편인 ‘위정’(爲政)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습니다.
 “자기가 모실 귀신이 아닌데도 그 앞에서 ‘절하는 것’(祭)은 아첨이요, 의로움(義)을 보고도 ‘나서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음사사교(淫祀邪敎)에 빠지는 일은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사람이 우주로 나가고 인공두뇌까지 만들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는 ‘미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는 지금에도 수많은 무당이 성업 중입니다. 또, 이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는 공자의 가르침이 ‘논어’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이단에 빠지는 것은 해로울 뿐이다.”(자왈 공호이단 사해야이.: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논어 2-16】

 여기에서 원래 ‘공’(攻)이란 ‘치’(治)와 같아서 ‘학문을 전공하는 것’을 뜻한답니다. 그리고 ‘학문을 전공한다.’라는 말은 ‘몰두한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기에 ‘공호이단’(攻乎異端)은 ‘이단에 빠지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이단’(異端)의 풀이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는 이 ‘이단’을 앞에서의 ‘괴력난신’(怪力亂神)과 연관하여 생각하려고 합니다. 거기에서 ‘괴’(怪)가 바로 ‘이단’과 같은 뜻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학설이 있습니다. 한 사학자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이단(異端)은, 지금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 쓰이는 맥락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미로 해석될 수는 없다. 즉, 여기에서 말하는 ‘이단’이란, ‘unorthodoxy’나 ‘heterodoxy'의 의미로 해석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공자 시대에는 ’orthodoxy'(정통)의 개념 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양묵(楊墨)이니 노불(老佛)이니 하는 따위가 모두 공자 후대에 형성된 개념들이요, 공자 시대에 공자를 괴롭혔던 이단 학파의 개념이 아니다.』

 나는 이 말에 동감합니다. 고전의 해석은 반드시 과거로 돌아가서 그 당시의 현실에 맞게 풀이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공자가 그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학자의 견해를 다시 더 들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기 ‘이단’이란, 양백준(楊伯峻)의 말과 같이 ‘내 생각과 다른 학설’(不同的學說)이 아니라, 그냥 ‘부정확한 의논’(不正確的議論)을 의미할지 모른다. 나는 ‘이단’(異端)을 그냥 ‘색다른 단서’ 또는 ‘기이한 생각’의 뜻으로 푼다.』

 그렇습니다. 아무려면, 공자가 제자들에게 ‘내 생각과 다른 학설을 공부하면 해로울 뿐이다.’라고 말했겠습니까? ‘양백준’은 공자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입니다. 절대로 공자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지요.
 ‘논어’를 보면,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그를 살피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그를 살펴야 한다.”
 이 말의 원문은, ‘중오지 필찰언, 중호지 필찰언’(衆惡之 必察焉, 衆好之 必察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한마디로서 공자가 편협한 소인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또 공자는 말했습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여기에서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한다.’의 원문은 ‘환부지인야’(患不知人也)입니다. ‘환’(患)은 ‘근심하고 걱정함’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다시, 앞에서 인용한 학자의 ‘이단’에 대한 견해를 조금 더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자는 ‘이단(기이한 생각)을 연구하는 것은 해가 될 뿐’이라고 하는 공자의 말이 시대적 변혁이나 새로운 생각의 과감한 수용을 거부하는 보수주의자의 노파심을 나타낸 말로써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공자의 말은 명료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상식의 존중’이다.』

 물론, 사람들은 상식적인 것보다는 비상식적인 것을 더 좋아합니다.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나 지닌 성싶습니다. 그럴 때, ‘호기심’이 많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것만 찾아다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몸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비정상’이라고 하는 게 바로 ‘병이 들었음’을 의미합니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점술이 행해졌겠지요. 공자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상대’(商代)에도 점복은 매우 널리 퍼져 있었고, 주초에도 보편적으로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좌전’ 및 ‘춘추’를 읽어 보면, 노나라에서도 개인이나 나라에서 점복이 정기적으로 실시되었음이 사실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 ‘역경’(易經)에 의하면, 군자는 행동하기 전에 반드시 점을 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점복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논어’만 보더라도, ‘술이’(述而) 편에서 단지 한 번 거론한 적 외에는 점복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논어’의 ‘단 한 번 거론한 구절’조차 후대에 삽입되었을 거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기이한 것’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면도 있으나, 사람들을 현혹(眩惑)하는 병폐를 지닙니다. ‘현혹’은 ‘어떤 사물에 정신을 빼앗겨서 해야 할 바를 잊어버리는 것, 또는 그리되게 하는 것’을 이릅니다. 더군다나 ‘기이한 것’을 이용하여 사람을 속이거나 잘못된 길로 이끌기도 하지요.
 그래서 자장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덕을 높이고 마음속의 현혹됨을 판별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성실과 신의를 위주로 오로지 의로움만을 따르면 덕이 높아진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가 오래 살기를 바라고, 한 사람을 미워하면 그가 빨리 죽기를 바란다. 이렇게 살기를 바라다가 죽기를 바라는 게 바로 ‘현혹’이다. 이런 일은, 자신에게 이로울 게 없고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속의 현혹을 판별하다’의 원문은 ‘변혹’(辨惑)입니다. ‘혹’(惑)은 ‘미혹하다’ ‘빠지다’ ‘탐닉함’ ‘의심하다’ ‘의혹함’ ‘어두워지다’ ‘현혹됨’ ‘도리에 어긋나다’ ‘미혹되게 하다’ ‘미혹’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나는 이 중에서 ‘현혹됨’을 ‘혹’의 풀이로 선택했습니다. 또, ‘죽기를 바라다가 살기를 바라는 것’의 원문은 ‘기욕기생 우욕기사’(旣欲其生 又欲其死)입니다. 
 그리고 ‘이로울 게 없고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뿐’의 원문은 ‘성불이부 역지이이’(誠不以富 亦祗以異)이지요. 그런데 이 글은 여기(논어 12-10)에 잘못 들어왔다는 견해(논어 16-12에 들어갈 말)가 있습니다. 이는, 공자가 묶은 노래 중에 소아(小雅) 편의 ‘아행기야’(我行其也)라는, 시의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 시는, 다른 나라로 시집간 여인이 냉대받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한 내용이지요. 그러면, 앞에 소개된 구절이 들어가 있는 시의 마지막 연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행기야 我行其野 들판 길을 거닐다가
언채기복 言采其葍 뜯는 것은 우엉나물
불사구인 不思舊姻 오랜 인연 생각 안 하고
구이신특 求爾新特 새로운 짝만 구하네.
성불이부 成不以富 돈이 되지도 않는 것을
역지이이 亦祗以異 새 것이면 그만인가. 

 이 시를 보니, 앞에 소개한 ‘논어’에 ‘성불이부 역지이이’(誠不以富 亦祗以異)는 잘못 들어간 듯합니다. ‘성’(誠)과 ‘성’(成)은 같은 뜻이랍니다. 공자는 이 305편의 시를 입에 달고 사는 사는데, 그리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만약에 이 말을 썼다면, ‘시에 이르기를’이라는 말을 붙였겠지요.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논어’의 이 구절 풀이와 ‘시’의 이 구절 풀이가 아주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한문은 ‘뜻글자’이기 때문에 그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귀신과 죽음에 의문을 가진 제자가 어디 한두 사람뿐이었겠습니까? 성미 급한 자로가 이것들에 대해 알고자 했습니다. 그에 관한 내용이 ‘논어’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습니다.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산 사람을 섬기는 일도 모르는데, 어찌 귀신을 섬긴단 말이냐?” (계로가) 주제넘게 죽음에 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계로 문사귀신, 자왈 미능사인 언능사귀. 감문사, 왈 미지생 언지사.: 季路 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논어 11-12】

 여기에서 ‘계로’(季路)는 ‘자로’(子路)를 말합니다. 공자의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라는 한 마디가 가슴을 크게 울립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이렇듯 많고 많지만 ‘삶’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사람 대부분이 ‘삶’도 모르면서 ‘죽음’에 대해 알려고 합니다.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논어’의 이 대목은 ‘신이나 죽음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생각보다 직접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적 삶의 문제가 더 절실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공자는 한 마디로 현실주의자이며 합리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지요. 여러 문헌을 찾아보았지만, 공자는 한 번도 내세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없습니다. 또 한 번은,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지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내가 ‘죽은 사람이 지각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장차 세상의 모든 효자와 순손(順孫)들이 자기 사는 데 관계가 된다고 하여 죽은 부모를 보내는 데 너무 지나치게 할까 두려우며, 이와 반대로 ‘죽은 사람은 지각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세상의 모든 불효자는 그 부모의 시체를 그대로 버리어 두고 장사도 지내지 않을까 두렵다. 사(賜)야! 네가 만일 죽은 사람의 지각이 있고 없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뒷날에 가서 자연히 알게 될 터이니, 이는 오늘날의 급무가 아니다.”
 옳고도 옳은 말입니다. 죽은 사람의 지각이 있고 없고를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문제라면 누구나 죽고 나면 알게 되겠지요. 
 사람이 죽어서 지각이 있든지 없든지, 또는 귀신으로 되든지 안 되든지, 사람이 죽으면 정성으로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정성을 다한다.’라는 게 바로 ‘예’(禮)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자가어’에 기록된 공자의 장례에 대한 몇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공서적’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대부로 있던 사람이 죄를 짓고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가 죽었다면 그 장사를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대부로서 죄를 짓고 자기의 일을 폐했다면 몸이 마치는 날까지 벼슬을 하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니 그 장사는 선비의 예로 지내야 할 것이며, 늙어서 벼슬을 도로 바친 자는 그 반열에 따라서 장사지내야 한다.”
 한 번은, 자유(子游)가 공자에게 말했습니다. 
 “죽는다 해도 어질게 되지 않을 것이니 죽기란 차마 못 할 짓이고, 죽는다 해도 지혜로워지지 못할 것이니 죽기란 차마 못 할 짓입니다. 대체로 명기를 쓴 자는 초상을 치르고 도를 알았기 때문에 딴 물건이 아무리 많이 갖춰져 있다고 할지라도 쓸 수 없는 물건은 쓰지 않을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 때문에 대나무가 있어도 이를 쓰지 못하는 것이고, 기왓장이 있어도 이를 쓰지 못하는 것이며, 금슬(琴瑟)도 벌려 놓기만 했을 뿐이고 이를 쓸 수 없는 것이며, 생우(苼芋)도 갖춰지기만 했을 뿐이고 이를 쓸 수 없습니다.”
 앞의 말 중 ‘금슬’은 ‘거문고와 비파’를 말합니다. 이는, 모두 현악기인데 손으로 탑니다. 그리고 ‘생우’는 ‘생황과 피리’를 말합니다. ‘생황’(笙簧)은 ‘큰 대로 만든 통에 많은 대나무 대롱을 돌려세우고 주전자 귀때 비슷한 부리로 불게 되어 있는 악기’를 이르지요. 그러니 ‘피리와 생황’은 모두 관악기입니다. 
 공자가 말했습니다.
 “명기라는 것은 곧 신명(神明)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죽은 자에게 살아 있는 자의 그릇을 쓴다면 사람은 죽어 가면서라도 명기를 쓰지 않겠느냐?”
 모든 것을 버리고 가는 마당에 또 욕심을 부리게 되는군요.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는 정성을 다해서 해야 하지만, 검소하게 그 일을 끝내야 합니다. 
 자로가 계씨의 가신이 된 일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계씨는 제사를 지내는데 새벽부터 해가 저물도록 제물을 준비해도 오히려 부족하게 됨으로써 밤늦게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모든 사람의 힘이 쑥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두 기지개를 켜면서 겨우 제사를 지내게 되고 보니 그 공경함이 크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뒤에 또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자로가 거기에 간섭하게 되었습니다. 자로는, 방에서 할 일은 문간에서부터 하도록 하고, 마루에서 할 일은 처마 밑에서부터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날이 밝으면서부터 행사를 시작하여 늦은 아침이 못 되어서 제사를 끝나게 하였습니다.
 공자가 그 소식을 듣고, 말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누구라도 중유를 보고 예절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겠다.”
 그러므로 그저 ‘예’가 중요할 뿐, 불확실한 사후의 세계를 알려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참으로 바보 같은 일입니다. 확실한 지금의 삶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가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기한 일에도 너무 마음을 쓸 필요가 없겠지요. 또 사람이 죽었을 때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생각하고 그를 마음에 오래 새겨 두어야 합니다.
 장례를 정성껏 치르는 일은, 죽은 이를 위한 일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떠나보내는 데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인(仁)을 바로 세우는 일이며 나의 덕(德)을 높이 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나의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내 목숨 다하여 눈을 감으면
사람은 다시 말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잘난 맛에 뒤집히는 얼레지나 될까,
실바람 한 입 머금은 현호색이나 될까,
허공에 글씨 쓰는 금붓꽃이나 될까,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노루귀나 될까,
짝사랑에 목이 메는 설앵초나 될까,
웃음을 참지 못하는 동의나물이나 될까,
오랜 벗을 기다리는 초롱꽃이나 될까,
옛 이야기 주워 모은 금낭화나 될까,
자나 깨나 하품 여는 참배암차즈기나 될까,
그렇게 또 한세상 숨어 살다가
그 한목숨 또 다하고 하늘로 돌아가서
밤이면 피어나는 달의 꽃 되리라.
- 졸시 ‘풀꽃으로 살다가’ 전문

 모든 목숨이 일회성이라는 걸 믿고 있지만, 솔직히 윤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살고 그 모든 게 아주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큰 욕심 없이, 한 포기의 작은 들꽃으로라도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지녔겠지요.
 자로가 공자에게 ‘죽음’에 관하여 묻자, 공자는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는 나에게, ‘죽음을 알아서 무엇에 쓰려고 그러느냐?’라는 말로 들립니다. 또 어느 때는, 자공이 공자에게 ‘죽은 사람은 지각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하여 물었습니다. 사실 이 대답은, 나도 할 수 있습니다. 그저 기분이 내키는 대로, ‘있다’라든지 ‘없다’라고 말하면 되지요. 나의 이 말을 틀렸다고 증명할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공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지녔던 모양입니다. 그 말을 다시 들어 볼까요?
 “내가 ‘죽은 사람이 지각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장차 세상의 모든 효자와 순손이 자기 사는 데 관계가 된다고 하여 죽은 부모를 보내는 데 너무 지나치게 할까 두려우며, 이와 반대로 ‘죽은 사람은 지각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세상의 모든 불효자는 그 부모의 시체를 그대로 버리어 두고 장사도 지내지 않을까 두렵다. 사(賜)야! 네가 만일 죽은 사람의 지각이 있고 없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뒷날에 가서 자연히 알게 될 터이니, 이는 오늘날의 급한 일이 아니다.”
 아, 공자가 2500년 전의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습니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