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23장, 들어도 들리지 않는 말은(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19. 19:53

길- 제23장

들어도 들리지 않는 말은





 들어도 들리지 않는 말은 스스로 그러하다. 그런 까닭에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하루 내내 내리지 않는다. 누가 그렇게 하는가.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도 오히려 오래 머무르기를 잘할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 더 말해 무엇을 하겠는가! 그 까닭에, 길을 섬겨서 받드는 사람은 길로써 함께 하고, 베풂을 지닌 사람은 베풂으로써 함께 하며, ‘길과 베풂을 잃은 사람’은 잃음으로써 함께 한다.
 길과 함께하는 사람은 길 또한 그를 얻는 것에 즐거워하고, 베풂과 함께 하는 사람은 베풂 또한 그를 얻는 것에 즐거워하며, 잃음과 함께 하는 사람은 잃음 또한 그를 얻는 것에 즐거워한다.
 믿음이 넉넉하지 못하면 믿지 못함이 있다.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故從事於道者 同於道 德者 同於德 失者 同於失.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失亦樂得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희언자연. 고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 숙위차자.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고종사어도자 동어도 덕자 동어덕 실자 동어실.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동어실자 실역락득지. 신부족언 유불신언)


[뜻 찾기] 
  ‘희언’(希言)에서 ‘희’는 이미 앞의 제14장에서 뜻을 밝힌 바 있다. 그 풀이대로 여기에서도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연’(自然)은 이미 제17장에서 그 뜻을 기술한 바 있다. 그와 같이 여기에서도 ‘스스로 그러하다’라고 풀었다. 또, ‘불종조’(不終朝)에서 ‘종조’는 ‘아침 내내’라고 했으며, ‘불종일’(不終日)에서 ‘종일’은 ‘하루 내내’라고 풀었다.
 ‘상불능구’(尙不能久)에서 ‘상’은 ‘오히려’라는 뜻이고 ‘능’은 ‘잘할 수 있다’라는 뜻이며 ‘구’는 ‘오래다’ ‘오래 기다리다’ ‘오래 머무르다’ ‘막다’ ‘가리다’ 등의 뜻을 지닌다. 제7장의 ‘천장지구’(天長地久)에서 ‘구’는 ‘오래 가다’라고 했지만, 여기에서는 ‘오래 머무르다’를 골랐다. 그래서 ‘불능구’는 ‘오래 머무르기를 잘할 수 없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종사어도자’(從事於道者)에서 ‘종사어도’는 ‘길에 쫓아서 길과 같이하는 것’을 일컫는다고 한다. 또, ‘동어도’(同於道)가 ‘도자동어도’(道者同於道)로 되어 있는 기록도 있다. 이 ‘도자’가 붙게 되면 ‘길을 지닌 사람에게는’이라는 뜻이 된다. 이 ‘도자’는 잘못 들어간 듯싶다. 그래서 나는 ‘길로써 함께한다.’라고 했다. ‘동어도’는 ‘길(道)에 동화하다’ 또는 ‘길(道)과 동체(同體)가 되다’라는 뜻이 많이 알려져 있다. 
 ‘도역락득지’(道亦樂得之)는, ‘길(道)이 즐겁게 그에게 응한다.’라는 뜻으로, ‘길 또한 그를 얻는 것에 즐거워한다.’라고 나는 풀어서 썼다. 그리고 ‘신부족언 유불신언’은 제17장에 이미 나온 바 있다.

[나무 찾기]
 ‘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하루 내내 내리지 않는다.)이란 말을 들으면, 나는 불현듯 ‘버즘나무’(Platanus orientalis)가 떠오른다.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 우리는 버짐 핀 얼굴로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면 마당으로 나가서 ‘소나기 목욕’을 즐겼다. 그런데 그때 그 버짐 핀 모습으로, 지금은 버즘나무가 길가에 서 있다. 

세찬 빗발 속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를 보고 있자니

어릴 적에 버짐 핀 얼굴로 
‘소나기 목욕’을 하던 일이 떠오르네.

벌거벗고 마당 한가운데로 나가
그저 서 있기만 하면 
소나기가 알아서 몸을 다 씻겨 주었지.
우리는 간지러움에 낄낄거렸네.

저 플라타너스도
그때 그 재미 알고 있을까.
버짐 핀 몸뚱이를 보고 있자니.
-졸시 ‘소나기 목욕’ 전문 

 ‘버즘나무’는 나무껍질이 조각조각 벗겨져서 얼룩이 지는데, 그 모습이 피부병의 일종인 ‘버짐’이 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얻었다. ‘버짐’을 옛날에는 ‘버즘’이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이 나무를 ‘방울나무’라고 부른다. 그 열매가 어린이 모자에 매다는 ‘방울’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이 나무를 가리켜서 ‘방울단추나무’(button wood)라고 부르는가 하면, 영국 사람들은 ‘짙은녹음나무’(plane)라고 부른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