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24장, 발돋움한 사람은 서 있지 못하고(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20. 07:36

길- 제24장

발돋움한 사람은 서 있지 못하고





 발돋움한 사람은 서 있지 못하고 가랑이를 벌린 사람은 걸어가지 못한다.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은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고 하는 사람은 빛나지 않으며,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애쓴 보람이 없고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어른이 되지 못한다.
 그런 일들은 삶의 길에 있어서 ‘먹다 남긴 밥이나 쓸데없는 쏘다님’이라고 하여, 누구나 늘 싫어한다. 그 까닭에 길이 있는 사람은 그러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企者不立 誇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其在道也 曰餘食贅行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기자불립 과자불행. 자현자불명 자시자불창 자벌자무공 자긍자불장. 기재도야 왈여식췌행 물혹오지. 고유도자불처)


[뜻 찾기]
‘기자’(企者)에서 ‘기’는 ‘도모하다’ ‘꾀함’ ‘발돋움하다’ ‘두다’ ‘잊지 아니함’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 중에서 ‘발돋움하다’를 골랐다. 이는, 다른 어느 기록에는 ‘기’(跂)라고도 되어 있는데 그 뜻은 같다. 그리고 ‘과자’(跨者)에서 ‘과’는 ‘넘다’ ‘타고 넘어가다’ ‘사타구니’ ‘올라타다’ ‘점거하다’ ‘걸터앉다’ ‘웅크리다’ 등의 여러 뜻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 ‘걸터앉다’와 ‘사타구니’의 뜻을 골라서 ‘가랑이를 벌리다’라고 풀었다. 일반적으로 ‘기’(企)는 ‘발꿈치를 들고 어렵게 디디고 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과’(跨)는 ‘걸탄 것처럼 다리를 양쪽으로 한껏 벌린 자세’라고 말한다. 즉, ‘엉거주춤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현자’(不見者)부터 ‘불장’(不長)까지의 내용은, 이미 앞의 제22장에서 거론되었다. 다만, 글자의 순서를 바꾸었을 뿐이다.
 ‘왈여식췌행’(曰餘食贅行)에 있어서 ‘췌행’의 풀이가 어렵다. ‘췌’는 ‘군더더기’ ‘쓸모없는 물건’ ‘혹’ ‘군살’ ‘데릴사위’ ‘모으다’ ‘모이다’ ‘회유하다’ ‘책망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쓸모없다’와 ‘군더더기’의 뜻을 골랐다. 그래서 ‘췌행’을 ‘쓸데없는 쏘다님’이라고 풀었다. 일반적으로 ‘췌행’은, ‘갈 필요 없는 데 가는 것’으로, ‘쓸데없는 가외의 일’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본분에 어긋나는 행위’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왈’은 ‘~라고 하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물혹오지’(物或惡之)에서 ‘물’을 ‘남’(他人)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물혹’의 ‘무리’와 ‘누구’라는 뜻을 세워서 ‘누구나’로 풀었다. 또, ‘불처’(不處)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저 ‘그러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했다.


[나무 찾기]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 발돋움한 사람은 서 있을 수 없고 가랑이를 벌린 사람은 걸어가지 못한다.)에서 나는 ‘송악’(Hedera rhombea)을 생각하게 된다. ‘송악’이야말로, 어찌 보면 발돋움한 나무요, 또 다르게 보면 다리를 벌린 나무다. 그렇기에 어디엔가 의지하여 기어갈 수밖에 없다.

절벽을 오른다고 장하단 말 하지 마오.
발끝으로 서 있기가 힘들어서 기어가오.
하지만 잎사귀만은 늘 푸르게 지킨다오.

이왕 못 걸을 바엔 다리나 더 벌리겠소.
햇빛 고르게 받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소.
온 힘껏 꽃 피워내고 열매 검게 익히겠소.
-졸시 ‘송악의 말’ 전문

 ‘송악’은 남부지방에서는 ‘소밥’이라고 부른다. 소가 그 잎을 잘 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소밥’이 ‘소왁’으로 변하고, 또 ‘소왁’이 ‘송왁’으로 변한 다음, ‘송왁’이 ‘송악’으로 되었다고 한다. 내가 듣기에는, 제주도 방언으로 ‘송악’을 ‘소왁’이라고 한단다. 남부지방에서는 담장에 흔히 붙어서 자란다고 하여 ‘담장나무’라고도 부른다. 한명(漢名)은 ‘상춘등’(常春藤) ‘파산호’(爬山虎) ‘용린’(龍鱗) 등이다. 영명(英名)은 ‘ivy’이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