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26장,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20. 19:44

길- 제26장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고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임금이 된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는 하루 내내 걸어도 짐수레를 떠나지 않고 비록 아주 좋은 볼거리가 있어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서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머무른다.
 어찌하여 ‘4필의 말이 끄는 1만 채의 싸움수레를 지닌 임자’로서 그 몸을 가지고 하늘 아래를 가벼이 하겠는가. 
 가벼우면 바탕을 잃고 거칠면 임금의 자리를 잃는다.

重爲輕根 靜爲躁君. 是以聖人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柰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
(중위경근 정위조군. 시이성인종일행 불리치중 수유영관 연처초연. 내하만승지주 이이신경천하. 경즉실본 조즉실군)


[뜻 찾기]
 ‘정위조군’(靜爲躁君)에서 ‘정’은 ‘고요하다’ ‘맑다’ ‘정밀하다’ ‘바르다’ ‘온화하다’ ‘꾀하다’ ‘쉬다’ ‘간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 중에서 ‘고요하다’를 택했다. 그리고 ‘조’는 ‘성급하다’ ‘떠들다’ ‘시끄럽다’ ‘떠들썩함’ ‘움직이다’ ‘동요함’ ‘거칠다’ ‘교활하다’ ‘조급함’ ‘마르다’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 ‘시끄럽다’를 선택했다. ‘성인’(聖人)은 전처럼 ‘거룩한 이’로 풀었는데, 어느 기록에는 ‘성인’ 대신 ‘군자’(君子)로 되어 있기도 하다. 또, ‘불리치중’(不離輜重)에서 ‘치중’은 ‘본래에 군대의 무기와 식량 등을 실은 수레’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개인의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실은 수레’를 말한다고 한다. 나는 그저 ‘짐수레’로 풀었다. 그리고 ‘수유영관’(雖有榮觀)에서 ‘영관’은 ‘화려한 구경’ 또는 ‘굉장한 구경거리’로 풀이되고 있다. 나도 그에 따랐는데, ‘아주 좋은 볼거리’라고 풀었다. 그런가 하면 ‘연처초연’(燕處超然)에서, ‘연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있는 것’이라고 하며, ‘초연’은 ‘구애되지 않는 모양’이라고 한다. 그러나 ‘연처초연’은 ‘속세의 일로부터 벗어나서 편안하게 머무른다.’라는 뜻도 있다. 나는 그에 따라 ‘초연’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서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라고 풀었다. 한편, ‘영관’이나 ‘연처’는 ‘음악과 여색, 재물과 이익, 영화와 귀함, 그리고 잔치를 베풀고 즐기는 호화로운 곳’을 가리킨다고 한다.
 ‘내하만승지주’(柰何萬乘之主)에서 ‘내하’는 ‘어찌하여’ 또는 ‘어떻게’의 뜻이고, ‘만승지주’는 ‘4필의 말이 끄는 1만 채의 싸움수레를 지닌 임자’라는 뜻으로 ‘천자나 황제’를 일컫는다고 한다. 이를 일명 ‘만승천자’(萬乘天子)라고도 부른다. 즉, 중국 주대(周代)에 ‘병거(兵車) 1만 채를 즈리(直隸) 지방에서 출동시키던 제도에 의거’하여 천자 또는 천자의 자리를 이르던 말이라고 한다. 
 ‘경즉실본’(輕則失本)에서 ‘본’은 ‘근본’ ‘근원’ ‘밑’ ‘뿌리’ ‘농사’ ‘바탕’ ‘마음’ ‘밑천’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바탕’을 골랐다. 또, ‘조즉실군’(躁則失君)에서 ‘조’는 ‘성급하다’ ‘떠들다’ ‘시끄럽다’ ‘움직이다’ ‘동요함’ ‘거칠다’ ‘교활하다’ ‘조급함’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 ‘거칠다’를 골랐다. 그리고 ‘군’은 ‘임금’이라는 말인데 그 뜻은 ‘임금의 자리’를 가리킨다고도 여겨진다.


[나무 찾기]
‘중위경근 정위조군’(重爲輕根 靜爲躁君,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고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임금이 된다.)에서 나는 ‘조록나무’(Distylium racemosum)를 떠올리게 된다. 참으로 조록나무는 그 뿌리가 아주 무거운 나무이다.

죽어도 삭지 않는 먼 세월의 야문 뼈대
모두 맵시와 솜씨를 자랑으로 내세웠다.
울리는 ‘지하의 광상곡’ 절로 지닌 춤이여.

단단히 굳은 바위틈 푸른 바다 물결소리
불에도 타지 않고 물에서도 뜨지 않는
자존의 영롱한 살결에 비늘들이 돋아났다.

보면 볼수록 오묘한 형상들이 꿈틀댄다.
살아서 숨 쉬는 분노 그 슬픔 다시 토해도
이제는 ‘지쳐버린 원시’ 다만 숲의 비명뿐.
-졸시 ‘조록나무의 뿌리’ 전문

 ‘조록나무’는 ‘잎에 조롱이 달린 것 같은 벌레혹이 많이 붙기 때문’에 그 이름을 얻었다. 말하자면, ‘조롱나무’가 ‘조록나무’로 되었다는 뜻이다. 
 꽤 오래전의 일이지만, 나는 제주도의 ‘목석원’(木石苑)에서 멋진 조록나무의 뿌리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곳에는 나무들의 뿌리들을 모아서 전시한 ‘지하의 광상곡 감상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지하의 광상곡 감상실’에는 기기묘묘한 나무뿌리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생김새에 따라 ‘걸어가는 원시림’이라든가 ‘하늘이 높은 줄 모르는 야망’이라든가 ‘터져버린 분노’ 등의 재미있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이는 모두 수백 년 묵은 조록나무의 뿌리들이었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