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47장, 지게문을 나가지 않고도(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27. 18:26

베풂- 제47장

지게문을 나가지 않고도





 지게문을 나가지 않고도 하늘 아래를 알고, 들창을 엿보지 않고도 하늘길이 보인다. 그 나감이 더욱 멀면 그 앎은 더욱 적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는 다니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이름 붙이며 하지 않고도 이룬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牖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불출호 지천하 불규유 견천도 기출미원 기지미소. 시이성인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


[뜻 찾기]
 ‘불출호’(不出戶)는 일반적으로 ‘문밖을 나가지 않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호’는 ‘지게’ ‘지게문’ ‘외짝문’ ‘출입구’ ‘집’ ‘구멍’ ‘사람’ ‘주민’ ‘주량’ ‘막다’ ‘지키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지게문’을 골랐다. ‘지게문’은 ‘마루에서 방으로 드나드는 곳에 안팎을 두꺼운 종이로 바른 외짝문’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리고 ‘불규유’(不窺牖)에서 ‘규’는 ‘엿보다’ ‘보다’ 등의 뜻을 지니고 ‘유’는 ‘들창’ ‘격자창’ 등의 뜻이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불규유’를 ‘창문 밖을 엿보지 않는다.’라고 풀이한다. 나도 이 뜻을 따라서 ‘들창을 엿보지 않는다.’라고 했다. ‘호’와 ‘유’는 앞의 제11장에도 나와 있다.
 또, ‘견천도’(見天道)에서 ‘견’은 ‘보다’ ‘보이다’ ‘의견’ ‘생각’ ‘당하다’ 등의 뜻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앞의 ‘들창을 엿보지 않는다.’에 따라 ‘보이다’로 해야 가장 적당할 성싶다. 다시 말해서 ‘견천도’는, ‘하늘 길을 본다.’라는 말이 아니라, ‘하늘길이 보인다.’라고 해야 옳을 듯싶다. 그런가 하면, ‘기출미원’(其出彌遠)이나 ‘기지미소’(其知彌少)에서 ‘미’는 ‘두루 미치다’ ‘널리 퍼짐’ ‘멀리’ ‘걸리다’ ‘오래 끌다’ ‘차다’ ‘더욱’ ‘깁다’ ‘얽히다’ ‘그치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 ‘더욱’을 택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미원’은 ‘점점 멀어짐’으로 풀이하고 있으며, ‘미소’는 ‘점점 적어짐’으로 풀이하고 있다.
 ‘불행이지’(不行而知)에서 ‘행’은 ‘다니다’ ‘걷다’ ‘행하다’ ‘가다’ ‘지나다’ ‘흐르다’ ‘여행’ ‘행서’ ‘행위’ 등의 여러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다니다’를 골랐다. 그리고 ‘불위이성’(不爲而成)에서 ‘불위’는 ‘작위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나무 찾기]
 ‘불규유 견천도’(不窺牖 見天道, 들창을 엿보지 않고도 하늘길이 보인다.)에서 나는 문득 ‘매창’(梅窓)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매창’이라고 하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매화나무’(Prunus mume)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들창 밖의 매화’가 ‘매창’이 아니겠는가.


그 누가 여기에서 꽃을 보려고 하는가.
마음 눈을 크게 뜨고 시를 찾아오는 이들
옛 시인 그 묵향에 취해 하루해가 저무네.

시비에 새긴 글자 하나하나 꽃이 되고
마음 귀를 마저 열면 시린 듯 거문고가락
저 달빛 그 무덤에 비춰 어둠길도 환하네.
-졸시 ‘매창공원에서’ 전문

 나는 2009년도에 가까운 문인들과 함께 부안으로 문학기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때, 새로 말끔하게 단장된 ‘매창공원’도 찾아보았다. 황토의 흙먼지가 날리던 때와는 달리, 무덤도 잘 가꾸어져 있었고, 그 주위에 매창의 시비를 비롯하여 그녀와 관계된 여러 문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날,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모두 묵향에 취했다.
 매창은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기록을 보면, 1573년에 출생하여 1610년에 타계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녀는 그렇게 짧은 일생을 살고, 부안읍 남쪽에 있는 봉덕리 공동묘지에 동고동락하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그 이후로 그녀를 아끼던 사람들은 그곳을 ‘매창이뜸’ 또는 ‘봉두메’라고 불렀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