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악기론

제6절, 무릇 '소리'는 사람 마음에서(역: 녹시 김 개 황)

시조시인 2022. 3. 13. 07:44

제6절 무릇 ‘소리’는 사람 마음에서

 凡音者生於人心者也 樂者通倫理者也 是故知聲而不知音者禽獸是也 知音而不知樂者衆庶是也 唯君子爲能知樂 是故審聲以知音 審音以知樂 審樂以知政 而治道備矣 是故不知聲者 不可與言音 不知音者 不可與言樂 知樂則幾於禮矣 禮樂皆得謂之有德 德者得也(범음자생어인심자야 악자통운리자야 시고지성이불지음자금수시야 지음이불지락자중서시야 유군자위능지락 시고심성이지음 심음이지락 심락이지정 이치도비의 시고부지성자 불가여언음 부지음자 불가여언락 지악즉기어례의 예악개득위지유덕 덕자득야).

 무릇 ‘소리’는 사람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악’(음악)은 ‘윤리’(군신민사물의 이치)에 통하는 것이다. 이렇기에 소리 울림을 알면서 소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날짐승과 길짐승이 옳은 것이다. 소리를 알면서 ‘악’(음악)을 알지 못하는 것은 뭇사람이 옳을 것이다. 오직 ‘군자’가 ‘악’(음악)을 잘 안다고 한다. 그렇기에 소리 울림을 살피고 그로써 소리를 알고 소리를 살피고 그로써 ‘악’(음악)을 알며 ‘악’(음악)을 살피고 다스림을 안다. 이렇게 해야 다스림의 길이 갖추어진다. 이렇기에 소리 울림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 ‘소리’를 말할 수 없고 ‘소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 ‘악’(음악)을 말할 수 없다. ‘악’(음악)을 알면 곧 ‘예’(예절)에 가깝다. ‘예’와 ‘악’을 모두 얻으면 이를 ‘베풂이 있다.’(유덕)라고 일컫는다. ‘베풂’(德: 베풀다. 어진 이. 은혜. 크다. 행복 등)이란 ‘얻는 것’이다. (녹시 역)

 시조의 경우- <무릇 ‘음률’은 사람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시조 내용’은 ‘윤리’에 통하는 것이다. 이렇기에 내재율을 알면서 음률을 알지 못하는 것은 날짐승과 길짐승이 옳은 것이다. 음률을 알면서 ‘시조 내용’을 알지 못하는 것은 뭇사람(시조를 모르는 사람)이 옳을 것이다. 오직 ‘선비’가 ‘시조 내용’을 잘 안다고 한다. 그렇기에 내재율을 살피고 그로써 음률을 알고 음률을 살피고 그로써 ‘시조 내용’을 알며 ‘시조 내용’을 살피고 다스림을 안다. 이렇게 해야 다스림의 길이 갖추어진다. 이렇기에 내재율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 ‘음률’을 말할 수 없고 ‘음률’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 ‘시조 내용’을 말할 수 없다. ‘시조 내용’을 알면 곧 ‘시조 형식’에 가깝다. ‘시조 형식’과 ‘시조 내용’을 모두 얻으면 이를 ‘베풂이 있다.’(유덕)라고 일컫는다. ‘베풂’(德: 베풀다. 어진 이. 은혜. 크다. 행복 등)이란 ‘얻는 것’이다.>

[녹시 생각] 
 이 절은, 음악을 아는 자가 ‘유덕자’임을 논술하여 앞의 여러 절의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조에 있어서도 ‘시조 내용’을 아는 자를 자연스럽게 ‘유덕자’로 높이게 된다. 
 시조와 자유시는, 외형적인 면의 경우뿐만 아니라, 내적인 면에서도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를 모르고서는 ‘시조 내용’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자유시는 ‘의’(意)와 ‘논’(論)과 ‘유’(流)를 지닌다. ‘의’는 ‘말로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속의 생각이나 뜻’을 나타고, ‘논’은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알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유’는 ‘깃발이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모양’을 뜻한다. 이 ‘유’는 ‘무리’나 ‘갈래’를 의미한다. 그러나 시조는 ‘지’(志)와 ‘관’(觀)과 ‘풍’(風)을 지닌다. ‘지’는 ‘마음을 정하고 나아가는 뜻’을 나타낸다. ‘관’은 ‘황새가 먹을 것을 찾아서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풍’은 ‘동굴에서 바람이 나오는 것이 마치 벌레들이 들고 나는 것과 같음’을 뜻한다. 쉽게 말해서 이 ‘풍’은 ‘기질’이나 ‘모습’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