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악기론

제5절, 정나라와 위나라의 소리는(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3. 12. 22:11

제5절 정나라와 위나라의 소리는

 鄭衛之音亂世之音也 比於慢矣 桑間濮上之音 亡國之音也 其政散其民流 誣上行私而不可止也(정위지음난세지음야 비어만의 상간복상지음 망국지음야 기정산기민류 무상행사이불가지야). 

 정나라와 위나라의 소리는 어지러운 세상의 소리이다. 게으름(慢)에 가깝다(比). 하나라 걸왕의 음악(상간)이나 은나라 주왕이 제정한 음악(복상)의 소리는 나라가 망함의 소리이다. 그 다스림이 흩어지고 그 백성이 유망한다(流: 그 고장을 떠나 망명하는 것). 윗사람을 속이고(誣) 사사로움을 행해도 멈추게 할 수 없다. (녹시 역)

 ‘시조’의 경우- <잘 다스려지지 않는 나라 소리(유언비어)는 어지러운 세상의 소리(아우성)이다. 게으름(慢)에 가깝다(比). 조선 말기의 소리는 나라가 망함의 소리(원망 소리)이다. 그 다스림이 흩어지고 그 백성이 유망한다(流: 그 고장을 떠나 망명하는 것). 윗사람을 속이고(誣) 사사로움을 행해도 멈추게 할 수 없다. 다만, 시조(時調)만이 바르고 당당하다.>

[녹시 생각]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1592년)를 생각하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변하지 않는 충성심으로 쓴 시조 한 수가 지금도 우리 마음을 울리고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

 1636년에 청나라는 우리 나라에게 공물과 군사 3만 명을 요구했으며, 청 태종은 왕자를 인질로 보내라는 요구까지 했다. 그 요구에 응하지 않자, 청나라는 12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왔다. 이는 바로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 때 삼학사의 한 사람인 ‘홍익한’은 끝까지 청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했다가 선양으로 잡혀갔다. 그는 청나라의 온갖 회유에 절개를 굽히지 않았고 끝내는 그곳에서 살해되고 말았다. 그가 남긴 시조 한 수가 아픔을 준다.

수양산 내린 물이 이제의 원루 되어
주야를 불식하고 여흘여흘 우는 뜻은
지금에 우국충정을 못내 슬허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