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아니 '멍쯔' 이야기

6. 예물을 보낼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글: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3. 31. 19:17

6. 예물을 보낼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기원전 330년, 맹자는 43살이 되었습니다. 그 해에 그는 추(鄒) 나라로 돌아갔다가 다시 임(任) 나라로 떠나게 됩니다. 앞에서 ‘임나라’는 ‘설 나라’라고도 부른다고 했지요? 설(薛) 나라는 전국시대 초에 제(齊)나라에 *병합(倂合)되어 버리고 맙니다. 
 맹자가 추나라에 있을 적에, 마침 임나라 임금이 이웃 나라 임금을 만나려고 나라를 떠났으므로, 형 대신에 ‘임나라 임금의 막냇동생’(季任)이 임 나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때, ‘임금의 막냇동생’이 맹자에게 예물을 보내어 사귀려고 했습니다. 맹자는 예물을 받고서고 답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륙(平陸)에 있을 때는 ‘저자’(儲子)라는 사람이 제(齊)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맹자에게 예물을 보내어 사귀려고 하였습니다. 전과 마찬가지로, 맹자는 예물을 받고 답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임 나라에서 ‘임나라 임금의 막냇동생’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제나라에서는 ‘저자’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제자인 옥려자(屋廬子)가 ‘옳지, 나도 질문할 기회가 생겼다.’라고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임 나라에 가셔서는 임 나라 임금의 막냇동생인 계자(季子)를 만나 보시고, 제 나라에 가셔서는 제 나라의 재상인 저자(儲子)를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저자가 임금의 아우보다 낮은 신분인 ‘재상’이었기 때문입니까?”
 “그게 아니다. ‘서경’(書)에 이르기를 ‘예물을 보낼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예의가 예물보다 못하면, 예물을 보내지 않은 것과 같다. 예물에다 정성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저자’를 만나지 않은 까닭도 정성껏 예물을 보낸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옥려자가 깨닫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 일에 대해 다시 물었습니다. 옥려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계자는 임금 대신으로 나라를 지키느라고 추나라에 직접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저자는 평륙으로 갈 수가 있었는데도 가지 않았다.”

 [孟子居鄒, 季任爲任處守, 以幣交, 受之而不報. 處於平陸, 儲子爲相, 以幣交, 受之而不報. 他日, 由鄒之任, 見季子, 由平陸之齊, 不見儲子. 屋廬子喜曰 ‘連得間矣’ 問曰 ‘夫子之任見季子, 之齊不見儲子, 爲其爲相與?’ 曰 ‘非也. 書曰 <享多儀, 儀不及物, 曰不享, 惟不役志于享> 爲其不成享也.’ 屋廬子悅. 或問之, 屋廬子曰 ‘季子不得之鄒, 儲子得之平陸.’(̂맹자거추, 계임위임처수, 이폐교, 수지이불보. 처어평륙, 저자위상, 이폐교, 수지이불보. 타일, 유추지임, 견계자, 유평육지제, 불견저자. 옥려자희왈 ‘연득간의’ 문왈 ‘부자지임견계자, 지제불견저자, 위기위상여?’ 왈 ‘비야. 서왈 <향다의, 의불급물, 왈불향, 유불역지우향> 위기불성향야.’ 옥려자열. 혹문지, 옥려자왈 ‘계자부득지추, 저자득지평륙.’) 12-5]

 위의 ‘계임위임처수’(季任爲任處守)에서 ‘임’은 ‘임 나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계’의 본뜻은 ‘어린 벼의 싹으로, 막내 또는 끝’을 이릅니다. 그러므로 ‘계임’은 ‘임 나라 임금의 동생’을 나타냅니다. 이어서 ‘위임처수’는 ‘임 나라를 위해 임금이 비운 임 나라를 임금 대신으로 맡아 지킨다.’라는 뜻입니다. 
 기원전 329년, 44살이 되었을 때 맹자는 임(任) 나라를 거쳐서 다시 제(齊) 나라로 떠났습니다. 이때는 옥려자 등 여러 제자를 거느리고 갔다고 합니다. 제 나라는 아직도 위왕(威王)이 다스리고 있었지요. 이번에는 제 나라의 평륙(平陸)을 거쳐서 제 나라의 ‘범’(范)이라는 읍으로 갔다가 제 나라의 서울로 갔습니다. 제 나라의 서울은 ‘임치’(臨淄)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곳은 아주 큰 도시로 면적 60제곱킬로미터에 가구의 수가 7만 호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맹자는 제나라 임금의 아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감탄하여 말했습니다.
 “거처하는 환경에 따라 기상이 달라지고, 먹는 음식이 사람의 몸을 저처럼 바꾸어 주는구나. 대단하다! 거처하는 환경은. 모두 다 사람의 자식이 아니겠는가? 왕자의 집이나 수레 및 의복 등이 모두 여느 사람과 같다. 그런데 왕자가 저러한 까닭은 그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천하의 넓은 집에 거처하는 것이야말로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노(魯) 나라의 임금이 송(宋)나라에 가서 ‘질택’(垤澤)이란 곳의 성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문지기가 ‘이분은 우리 임금님이 아니신데 어쩌면 그 목소리가 우리 임금님과 같으실까?’라고 말했다니, 이는 거처하는 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孟子自范之齊, 望見齊王之子, 喟然嘆曰 ‘居移氣, 養移體, 大哉居乎! 夫非盡人之子與?’ 孟子曰 ‘王子宮室車馬衣服, 多與人同. 而王子若彼者, 其居使之然也. 況居天下之廣居者乎? 魯君之宋, 呼於垤澤之門, 守者曰 <此非吾君也 何其聲之似我君也?> 此無他, 居相似也.’(맹자자범지제, 망견제왕지자, 위연탄왈 ‘거이기, 양이체, 대재거호! 부비진인지자여?’ 맹자왈 ‘왕자궁실거마의복, 다여인동. 이왕자약피자, 기거사지연야. 황거천하지광거자호? 노군지송, 호어질택지문, 수자왈 <차비오군야 하기성지사아군야?> 차무타, 거상사야.’) 13-36]

 위의 ‘위연’(喟然)에서 ‘위’는 ‘한숨’ ‘한숨 쉬다’ ‘탄식함’ 등을 이릅니다. 그러므로 ‘위연’은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는 모양’을 나타냅니다.
 제(齊) 나라에 와서 맹자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는 제 나라 사람인 ‘순우곤’(淳于髡)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주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지요. 그가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남녀가 물건을 주고받을 때 직접 손으로 건네주지 않는 게 예의입니까?”
 “그게 바로 예의요.”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졌다면 손을 직접 잡고 끌어내어도 됩니까?”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졌는데 손으로 끌어당겨 주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승냥이나 이리의 짓이라고 할 수 있소. 남자와 여자가 손으로 직접 물건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예의이고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 끌어당겨 주는 것은 임시방편이지요.”
 “지금 온 천하가 물에 빠졌거늘, 선생께선 왜 손을 내밀어서 끌어내 주지 않으십니까?”
 “천하가 물에 빠지면 도(道)로써 끌어내 주고,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지면 손(手)으로 끌어내 주는 거라오. 그대는 내가 임시방편으로 손을 내밀어서 천하를 끌어내라는 말입니까?”

 [淳于髡曰 ‘男女受授不親 禮與?’ 孟子曰 ‘禮也’ 曰 ‘嫂溺則援之以手乎?’ 曰 ‘嫂溺不援, 是豺狼也. 男女授受不親, 禮也. 嫂溺援之以手者, 權也.’ 曰 ‘今天下溺矣, 夫子之不援, 何也?’ 曰 ‘天下溺, 援之以道. 嫂溺, 援之以手. 子欲手援天下乎?’(순우곤왈 ‘남녀수수불친 예여?’ 맹자왈 ‘예야’ 왈 ‘수익즉원지이수호?’ 왈 ‘수익불원, 시시랑야. 남녀수수불친, 예야. 수익원지이수자, 권야.’ 왈 ‘금천하익의, 부자지불원, 하야?’ 왈 ‘천하익, 원지이도. 수익, 원지이수. 자욕수원천하호?’) 7-17]  

 위의 ‘남녀수수불친’(男女授受不親)이란 말은, 이미 ‘예기’ 중 ‘방기’(坊記)에 나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녀불친수’(男女不親授)라는 말도 ‘예기’ 중 ‘곡례’(曲禮)에 적혀 있습니다. ‘불친’이란 ‘직접 손으로 주고받지 않는 것’을 이릅니다.
 이 당시에, 제자인 ‘공도자’(公都子)가 스승인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제(齊)나라 사람들이 모두 ‘광장’(匡章)이란 사람을 불효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선 그와 사귀십니다. 게다가 허물없이 지내시며 예의를 갖추어서 대하십니다. 감히 여쭈어보겠습니다. 어찌 된 일이십니까?”
 맹자가 그 물음에 대해 대답했습니다.
 “세속에서 말하는 불효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그 몸을 게을리하여 부모를 잘 봉양하지 않는 게 첫째 불효이다. 장기나 바둑을 즐기고 술 마시기를 좋아해서 부모를 잘 봉양하지 못하는 게 둘째 불효이다. 재물을 좋아하고 자기 아내와 자식만 귀여워하느라고 부모를 잘 봉양하지 못하는 게 셋째 불효이다. 자기의 귀나 눈의 욕심을 채우느라고 어버이를 부끄럽게 하는 게 넷째 불효이다. 쓸데없는 용기를 좋아하고 사납게 싸워서 부모까지도 위험스럽게 하는 짓이 다섯째 불효이다. 그런데 광장(본문에는 章子, 匡章을 가리킴)이 이들 가운데 한 가지라도 저질렀단 말이냐? 광장은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착한 일을 하시라고 나무라다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착한 일을 하라고 나무라는 것(責善 책선)은 벗들 사이에서나 할 도리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착한 일을 하라고 나무라다가는 은의(恩義)를 크게 해치게 된다. 광장이라고 어찌 부부라든가 어머니와 아들 등의 가족을 갖고 싶지 않았겠느냐? 그러나 자기 아버지에게 잘못하여 가까이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아내를 내쫓고 아들까지 물리친 채로 죽을 때까지 그들의 보양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광장의 마음가짐으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죄가 더욱 커진다.’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광장이 한 짓은 이것뿐이다.”

 [公都子曰 ‘匡章, 通國皆稱不孝焉. 夫子與之遊, 又從而禮貌之, 敢問何也?’ 孟子曰 ‘世俗所謂不孝者五: 惰其四肢, 不顧父母之養, 一不孝也. 博奕好飮酒, 不顧父母之養, 二不孝也. 好貨財, 私妻子, 不顧父母之養, 三不孝也. 從耳目之欲, 以爲父母戮, 四不孝也. 好勇鬪狠, 以危父母, 五不孝也. 章子有一於是乎? 夫章子, 子父責善而不相遇也. 責善, 朋友之道也, 父子責善, 賊恩之大者. 夫章子豈不欲有夫妻子母之屬哉? 爲得罪於父, 不得近, 出妻屛子, 終身不養焉. 其設心, 以爲不若是, 是則罪之大者, 是則章子已矣.’(공도자왈 ‘광장, 통국개칭불효언. 부자여지유, 우종이례모지, 감문하야?’ 맹자왈 ‘세속소위불효자오: 타기사지, 불고부모지양, 일불효야. 박혁호음주, 불고부모지양, 이불효야. 호화재, 사처자, 불고부모지양, 삼불효야. 종이목지욕, 이위부모륙, 사불효야. 호용투한, 이위부모, 오불효야. 장자유일어시호? 부장자, 자부책선이불상우야. 책선, 붕우지도야, 부자책선, 적은지대자. 부장자기불욕유부처자모지속재? 위득죄어부, 불득근, 출처병자, 종신불양언. 기설심, 이위불약시, 시즉죄지대자, 시즉장자이의.’) 8-30] 

 아마도 이 당시에 맹자는 ‘고자’(告子)라는 사람도 만났을 성싶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불해’(不害)라고 합니다. 물론 성씨는 ‘고씨’이지요. 하루는, 고자가 맹자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성품은 마치 버들 같고, 인의는 버들개지를 휘어서 엮은 그릇 같습니다. 사람의 성품을 가지고 인의를 행하는 것은 마치 버들을 가지고 버들 그릇을 만드는 바와도 같습니다.”

 [性, 猶杞柳也. 義, 猶桮棬也. 以人性爲仁義 猶以杞柳爲桮棬(성, 유기류야. 의, 유배권야. 이인성위인의 유이기류위배권) 11-1]

 “당신은 버들의 본성을 따라서 그릇을 만들 수 있겠소? 버들을 다치게 하고 난 후에야 버들 그릇을 만들 수 있겠지요. 만약에 버들을 해치고 나서야 버들 그릇을 만드는 것이라면, 역시 사람에게도 해친 다음에 인의를 행한단 말입니까? 온 천하 사람들에게 인의를 망치게 하는 것은 반드시 당신의 터무니없는 말일 거요.”

 [子能順杞柳之性 而以爲桮棬乎? 將戕賊杞柳而後 以爲桮棬也. 如將戕賊杞柳而以爲桮棬 則亦將戕賊人 以爲仁義與? 率天下之人而禍仁義者 必子之言夫!(자능순기류지성 이이위배권호? 장장적기류이후 이위배권야. 여장장적기류이이위배권 즉역장장적인 이위인의여? 솔천하지인이화인의자 필자지언부!) 11-1]

 또 하루는, 고자가 맹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마치 빙빙 돌면서 흐르는 물과도 같습니다. 물줄기를 동쪽으로 터주면 동쪽으로 흘러가고, 물줄기를 서쪽으로 터주면 서쪽으로 흘러갑니다. 사람의 본성을 ‘착하다’ 또는 ‘착하지 않다’ 등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것이, 마치 빙빙 돌고 있는 물을 동쪽과 서쪽으로 나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물은 정말로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위와 아래의 구분도 없겠습니까? 사람의 본성이 착한 것은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과도 같지요. 사람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물이라고 하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는 물은 없습니다. 만약에 물을 튀기면 사람의 이마도 넘어가게 할 수 있고, 또한 꼭 막았다가 터주면 산 위까지도 올라가게 할 수 있소. 그러나 어찌 그게 물의 본성이겠습니까? 밖으로부터의 힘에 따라서 한때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요. 사람이 착하지 못한 짓을 하게 되는 것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水信無分於東西 無分於上下乎? 人性之善也 猶水之就下也. 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 今夫水 搏而躍之 可使過顙 激而行之 可使在山 是豈水之性哉? 其勢則然也. 人之可使爲不善 其性亦猶是也.(수신무분어동서 무분어상하호? 인선지선야 유수지취하야. 인무유불선 수무유불하. 금부수 박이약지 가사과상 격이행지 가사재산 시기수지성재? 기세즉연야 인지가사위불선 기성역유시야) 11-2]
 
 그리고 또 어느 날, 고자가 맹자에게 말했습니다.
 “타고 난 게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타고 난 게 본성이라면, 마치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흰 깃털의 흰 것이 흰 눈의 흰 것과 같으며, 흰 눈의 흰 것이 흰 옥돌의 흰 것과 같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개의 본성이 소의 본성과 같고, 소의 본성이 사람의 본성과도 같다는 말입니까?”

 [告子曰 ‘生之謂性.’ 孟子曰 ‘生之謂性也, 猶白之謂白與?’ 曰 ‘然’ ‘白羽之白也, 猶白雪之白, 白雪之白, 猶白玉之白與?’ 曰 ‘然’ ‘然則犬之性猶牛之性, 牛之性猶人之性與?’(고자왈 ‘생지위성.’ 맹자왈 ‘생지위성야, 유백지위백여?’ 왈 ‘연’ ‘백우지백야, 유백설지백, 백설지백, 유백옥지백여?’ 왈 ‘연’ ‘연즉견지성유우지성, 우지성유인지성여?’) 11-3]

 앞의 ‘생지위성’(生之謂性)은 ‘생을 곧 성이라 이름’을 말합니다. 이는, ‘생은 사람이 지각하거나 운동하는 것 등의 자연적인 기능’이고, ‘나면서부터 타고난 지각과 운동의 능력을 비롯하여 식욕이나 성욕 같은 본능’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주자 또한, ‘고자는 성을 제대로 모르면서 기를 가지고 횡설수설한다.’라고 평했습니다. 주자는 ‘성(性)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이(理)요, 생(生)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기(氣)이다.’라고 말했지요.     
 아마도 고자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겠지요. 그런데 또 어느 날,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식욕과 색욕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인(仁)은 내재적이요 외재적이 아니며, 의(義)는 외재적이요 내재적이 아닙니다.”
 “무엇으로 그렇다고 합니까?”
 “저 사람이 어른이어서 내가 어른이라고 하는 것이지, 나에게 어른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저것이 희어서 내가 희다고 하는 것과 같아서 흰 것이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재적이라고 합니다.”
 “흰 말의 흰 것은 흰 사람의 흰 것과 다름이 없소. 그러나 늙은 말의 나이 많음과 늙은 사람의 나이 많음은 다르지 않겠소? 또 ‘나이 많은 것’을 의(義)라고 하겠습니까? ‘나이 많은 이를 받드는 것’을 의(義)라고 하겠습니까?”
 “내 동생은 사랑하고 진(秦)나라 사람의 동생은 사랑하지 않는데, 이는 내 마음에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仁)을 내재적이라고 합니다. 초(楚)나라 사람의 어른을 어른으로 받들고 자기의 어른을 어른으로 받드는데, 이는 어른을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義)를 외재적이라고 합니다.”
 “진나라 사람이 구운 고기를 즐기는 것과 내가 구운 고기를 즐기는 것은 다를 게 없소. 대체로 물건은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구운 고기를 즐기는 것도 역시 외재적이라고 하겠습니까?”

 [告子曰 ‘食色, 性也. 仁, 內也, 非外也. 義, 外也, 非內也.’ 孟子曰 ‘何以謂仁內義外也?’ 曰 ‘彼長而我長之, 非有長於我也. 猶彼白而我白之, 從其白於外也, 故謂之外也.’ 曰 ‘異於白馬之白也, 無以異於白人之白也, 不識長馬之長也, 無以異於長人之長與? 且謂長者義乎? 長之者義乎?’ 왈 ‘吾弟則愛之, 秦人之弟則不愛也, 是以我爲悅者也, 故謂之內. 長楚人之長, 亦長吾之長, 是以長爲悅者也, 故謂之外也.’ 曰 ‘耆秦人之炙, 無以異於耆吾炙. 夫物則亦有然者也. 然則耆炙亦有外與?’(고자왈 ‘식색, 성야. 인, 내야, 비외야. 의, 외야, 비내야.’ 맹자왈 ‘하이위인내의외야?’ 왈 ‘피장이아장지, 비유장어아야. 유피백이아백지, 종기백어외야, 고위지외야.’ 왈 ‘이어백마지백야, 무이이어백인지백야, 불식장마지장야, 무이이어장인지장여? 차위장자의호? 장의자의호?’ 왈 ‘오제즉애지, 진인지제즉불애야, 시이아위열자야, 고위지내. 장초인지장, 역장오지장, 시이장위열자야, 고위지외야.’ 왈 ‘기진인지자, 무이이어기오자. 부물즉역유연자야. 연즉기자역유외여?’) 11-4]

 참으로 두 사람의 논쟁이 격렬합니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즉, 맹자는 ‘인’(仁)과 ‘의’(義)가 사람의 본성 속에 갖추어져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물론, 인과 의의 천성을 지닌 사람이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맹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오래 마음을 닦으면 인하고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는 세 번씩이나 이사했겠지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내가 43살 때인 1983년에는 서귀포에서 귤밭을 가꾸며 문학의 꿈을 조금씩 피워 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해 1월 1일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 발표되었는데, 응모한 내 시조작품 ‘숲의 그 아침’이 아쉽게도 최종심에서 탈락하였습니다. 무척 낙심하였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산새들 울음 빛에 단풍잎이 젖어 있다
 기지개 멀리 틀며 달려가는 산 메아리 
 간밤엔 영마루 너머 잦아들던 풍악이더니.

 이슬로 방울지는 별자리를 가늠 보면
 놓고 간 그대 음성, 빛살 되어 내려앉고
 그 잎들 열린 사이로 하늘 창에 비친 얼굴.

 문 열린 골짝마다 물소리 가득한 잔치
 가슴 깊이 숨긴 시름 익은 열매 맛이어도
 먼동이 적막을 일구는 가려움의 갈채여.
                    -졸시 ‘숲의 그 아침’ 

 나는 어릴 적부터 숲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숲으로 가서 놀았습니다. 그러니 서귀포에서는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시간만 있으면 숲을 찾았습니다. 내륙지방과는 달리, 제주도에는 상록수들이 많습니다. 푸른 나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커다란 동백나무들이 내 농장 근처에 여럿 있었지요. 그 동백나무를 찾아가면 쉽사리 동박새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백나무를 스치는 바람이 바다의 물결 소리를 흉내 내었습니다. 동박새의 노랫소리는 꿈결에도 마치 등대의 불빛처럼 가물거리곤 했습니다.
 가을에 단풍 물이 드는 나무가 있기는 하였지만, 타는 듯이 붉게 물드는 고향의 숲이 언제나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역시 단풍은 고향을 그립게 만들었습니다. 가을이면 서울로 올라와서 고향의 숲을 찾았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안았습니다. 그럴 때면 내 마음마저 온통 단풍 물이 들었습니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