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를 읽다

악기 19-7, '악'의 융성함이란 '소리'를 한껏 멋을 냄이 아니다ㅣ

시조시인 2022. 8. 1. 05:34

樂記(악기) 第十九(제십구) 

19- 7 是故樂之隆非極音也 食饗之禮非致味也 淸廟之瑟朱絃而疏越 壹倡而三歎 有遺音者矣 大饗之禮 尙玄酒而俎腥魚 大羹不和 有遺味者矣 是故先王之制禮樂也 非以極口腹耳目之欲也 將以敎民平好惡 而反人道之正也(시고악지융비극음야 사향지례비치미야 청묘지슬주현이소월 일창이삼탄 유유음자의 대향지례 상현주이조성어 대갱불화 유유미자의 시고선왕지제례락야 비이극구복이목지욕야 장이교민평호악 이반인도지정야).
[이렇기에 ‘악’(음악)의 융성함이란 ‘소리’를 한껏 멋을 냄(極)이 아니다. 종묘의 큰 제례(사향지례)는 한껏 맛을 냄(致=極)이 아닌 것이다. ‘청묘의 시(詩)를 노래할 때’(청묘)의 ‘슬’(큰 거문고)이 주사를 마전한 줄(주현)로 되어 있는데 비파 밑에 구멍이 있어서 탁하고 느리므로 한 번 소리를 내어서 셋이 서로 응하는데, 다하지 못한 ‘여음’(遺音=餘音)이라는 게 있다. ‘대향’의 예에 맑은 물을 위에 놓고(상현주) 생선을 조에 올려놓으며(조성어) 대향 예에 드리는 국의 간을 맞추지 않는(대갱불화) 데에는 다하지 못한 ‘여미’(遺味=餘味)이라는 게 있다. 그렇기에 선왕이 ‘예’(예절)와 ‘악’(음악)을 제정함에는 입과 배나 귀와 눈의 하고자 함을 한껏 하려는 게 아니라 앞으로 백성에게 좋아함과 싫어함을 공평하게 하는 일을 가르쳐서 사람 길의 올바름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악의 융성함이란 음을 극진히 하는 것이 아니니, 사향의 예란 맛을 극진히 하는 것이 아니고, 청묘의 술이 주현으로 되어 있고 밑바닥에 실 구멍이 있어 기를 통하니 한 번 소리를 내서 세 사람이 화답함에는 다하지 못한 여음이 있는 것이다. 대향의 예에 현주를 윗자리에 놓고 생선을 조에 올려놓으며 국에 양념을 섞지 않는 데에는 그 속에 다하지 못한 여미가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선왕이 예악을 마련함에는 구복이나 이목의 욕심을 극진히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장차 백성에게 호오를 공평하게 하는 일을 가르쳐서 인도의 바른 데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
 즉, 이 절은 선왕이 예악을 제정한 것은 덕을 위주로 한 것이지 음의 멋을 지극하게 하는 데 있지 않음을 설명한다. 앞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사람에게 있어서 존귀한 것은 덕이므로, 이 때문에 음악의 융성이란 덕(풍속을 아름답게 바꾸는 것은 음악의 덕이다.)에 있는 것이지, ‘음’의 멋을 한껏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종묘의 대제례(식향지례: 종묘의 대제례)는 덕(효경은 제사 때 발휘하는 덕이다.)에 있는 것이지 미미의 극치를 대하는 것이 아니다(비치미야: ‘치’는 ‘極’과 같은 뜻). 무엇으로서 ‘음’의 미를 다함이 아니라고 하느냐. 종묘의 제사에서는 청묘의 시를 노래하는데(청묘지슬: ‘청묘’는 청묘의 시, 시경 주송에 나옴. 종묘의 대제 때에 노래하는 것. ‘청묘지슬’이란 청묘의 시를 노래할 때 그것에 맞춰 타는 슬을 이르는 말.) 그때에 쓰는 금은 붉은 연사로 줄(주현: 주사를 마전하여 현으로 만든 것. 실을 마전하지 않으면 소리가 맑으나 마전하면 소리가 탁해진다.)을 메우고, 금 밑에 구멍(소월: ‘소’는 ‘通’과 같은 뜻. ‘월’은 비파의 저부에 있는 구멍. 구멍이 있어 공기를 통하여 ‘음’을 내어 지완하게 하는 것이다.)이 있어서 그 소리가 탁하고 또 느리므로, 한 번 탄창하더라도 세 사람이 창화할(삼탄: ‘삼화’와 같은 뜻. 세 사람이 화하는 것.) 뿐인데, 이것은 그 ‘음’의 질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세밀하게 이를 음미하면 여음(유음)이 요요한 바가 있다. 선왕이 이 ‘음’으로서 풍속을 개량하여 이 좋은 세상을 후세에 남긴 것을 생각할 때 검박한 중에도 숭고한 멋이 있어서 아름다운 ‘음’이 반드시 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무엇으로서  맛의 미를 다함이 아니라고 하느냐. 종묘의 대제례(대향지례: 식향지례와 같은 뜻)에서는 맑은 물(상현주: ‘상’은 ‘上’과 같은 뜻. 위에 놓는 깃. ‘현주’는 맑은 물)을 위에 놓고, 성어를 그릇에 괴어 놓고, 간 맞추지 않은 국(대갱불화: ‘대갱’은 ‘대향지례’에 드리는 국. 그 의식이 성대하므로 ‘대’ 자를 덧붙였다고 함. ‘불화’는 간을 맞추지 않은 것.)을 올린다. 그 재수가 매우 간소하지만, 세밀하게 이를 음미하면 다함이 없는 여미(유미)가 있는 것이다. 선왕께서 이 맛을 가지고 스스로 살아가면서 조상을 제사 지내고, 그리하여 이 세상을 좋게 해서 후세에 남긴 것을 생각할 때 질소한 중에도 무한한 맛이 있어서 진수가 반드시 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선왕이 예악을 제정함에 있어 구복이목의 욕심을 다하게 하지 않고, 장차 백성으로 하여금 그 호오를 공평하게 하도록 가르침으로써 바른 인도에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덕을 기르는 것이다.  

[시조 한 수]

악의 융성함

김 재 황  


음악이 융성함은 한껏 멋 냄 아니라네,
올리는 종묘 제례 또한 멋이 아니라네,
풍속을 아름답도록 가꾸는 게 악의 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