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황 시집 '거울 속의 천사' 도서출판 반디. 1989년 8월 발행
표지 그림은 백규현 화백이 그렸고,
본문 그림은 손창복 화백이 그렸다.
제1부 분수 앞에서, 제2부 수수밭으 보면, 제3부 당신의 손은, 제4부 고슴도치풀,
제5부 엉겅퀴, 제6부 과원 일기 등으로 나뉘고 총 90편 수록.
애초부터
어디엔가 박혀야 할 운명이라면
그대 가슴에 파고들어가
믿음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그대 안에서 뼈대 같은
사랑으로 서고 싶다.
--작품 '못' 전문
거울 속의 천사
김 재 황
나의 시는 거울 속의 천사와 만나서 나누는 대화다. 천사와 만나는 일은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나 스스로 거울 앞에 섰을 때 거울 속에서 천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며, 다음은 이 세상에 있는 천사들을 내 마음의 거울 속에서 만나야 한다.
우리의 가슴 속에는 악한 마음과 선한 마음이 함쎄 살고 있다. 진실이라는 이름의 거울을 통해 보면, 악한 마음은 머리에 뿔이 돋았고 긴 꼬리를 달고 있는 악마의 몰골이지만, 선한 마음은 은빛 날개를 반짝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통 '몹시 화가 났다.'라는 것은 '머리에 뿔이 났다.'라고 표현하며, '기분이 아주 좋아 행복하다.'라는 의미를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라고 하는 게 모두 그 이야기이다.
악한 마음과 선한 마음의 힘이 비슷하면 늘 싸우게 된다. 우리는 일를 두고, '갈등'(葛藤)이라고 지칭한다.
악한 마음이 말한다.
"남의 것이라도 빼앗아야 내가 잘 살 수 있는 거야."
그러면 선한 마음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무슨 소리야, 굶는 한이 있더라도 올바르게 살아야지."
이렇게 말다툼이 시작되어 나중에는 한바탕 결전이 벌어지게 된다. 이 싸움에서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서 악한 사람도 되고 착한 사람도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잊고 있을 때가 많다. 자기의 추한 모습을 깨닫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당장 거울 앞에 서 보아라. 거울 속에 어떤 모습이 있는가? 악마의 모습인가, 천사의 모습인가. 남에게 못된 짓을 하고 살았다면 거울 속에 흉한 악마가 서 있을 게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고 언제나 정의롭게 살았다면 은빛 날개의 천사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서 있을 게다.
모든 사람은 아름답기를 꿈꾼다. 다른 사람의 눈에 천사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천사처럼 되려는 노력을 등한히 하고 있다. 한 번 천사의 모습을 보이기는 쉬울지 몰라도, 항상 천사의 모습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악마는 매우 교활한 놈이어서 천사에게 항복을 하였으면서도 허술한 틈을 노려 다시 도전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방심은 절대로 금물이다. 조금이라도 악한 마음이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 항상 귀로는 아름다운 말만 듣고 손으로는 옳은 일만 하고 입으로는 향기로운 이야기만 해야 한다.
악마는 어둠을 좋아하고 빛을 두려워한다. 사람이 늘 밝은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면 악마가 발 붙일 곳을 잃게 된다. 만약 우리 마음 속에 걱정과 근심이 있다면 하늘에 검은 구름이 끼어 있는 흐린 날과 같아서 악마는 꼬리를 치며 활동할 태세를 갖춘다. 그럴 때일수록 용기를 내어 시름을 털어내고 밝은 하늘을 되찾아야 한다.
영국의 스티븐슨이 지은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있다. 박학하고 인자한 의사인 '지킬 박사'는 인성의 선악을 약품으로 분리할 수 있다고 믿고 스스로 실험에 들어간다. 그 결과, 악마의 추악한 '하이드 씨'로 변하게 된다. 그는 한 번 두 번 실험을 거듭하는 동안에 점차 약품을 안 쓰고도 '하이드 씨'가 되곤 한다. 이어서 살인을 범하고 쫓기다가 자살을 하면서 모든 사실을 유서로 고백한다.
여기에서는, 착한 사람도 어떠한 계기로 인해서 얼마든지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끊임없이 착한 일을 행하면, 비록 과거에 악했던 사람일지라도 천사의 모습을 한 성자(聖者)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도의 '자반'이라는 사람은 청소부로서 몸을 스치기만 해도 부정을 탄다는 천민계급에 속해 있었다. 한 때는 나쁜 친구를 따라 '찬두'라는 마약으로 만든 담배를 치우다가 중독이 되어 어머니와 장모의 돈을 훔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후에 '피터'라는 의사의 병원 일을 도와주게 되면서부터 부드럽고 선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는 어머니를 보러 갔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자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떠난다. 길에서 만난 우유 배달부에게 그가 말했다.
"나는 산골짜기에서 온 사람인데, 병 들고 약을 구할 수 없거나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을 도와 주기 위해 이 곳까지 왔습니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보살펴 줄 수 있습니다. 돈을 벌려고 그러는 건 아닙니다. 단지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자반'은 열심히 봉사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리를 얻지만, 의사의 시기로 방랑을 다시 하게 된다. 그러다가 '뭇쑤리'라는 고장에서 교회와 절과 사원을 청소하는 일을 한다. 계속해서 봉사하는 '자반'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바가트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바가트지'란, 신에게 귀의한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그는 그렇게 낮에는 청소를 하고 밤에는 닭장에서 잠을 잤다. 눈이 몹시 내리던 어느 크리스마스 날 밤, 그가 잠자고 있던 닭장이 눈에 눌려서 무너졌다. 의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경찰은 그의 소지품을 정리했는데, 그의 낡은 옷에서 종이쪽지가 하나 나왓다. 그런데 그 내용이 놀랍게도 그날 그가 죽을 것을 일년 전에 예언한 것이었다.
'자반이 죽엇을 때 어떤 기념비도, 어떤 절이나 교회도 그의 이름으로 세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반을 한 번이라도 마난 적이 있는 사람은 자신들의 가슴 속에 그의 이름으로 된 사원을 간직했다.'
이는 이 소설의 말미에 적혀 있는 글이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깨끗하고 편편한 마음의 거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바른 마음의 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참된 모습을 비춰 볼 수 없으며, 더구나 요철이 아주 심한 마음의 거울이라면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까지 자칫 흉한 악마의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이 땅에는 아름다운 천사들이 많이 있다. 그 천사들은 진실이라는 거울 속에 들어가 있다. 사람들이 그러한 천사를 볼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거울을 깨끗하고 편편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깨끗한 마음의 거울로 이 세상을 비춰 보면, 산이며 강이며 숲에서 천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숲으로 천사를 찾아간다. 나는 작은 천사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숲에는 '달맞이꽃' '제비꽃' '나리꽃' '홀아비꽃대' '얼레지' '처녀치마' '며느리밑씻개' 등 많은 풀들이 있다. 모두 작은 천사들이다.
이렇게 많은 거울 속의 천사를 볼 수 있는 일은 그래도 쉽다. 하지만 영혼이 마음의 거울 속으로 들어가서 천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실의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면 우선 먼저 혀영과 위선의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정열적으로 타오르는 사랑의 '불새'가 되어야 한다. '불새'와 '천사'의 만남이나 '불새'와 '천사'의 대화 등은 모두 진실의 거울 속에서 은밀히 이루어진다.
천사는 종교적으로 볼 때, 천국으로부터 인간 세계에 파견되어 신과 사람과의 중간에서 신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고 사람의 기원을 신에게 전하는 사자를 말한다. 하늘에는 우리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분이 계셔서 항상 우리를 내려다보시다가 우리를 질책도 하고 위로도 하기 위해 천사를 지상으로 보내신다.
얼굴을 들고 하늘을 보라. 하늘에 떠 있는 무지게 한 자락이나 구름 한 조각도 결코 의미 아닌 게 없다. 하늘에 계시는 분이 보내신 천사는 거울 저 편까지 와서 나를 손짓해 부른다. 나는 거울 속에 있는 천사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불새'가 될 태세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영혼의 '불새'는 절대로 울지 않는다. 노래만 부르 뿐이다. '불새'가 부르는 노래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야 한다. 또 꽃은 화려한 색깔을 지녀야 한다. 색깔은 고상한 자태를 수반해야 하고, 자태는 은근한 향기를 머금고 있어야 하며, 향기는 그윽한 미소를 띠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소는 열렬한 믿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 믿음은 빛나는 사랑를 보여주어야 한다.
사랑은 바로 신앙이다. 하늘에 계신 분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이웃과 나누는 사랑, 그게 바로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불새'가 되어 거울 속으로 날아들어간 나에게 천사는 모든 진리를 알려준다. 인내를, 그리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베푸는 사랑을 풀의 몸짓으로 일러준다. 나는 천사의 가르침을 따른다. 침묵으로 견디는 인내를, 자연을 닮은 순리를, 그리고 끝없이 베풀어야 하는 사랑을 따른다.
자, 우리 모두 숲으로 가지 않겠는가. 숲으로 가서 뜨거운 영혼의 '불새'가 되지 않겟는가. '불새'의 춤을 그대는 보았는가. '불새'의 춤은 거울의 문을 열기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
나는 이미 숲에 와 있다. 금시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겨드랑이에 어느 틈에 날개가 돋아나고 목이 길게 늘어난다. 점 점 여위어 가서 가늘게 서는 다리, 나는 날개를 활짝 펴고 목을 길게 뽑는다. 다리를 겅중거리며 몸을 흔든다. 슬픈 듯 기쁜 듯 너울거리는 환희 춤, 순수의 안개가 피어오른다. 몸이 빛나면서 고고한 음악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거울 속에서 손짓하고 있는 아름다운 천사를 향해 날아간다. 거울의 문은 벌써 열려 있다. 아, 진실의 거울 속에서 천사와 '불새'의 재회. 은밀한 대화가 뜨겁게 이루어진다. 이게 바로 나에게는 한 줄의 詩가 된다. 나는 또 오늘밤을 하얗게 밝혀야만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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