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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황 시집 '바보여뀌'도서출판 '반디' 총 104종 들꽃들의 시. 1990년 4월 출간
표지 그림: 백규현 화백, 내지 그림: 손창복 화백
노래한 들꽃들
털이슬/ 앵초/ 등대풀/ 봄맞이꽃/ 돌단풍/ 벌노랑이/ 좁쌀풀/ 양지꽃/ 층층이꽃/ 처녀바디/
애기풀/ 며느리배꼽/ 삿갓사초/ 톱풀/ 구절초/ 대나물/ 꽃며느리밥풀/ 기생여뀌/ 말똥비름/
쥐손이풀/ 홀아비꽃대/ 너도바람꽃/ 바보여뀌/ 비비추/ 별꽃/ 패랭이꽃/ 오이풀/ 쓴풀/
참나리/ 닭의장풀/ 제비꽃/ 모시대/ 엉겅퀴/ 바위채송화/ 개연꽃/ 꿩의바람꽃/ 매발톱꽃/
개구리밥/ 바랭이/ 방동사니/ 질경이/ 골무꽃/ 마편초/ 닻꽃/ 방아풀/ 금마타리/ 솔나물/
활나물/ 매듭풀/ 장대나물/ 꼬리풀/ 갈퀴덩굴/ 바늘꽃/ 금낭화/ 으름덩굴/ 짚신나물/
도둑놈의갈고리/ 거지덩굴/ 젓가락나물/ 낙지다리/ 끈끈이주걱/ 노루오줌/ 꿩의다리/
은방울꽃/ 달맞이꽃/ 딱지꽃/ 반디나물/ 연리초/ 미치광이풀/ 돌나물/ 향유/ 꽃다지/ 기린초/
복수초/ 산괴불주머니/ 냉초/ 석류풀/ 도꼬마리/ 개미자리/ 부들/ 고들빼기/ 속속이풀/
거북꼬리/ 족두리풀/ 옥잠난초/ 인동/ 하늘나리/ 큰꽃으아리/ 병조회풀/ 타래붓꽃/
나도송이풀/ 쥐꼬리망초/ 수박풀/ 능소화/ 세잎돌쩌귀/ 동자꽃/ 마디풀/ 하늘타리/
꼭두서니/ 탑꽃/ 노랑매미꽃/ 금강초롱꽃/ 각시둥굴레/
매운 맛 하나 없는 바보여뀌
김 재 황
“밥은 좀 모자란 듯이 먹거라.”
나는 요즘 새삼스럽게 할머니께서 늘 일러주시던 이 말씀을 자주 떠올립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그 욕심을 모두 채우려고 하다가는 마침내 그것으로 인해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겨울만 아니라면, 논두렁이나 냇가에서 ‘여뀌’ 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여뀌 풀을 입에 넣고 씹으면 매운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매운 맛이 없는 여뀌 종류가 있지요. 그게 바로 ‘바보여뀌’입니다. 그 맛이 순하기에 어딘지 좀 모자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나는 바보여뀌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우선 그 이름이 부담감이 없어서 친근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더구나 그 모습이 자유로워서 보기에 좋습니다. 순한 친구처럼 언제 만나도 반갑고, 편안합니다. 한여름,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이삭 모양으로 달리는 꽃이 정겨운 언어를 전합니다. 붉은 빛 입술이 열리는 향기로운 음성을 나는 가슴으로 듣습니다.
매운 맛 하나 없기에
평소에 허술히 보아 왔더니
순한 마음인가
내 슬픔 토닥여 주는 그대
한여름 땀을 흘리며
환한 미소 짓는다
아, 잊었던 친구여
나는 부끄러운 손을 내밀지만
그대는 아름답게 몸을 준다.
―졸시 ‘바보여뀌’
나에게는 장사를 해서 큰 돈을 번, 친구가 하나 있는데, 언제인가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돈을 번 것은 순전히 내 얼굴 덕이야.”
나는 처음에는 그 뜻을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후에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모두가 한 가지이지요. 자기보다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대할 때면, 누구나 일단 경계심을 갖게 됩니다. 더구나 그 상대방이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 친구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빈자리가 있습니다. 똑똑한 것과는 거리가 먼 인상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앞에서는 경계심을 늦추기 마련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도 곧잘 그에게 농담을 해 올 정도로 부담감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의 마음 또한 아둥바둥하는 성미가 아니어서 손이 크고 후합니다. 그러니 한 번 그의 가게에 들렀던 사람이면, 모두 그의 단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식당을 경영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장사가 잘 안 되니 자연히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니 주방장에게 심한 잔소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방장은 슬며시 화가 났지요. 그래서 주방장은 ‘손해보고, 아주 망해 버려라.’하는 생각으로 그릇마다 고기를 듬뿍듬뿍 넣어서 내놓았습니다.
몇 달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식당이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날로 손님이 늘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주방장은 망하라고 한 일이었지만, 손님으로서야 어디 그 내용을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그저 고기를 많이 주는 게 고맙고, 그처럼 후하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을 통하여 널리 퍼져 나가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게 된 것이지요. 물론, 그 식당 주인은, 어찌된 영문인 줄도 모른 채, 큰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나는 바보여뀌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좋은 그 친구를 떠올리고, 주방장의 심술 덕분에 성공한 그 식당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과연, 나는 바보여뀌처럼 좀 밑진 듯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반성해 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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