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시 154

소나기 목욕/ 김 재 황

소나기 목욕 김 재 황 세찬 빗발 속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를 보고 있자니 어릴 적에 버짐 핀 얼굴로 ‘소나기 목욕’을 하던 일이 떠오르네. 벌거벗고 마당 한가운데로 나가 그저 서 있기만 하면 소나기가 알아서 몸을 다 씻겨 주었지. 우리는 간지러움에 낄낄거렸네. 저 플라타너스도 그때 그 재미 알고 있을까. 버짐 핀 몸뚱이를 보고 있자니. (2001년)

대표 시 2022.01.20

못생긴 모과/ 김 재 황

못생긴 모과 김 재 황 너는 민주주의를 신봉하였다. 나는 무심코 네 옆을 스쳐서 갔고 너는 길거리 좌판 위에서 자유롭게 뒹굴며 지내었다. 한 떼의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목청 높여 외칠 때도 너는 생긴 대로 그렇게 놓여 있었다. 나는 그러한 평화가 보기에 좋아서 걸음을 멈추고는 손을 내밀었고 너는 향기를 나에게 전하였다. 자유로운 모습과 평화로운 향기 나는 유심히 네 옆에 머물고 너는 몸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였다. 새콤하게 맛으로도 보여 주었다. (1991년)

대표 시 2022.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