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꾹채와 김용오 시인
김 재 황
여름에 더위를 피해서 산이나 들로 나가게 되면, 아름다운 분홍빛 꽃을 한 송이씩 머리에 이고서 웃는 뻐꾹채를 만날 때가 있다. 다른 풀들은 작더라도 여러 꽃을 지니고 있건만, 뻐꾹채는 단 한 송이 꽃을 피우므로 보는 이로 하여금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꽃빛깔이 어쩌면 그리도 유혹적인지, 원초적 본능, 아니 솔직히 말해서 성적(性的) 본능을 생각하게도 한다.
외로움과 성적 본능을 이야기하는 뻐꾹채. 나는 뻐꾹채의 꽃 핀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김용오(金容五) 시인을 떠올린다. 지금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미국으로 이민 보내고 도봉구 자택에서 홀로 살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는 성(性)의 이야기를 시의 작품으로 써 오고 있지 않은가.
‘김용오 시인은, 지난 몇 세기 동안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어온, 성(性) 제재를 과감히 도출시킴으로써 왜곡된 도덕을 바로잡으려는 의욕을 보인다. 근대문학의 출발기에 보였던 자유연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인한 부작용도, 성 제재를 금기시해 왔던 이전의 관습에 대한 반발에서 생긴 것이라고 볼 때, 그의 성 제재는 우리들의 윤리 의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문학평론가 정신재(鄭信在)의 말이다.
해마다 발정기가 찾아오면/ 수놈과 암놈이/ 서로의 탐스런 성기를/
살짝 바꾸어서 입에 물고는/ 가을의 허공 속을/ 동그랗게 동그랗게 비상하여/
굴렁쇠처럼 맴돌던/ 한 쌍의 빨간 고추잠자리.
------------ 작품 ‘고추잠자리’ 중에서
그의 작품을 읽으면 성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밝고 신선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성을 대하는 그의 시선이 어린이의 입장에서 비롯되기 때문일 성싶다. 그래서 그 표현이 맑고 순수한 얼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듯싶다.
김용오 시인은, 1982년 ‘시문학’ 지에 작품 ‘들’, ‘봄비’, ‘개나리’ 등의 작품이 천료되어 등단한 이래, ‘여자 현상학’, ‘동화작용’, ‘신의 수염’. ‘두 사람에 관한 성찰’ 등의 작품집을 내었다. 이 중에서 ‘여자 현상학’은 경구 모음집이다.
“성(性)에서 또는 삶에서 정직한 여자가 가장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굳이 프로이드적 해석을 끌어다붙일 필요도 없이 성이란 것은 억압되어 있다가 분출되면 병적인 엉뚱한 방향으로 터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태반의 여성들은 억압과 가림에 습관이 되어서 성에 관한 자신들의 태도와 인식이 위선이고 가식인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원래, 거짓말도 자꾸 하다가 보면 거짓말인 줄 모르는 법이지요. 위선과 가식도 자꾸 습관화하다가 보면 그 위선과 가식이 자기 모습인 것으로 착각하고 살게 됩니다. 그렇다고 성이 곧 쾌락이 될 수가 없고, 또 성이라고 무작정 아름답게만 표현이 되어도 안 되리라 여겨집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이화작용(離和作用)에 의한 이원적 대칭 구조로 되어 있어요. 이를테면 정신과 물질, 자연과 인공, 선과 악 등이지요. 이 대립과 갈등, 역시 궁극적으로 역동적 에너지를 낳고…… 아무튼 이 대립과 갈등, 그리고 대칭 구조와 상대 개념이 한번에 소멸되어 버리는 무(無)의 순간이 꼭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새 생명을 창조하는 순간, 즉 성에 의한 남녀 동화의 시간입니다. 세상의 온갖 대칭 구조와 갈등 및 대립이 소멸되고 근원의 순간에 이른다는 의미에서 나는 ‘성(性)’을 ‘성(聖)’으로 승화시키고 싶었습니다.”
나는 김용오 시인의 이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는 ‘여자들과의 추억은 만들지만 인연은 만들지 않는다.’고 단연히 덧붙였다. 말하자면, 그는 ‘무소유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김용오 시인의 작품집 ‘신의 수염’과 ‘동화작용’은 성을 통하여 온갖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면서 삶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그의 문학에 있어서 각각 ‘기(起)’와 ‘승(承)’에 해당된다. 그런가 하면, 시집 ‘두 사람에 대한 성찰’은 삶의 본질과 인간의 본능적 요소에 대한 인간탐구의 미적인 결실로 나타낸 정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즉, ‘전(轉)’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시문학’지에 연재하고 있는 ‘오르가즘’ 연작시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지게 되면, 바로 ‘결(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듯싶다. 그는 그 후에 총괄적 의미를 담은 장시를 쓰고 나서, 다른 세계를 탐색할 것이라 한다. 평소에 그가 갈망해 왔던 ‘안 똑똑한 세계’로 향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내가 김용오 시인과 알고 지낸 지도 벌써 십년이나 되었다. 늘 말이 없고, 듬직한 몸가짐을 잃지 않은 그를, 나는 멀리서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나이도 비슷했고, 어쩐지 외로움을 간직한 그 모습에서 아마도 나는 동질성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김용오 시인에게 보다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외곬’의 성품 때문이리라 여겨진다. 그는 줄곧 성을 주제로 한 시를 써서 ‘요하시인(腰下詩人)’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말하자면, ‘허리 아래의 시인’이라는 뜻이다. 그런 반면에, 나는 줄곧 나무를 주제로 한 시를 써서 ‘나무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요하시인’과 ‘나무시인’, 참으로 잘 어울리는 좋은 시우(詩友)가 될 수 있겠다는 예감이 어찌 들지 않았겠는가.
뻐꾹채의 꽃은 그 색깔이 분홍색이어서 ‘성적 본능’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런가 하면, 그 꽃모양이 반구형(半球形)이어서 ‘고운 아가씨의 착한 눈망울’을 생각하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꽃의 포(苞)들이 산발한 모양을 보이고 있어서 ‘허무’를 느끼게도 한다. 김용오 시인은 자신을 ‘철저한 허무주의자’라고 표현한다. 문학평론가 장윤익(張允翼)은 다음과 같이 그의 말을 뒷받침했다.
‘김 시인은 외롭게 성찰하는 시적 고행의 길을 걸으면서 시의 어브제들을 찾아내어 인생의 문제를 새로운 감수성으로 승화한다. 이러한 정신적 고행의 길은 황진이와 가롯 유다라는 전혀 이질적인 두 인물을 시의 대상으로 등장시켜 선악을 넘어서는 정신의 합궁을 시적 형상화로 시도함으로써 고정관념을 깨뜨려 보려고 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온갖 생명을 떠받쳐주고 있는 위대한 모순을 감동적인 정신의 산물로 남겨보고자 하는 사명감이 김용오의 미학을 떠받치고 있는 존재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생명 탐구의 고독한 인생 과정에서 마지막 남은 것은 허무의식이다. 이러한 허무의식은 김용오 자신의 창작 과정을 비시(非詩)의 쾌감에서 예술적인 감동을 얻고자 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으로 승화하고 있다.’
뻐꾹채는 엉거시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몸 전체에 솜털이 배게 나 있어서 김용오 시인의 순수한 영혼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잎이 깃 모양으로 찢어져 있어서 김 시인의 아팠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뿌리잎은 모여 나고 잎자루가 길지만, 줄기잎은 위로 갈수록 작아지며 잎자루도 지니지 않는다. 김용오 시인의 유년 시절이 평탄치 못했음을 그 또한 짐작하게 한다. 정말이지, 뻐꾹채는 보면 볼수록 김용오 시인의 이미지를 지녔다.
김용오 시인은, 1943년 10월 31일, 경북 포항시 대도동 569번지에서 단란한 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도동(大島洞)은 변두리 지역이었고, 그 앞에 형산강이 흐르고 있다. 그는 일본인들이 형산강의 둑을 막는 일을 기억하고 있고, 그 강에서 벌거벗고 미역을 감고 놀던 일을 추억으로 곱게 간직하고 있다. 매끈한 조약돌이 밟히는 감미로운 감촉이며, 따뜻한 햇볕이 내리는 모래밭에 벌거벗고 누워 있을 때의 그 편안함을 지금도 그는 되새기고 있다. 그러나 그처럼 행복한 어린 시절은 그에게 그리 길지 못했다.
“평화로운 집안을 송두리째 흔들기 시작한 건 6․25사변이었습니다. 내 나이 일곱 살이었으니, 전쟁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죽고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었지요. 남들처럼 우리집 가족들도 피난 행렬에 끼어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어요. 그러나 어느 곳에서였는지는 몰라도, 그만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나대로 이웃집 아주머니를 따라, 아버지는 아버지 혼자서, 어머니는 3살난 여동생을 등에 업고 할머니와 함께 전가족이 서로 생사를 모른 채 제멋대로 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은 더 내려갈 수도 없는 최남단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나는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뒤따라 당도한 동네 아는 분들과 무슨 말을 주고받으시더니 아무 말없이 내게로 오셔서 내 손을 꼭 쥐시고는 바닷가 언덕 위에 힘없이 주저앉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웬일인지 말 한 마디 없이 먼 바다 저 쪽만을 자꾸 하염없이 바라보시고 계셨어요. 나는 잔잔한 파도 위에 떨어진 저녁 노을이 참 곱구나 하는 뚱딴지같은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이든지 한 마디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일념뿐이었지요.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마치 지나가는 소리처럼 나를 보시지도 않고 바다 쪽을 바라보시며 조용히 떨리는 음성으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조금도 실감있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그저 무섭고 춥기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들고 따뜻한 방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중에야 어머니께서 3살난 여동생을 등에 업으신 채 포탄 파편에 맞아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서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그대로였고 가족이 다 모였으나, 어머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용오 시인은 어머니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 아픔으로 설정된 게 ‘대지’라는 작품이다.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대지에게 그의 사랑을 실현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어느날 포근한 음모의 이랑을 열고/ 껍질이 부서지는 아픔을 느끼며/
끈적거리는 섭리를 빨아먹고 있을 때/ 당신의 품 속에서/ 칭얼거리던 나의
씨앗/ 입술이 고운 아가/ 들은 부드러운 옷깃을 풀고 흙의 젖꼭지를/
물려준다/ 바람이 자장가처럼 지나가고/ 한번도 바로 눕지 못한 나의 슬픔이
눕는다.
------------ 작품 ‘들’ 중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나서, 야속하게도 그의 아버지는 새 장가를 드셨고, 그리고 새로운 동생들도 태어났다. 어릴 때는 그런 대로 지냈으나,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그는 빗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역마살이라도 낀 듯이 훌쩍 집을 떠나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나중에는 아버지로부터 버린 자식 취급을 당하게 되었고, 그는 그럴수록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깊어 갔다.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 한없이 보고 싶어, 이불을 뒤집어쓴 채 나혼자 울기도 하고, 어쩌면 어린 남매를 두고 쉽게 새 장가를 들 수 있으며, 새 엄마가 집으로 처음 오던 날 동구밖까지 마중 나오지 않았다고 하여 꾸중하던 일들이며, 온갖 상념들이 나를 떠나지 않고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우연히 아버지께서 그 동안 써 오신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만남이었습니다. 창호지를 잘라서 묶어 만든 너무나 낡고 퇴색한 노트였지요. 날짜를 보았더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 2년 동안의 삶을 담아놓은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붓으로 한 자 한 자 수놓듯이 써 내려간 슬픔을 갈증난 환자처럼 벌떡벌떡 마시다가 나는 몇 번이나 숨이 막혀 텅 빈 앞마당 쪽으로 시선을 옮겨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식들 앞에서 울 수 없었던, 아니 보일 수 없었던 눈물이 호수처럼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텅 빈 마당에서 한동안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차츰 정신이 들자,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마음을 일신하여 공부에 열중하였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대학 사회복지과로 진학하였으며 이어서 건대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그는 병역 의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경주에서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다가, 왜관에서 미군부대의 전자 정비 일을 잠깐 보았고, 그 후에 서울로 상경하여 제약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는 그 회사에서 사원부터 전무에 이르기까지 근무하였으며, 지금은 퇴직하여 약품을 수입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뻐꾹채는 따뜻한 사랑을 지녔다. 즉, 아픈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어진 사랑을 지닌 풀이다. 생약명으로 뻐꾹채를 ‘야란(野蘭)’이라고도 부르는데, 해열과 해독 등의 효능이 있어서, 근육과 뼈의 통증을 비롯해서 임파선염이나 습진과 종기 또는 치질의 치료약으로 쓰인다.
시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며, 또 그 역할을 해낼 것임을 우리는 모두 믿는다. 이제 김용오 시인은, 뻐꾹채의 희생을 지닌 사랑처럼, 헌신적인 세계를 구축하여 큰 바보의 역할을 담당하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추구하려는 세계이기도 하다. 많은 친구를 사귀지 않고, 오직 고독을 철저히 사랑하기 위해 문학 외에도 종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김용오 시인. 그는 이제부터 우리 마음밭에 뻐꾹채로 서서 아름다운 고독의 꽃을 피울 게다. 성적 매력을 간직하였으나 결코 야하지 않은 뻐꾹채의 모습으로, 종달새 울음보다 더한 그리움의 분홍빛 꽃을 피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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