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금화와 이탄 시인
김 재 황
얼굴에 환한 미소를 내보이며 밝은 영혼으로 다가오는 꽃, 입금화(立金花). 꽃마다 황금 별빛이 되어, 먼 하늘로 오르려고 한다.
입금화란, 바로 ‘동의나물’을 이르는 말이다. 봄마다 원줄기 끝에서 기쁘게 피어나는 황색 꽃으로 하여 그 이름을 얻은 성싶다. 그러나 이 들풀은 꽃에 못지않게 잎도 아름답다. 서정이 가득 담긴 콩팥꼴이다. 다시 말해서 꽃으로 치자면 입금화요, 잎으로 치자면 동의나물인 셈이다.
나는 이 꽃을 볼 적마다, 이탄(李炭) 시인을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 표정이 동의나물의 그 정감 있는 잎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빛나는 영혼으로 하여 입금화의 그 황금빛 꽃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쩐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탄 시인의 본명은 김형필(金炯弼)이다. 그는 필명을 ‘李炭’이라고 한 내력을 다음과 같이 들려 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지 2학년 때인지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아무튼 2학년을 넘기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 때 국어 선생님의 한 분인 ‘황태강’은 인기가 좋던 선생님이셨지요. 우리들이 선생님을 좋아한 것은 선생님의 인품 때문이었지만, 그 이름이 더욱 좋았습니다. 패강! 이것을 한자로 쓰면 浿江이라는 멋진 지명이기도 합니다. 浿江은 浿水와 동일하고 대동강의 옛 이름이기도 합니다. 저 이름을 내가 쓸 수는 없을까. 그러다가 불쑥 그 이름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랫더니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내 이름이 훌륭히 되도록 나도 노력한다.’는 뜻의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을 끙끙거려 만들어 낸 것이 李炭이었습니다. 李자는 오얏나무 李자를 썼으며 炭자는 숯 炭자를 쓴 것입니다. 나는 炭을 쓸 때 전통을 생각한 것입니다. 간장을 담글 때 메주며 숯을 띄우는데 그 때 숯은 세균과 먼지를 빨아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또 멋도 있지요. 항아리 위에 숯이 몇 개 놓여 있는 정서는 한국의 멋이기도 합니다.”
주위를 정화시키는 사명, 그것이 시인이 할 일이 아니던가. 정서는 잃지 않는 멋, 그것 또한 시인의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던가.
향기가 가득하다/ 이 향기를 보낼 수만 있다면/ 먼 곳에 있는 그대
손 위에 싸서 보낼걸./ 30년 전 강촌에서 맡은 향기까지/
모두 불러내어/ 새한테 준다.
------------ 작품 ‘새한테 준다’ 중에서
그런데 나는 동의나물, 아니 입금화를 민통선 북방 대암산의 고층습원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일명 ‘용늪’이라고도 부르는 곳인데, 그날 나는 그곳에서 ‘입금화’와 ‘이탄’을 함께 만났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탄은 ‘李炭’이 아니라 ‘泥炭’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어찌 되었건 그 발음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습원에서는 식물의 유체(遺体)가 잘 분해되지 않는다. 저온과 수분과잉의 조건으로 지중동물은 물론, 미생물도 그 작용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조직은 황갈색 또는 암갈색 퇴적물이 된다. 이것을 이탄(泥炭, Peat)라고 부른다.
이 이탄층은 학술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이탄층의 형성은 아주 느려서 1cm가 쌓이려면 1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탄이 축적될 때는 식물의 꽃가루나씨 등이 함께 묻히게 되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탄층을 조사하면, 어느 시기에 어느 식물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가 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서, 나는 김 시인을 ‘李炭’보다는 ‘泥炭’으로 연결짓고 싶어한다. 그가 여짓껏 쌓아 놓은 이탄 속에 그 동안 묻혀 있는 진실을 캐내는 작업이 결코 헛되지 않은 테니까.
대암산의 고층습원은 정상부근 해발 1280m 지점에 위치하고, 동서로 275m 남북으로 210m의 크기인데, 이탄층의 깊이는 약 1.5m에 이른다. 동의나물은 그 바닥의 중앙부에서 조금 동쪽으로 비켜나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동의나물은 미나리아재비과 식물이다. 산중의 습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뿌리줄기는 짧고, 굵은 뿌리를 지닌다. 뿌리에서 나오는 잎은, 더부룩하게 무더기로 난다. 알 모양의 콩팥꼴이다. 줄기에서 나오는 잎은, 잎자루가 없다.
꽃은 4월 경에 핀다. 줄기 끝에서 한두 대의 긴 꽃대가 자라나서 눈이 부신 황금색 꽃을 피운다. 꽃잎은 없고, 둥근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지만, 그 한가운데에 많은 수술이 뭉쳐서 나 있다.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이탄 시인은 1940년 10월 20일, 대전시 대흥동 487번지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유년 시절은 인천의 주안에서 보냈다. 그는 인천 월미도가 바라다보이는 바닷가로 나가서 놀곤 했는데, 넓게 펼쳐진 뻘에는 작은 게들이 많았다 한다. 그는 썰물과 밀물이 가고 오는 소리와 갈매기 우는 소리를 들으며 게들과 벗하여 살았다. 이를테면, 이토록 푸른 서정이, 동의나물의 둥근 잎을 그려내고 있는 듯하다.
바다를 보면/ 끝없이 이어지던/ 그리움의 수평선이/ 나를 본다/
가슴 깊이 낙엽지고/ 무너진 산사태를/ 알고 있을까//
미처 못 떠난/ 눈물이 갈매기처럼 날고/ 뻗어도 뻗어도/
사랑은 깊고 어둡기만 하여라//
대궁 똑바른/ 잡초라도 자라면 좋은/ 흙을 생각하며/
바다를 보면/ 바다는 얼굴이 되어/ 나를 본다/ 머리를 지나가는 바람이/
그 뜻을 아는 것 같다.
------------ 작품 ‘바다를 보면’ 전문
이탄 시인은 8살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서 창신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당시에 아버지는 동대문구청의 공무원이었다. 어머니는 의류판매업을 감행할 정도로 생활력이 강했다. 평소에 말이 적으신 편이었으나, 남에게 구차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엄격하였다. 6․25때였다. 한번은 이웃집에서 경사가 있어, 부침개를 부치고 있었다. 지지는 소리와 냄새가, 어렸던 그의 코에 강한 자극을 주었다. 배도 고팠던 터라,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 모습을 본,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그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 일을 김 시인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탄 시인은, 부산에서 용산중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한영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어서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로 진학하였다. 그 후에 대학원은 한양대학교 국문과로 택하여, 그 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의나물이 한겨울에 화아분화(花芽分化)를 시작하듯, 이탄 시인은 어렵고 암울한 시대였던 고등학교 1학년 때에 문학을 시작했다.
습작기간에 적어도 자기 키만큼의 원고지를 버려야 한다고 역설할 정도로, 그는 많은 작품을 쓰고 또 썼다. 그 결과로, 대학을 졸업한 다음해인 1964년 1월, 그의 작품 중의 ‘바람불다’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나는 시를 쓰는 일을 사랑에 비유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에 동감합니다. 처음 詩作할 때 이렇게 해야겠다, 이렇게 쓰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쓴 것은 아닙니다. 흔히 보아 왔던 시의 형식, 내용을 능가하려는 의욕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만 소월의 예쁘장한 시, 심지어는 만해의 ‘알 수 없어요.’와 같은 시구들을 읽다가 덮어 버리기도 했지요. 윤동주의 ‘별 하나에…’와 같은 구절도 간지러웠어요. 정훈의 시구들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습니다. 李箱의 반짝이는 구절들도 마음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李箱은 아무래도 정통은 아닌 것 같았지요. 무엇인지 있기는 있는데, 잡히지 않는 매력은 있어도 그것 또한 공허한 것이었어요. 시원한 육성은 없나, 하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노천명의 ‘할머니 나에게 레몬을’과 같은 시는 적절했지만, 역시 여성의 음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수년의 습작기를 거쳐 지은 게 ‘바람불다’였습니다.”
이 시는 전쟁과 인간 사이의 체험을 토대로 회상과 독백을 통해서 인간성 회복을 강조하는 시라고 생각되는데, 어느 평론가는 ‘참신한 감각으로 끊임없이 자기 괴리(自己乖離)의 세계를 다양하게 인식하고 형상화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물론, 동의나물을 포함한 모든 식물은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서 오랜 세월 동안에 변이(變異)를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모든 시인도 오랜 창작생활을 하는 동안에 변화가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탄 시인은, 지금까지 8권의 시집과 4권의 선집을 상재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작품집을 내는 동안, 그는 어떻게 변모해 왔는가. 고층습원의 저 밑바닥 이탄(泥炭)을 꺼내어 살펴보는 것만큼이나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탄 시인은 1967년 첫시집 ‘바람불다’를 펴냈다. 그 시집 이후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계속 서술적 형태가 많았고 실험의식이나 체계를 잡아 써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쓴다는 작업, 사랑에 젖어 흥겨울 뿐이었다. 그 무렵에 참여시니 순수시니 하는 견해가 비등했지만 거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인생의 무상함이나 삶의 관조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5․16이 있을 무렵, 한 친구의 자살은 그를 더욱 그 분위기에 빠져들게 했다. 그렇게 쓰게 된 연작시 ‘소등(消燈)’이 또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졌다. 바로 다음해의 일이었다.
‘소등’ 이후에 그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 조악스런 인간성의 지적,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내면의 음성을 쌓아 나갔다. 그렇게 ‘냄새’, ‘소리’, ‘흔들리며’ 등의 작품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는, 지리함을 탈피하기 위해 시집 ‘줄풀기’를 내놓게 되었다. 이 때를 전후해서, 그는 햇빛에 관한 시를 많이 쓰게 되었다. 햇빛은 명예나 권력, 금력보다도 위대하고 진실의 정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매일 비맞는 얼굴로 걸어 가고, 그러니까 믿는 건 햇빛뿐인데, 믿는 건 오직 햇빛뿐인데.’라고 외쳤다. 하늘을 향해 크게 외쳤다. 그 후로도 ‘옮겨 앉지 않는 새’(1979년), ‘대장간 앞을 지나며’(1983년), ‘미류나무는 그냥 그대로지만’(1988년), ‘철마의 꿈’(1993년), ‘당신의 꽃’(1993년), ‘반쪽의 님’(1996년)을 계속해서 펴냈다.
“지금도 내 시에서 햇빛은 자주 나타납니다. 나는 그동안 전통에 충실한 시를 써 온 것도 아닙니다. 감상적 서정성을 배제하겠다고 의도한 일도 없고, 민중의 시를 쓰겠다고 의도한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 외의 일에 한눈 팔지도 않았습니다.”
영혼의 꽃을 피우는 시작(詩作)의 일에 정녕코 한눈을 팔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탄 시인, 그의 머리에 입금화의 금빛 화관을 씌우는 게 어찌 타당하지 아니하랴.
江村 얕은 폭포, 물줄기는 지금 어떨까/ 밤나무 사잇길로 가는 동안 목소리엔
밤꽃 냄새가 젖었다. 푸른 강물의 길이만큼 목소리는 길고 싱싱한 비늘,
깊은 호흡을 담고 있었다/ 江村, 얕은 폭포, 물줄기는 지금 어떨까.
------------ 작품 ‘목소리’ 중에서
이탄 시인의 영혼은 순수하다. 동의나물처럼 밝은 표정에서 누구나 알 수 있다. 그 안에 반석 같은 믿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지 않은 것은, 믿음이 적어서가 아니라, 오직 시작에 전념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그가 기독교문인협회의 회장직을 열과 성을 다하여 감당한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시는 시대의 불이고 생활의 물이고 정신의 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꺼지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시들지 않기 위해 다듬지요, 눈을 딴 데다 돌리지 않습니다. 가령 브람스를 모르면 음악을 모르는 것이다와 같은 정의가 있어, 이것을 시에 대입시킨다면 그것은 시에 대한 무지한 면을 드러내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동시대의 반응이 있고 동시대의 진실과 생명이 있으니, 시는 동시대에서도 제몫을 해야 한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햇빛이라든지 작은 것들을 진실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초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상식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다만 시의 길은 시로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서 항상 이상이라는 세계를, 우주를 마련하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나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인식하고 발견하는 작업의 결정입니다.”
이러한 시 세계의 구축은 튼튼한 믿음을 그 바탕으로 하였음을 말할 필요가 없다.
동의나물은 생약명으로 ‘노제초(驢蹄草)’, ‘수호려(水葫蘆)’라고 부른다. 뿌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약재로 쓴다. 진통, 최토(催吐), 거풍 등의 효능이 있다. 가래가 많이 끓거나 사지가 쑤시고 아플 때, 그리고 머리가 혼미하고 어지럽거나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에 치료제로 사용된다.
잎은 잎대로 다정하고, 꽃은 꽃대로 빛나고, 마지막에는 그 몸의 희생으로 다른 목숨의 아픔을 낫게 하는 사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탄 위에 피어난 시심이여, 이탄으로 사는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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