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추억 들
내 청춘의 발자국,
그 젊음의 흔적들은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주체 할 수 없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던
젊음이 종횡하던 종로 골목길
어둠이 바삐 몰려오던 오래된 흑백의 길,
기억 한 켠 에는 그대와 더불어 사라진 추억!
뻥~ 하고
가슴을 무너지게 하던 뻥튀기 장사가 있었다.
그렇게 추억은 부풀려진 뻥튀기처럼 세월 속에서 뜯겨지고
맞춰지지 않는 퍼즐처럼 내 첫사랑의 아픈 기억도
뻥~ 하고 가슴을 무너뜨린 채
이어지지 못하는 슬픔이 되어
다시는,
다시는 ,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잊음이 되어 가버렸다.
추억 속의 담벼락에는 이어지지 않는 흑백의 기억처럼 영화포스터가 붙어있었다.
60년대 초반 전국을 강타했던 가수 이미자님의 노래
동백 아가씨의 노랫말을 빌리자면
동백꽃이 빨갛게 못 견디게 물드는 것은
헤일 수 없는 그 수많은 밤을 가슴을 도려내는
그리움에 지치고 울다가 지쳐서 그렇게 멍든 것이라 단정했다.
슬픈 헤어짐을 예견하듯 영화<동백 아가씨>의 빛바랜 포스터처럼
세월의 담벼락에는 내 아득한 기다림도 그리움처럼 득지 붙어있을까?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
당시 국민학교에 다니던 이윤복은 가난한 가정에서 노름을 즐겨하는
아버지의 학대에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리고
윤복이는 어린 동생들을 위로하며 구두닦이로 연명 하며
그날그날의 일을 일기로 적었는데
그의 일기가 담임선생님의 호의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어
그 책은 날개가 돋힌 듯 팔려 나가고 또한 각계로부터 온정이 답지하고
그러자 아버지도 새사람이 되고 집을 나갔던 어머니도 돌아와 잘 살게 된다는 실화.
한동안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고 우리들의 가슴에도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영화
동요 '따오기'가 영화 속에 몇 번 나왔는데 무척 애처롭게 들렸던 기억이 새롭다.
1970후반-80년대 초반의 군것질 거리
우리가 어릴 적엔 저마져도 없었다.
1960년대 당시엔 부잣집에서도 재산 목록 상위를 차지하던 럭키금성 흑백TV.
가난한 시골에선 한동네에 한 대,
아니면 두서너 동네에 한대나 있었던 참 귀한 물건이었다.
당시로서는 요술 상자 같은 그 작은 TV화면에
어찌하여 그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지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요사이 탤런트라 통칭하는 이쁜 주인공을 보기위해
드라마 줄거리가 궁금해 지난 하루를 궁금증에 보냈음직한 이웃의 형수님들도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는 TV가 있는 집 아이에게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고놈의 티브이에 환장한 친구들은 TV가 있는 집 한 쪽 모서리에 앉았다가
일진이 사나울라 치면 TV시청은 커녕 안테나를 들고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들었다가 놓았다가 또는 돌렸다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파에 맞춰 화면을 잡기위해
야! 오른쪽으로 임마 아님 왼쪽으로 또는 위 아래로
잘못하면 그것도 못 맞춘다며 욕을 먹기 일쑤였다.
간신히 잡히는 화질도 화면에 줄이 서너 개 그어지는 것은 예사고
아래위로 오르내리고 또는 찌지직거리며
요새 같으면 아마 성질 급한 친구들은
TV 몇 트럭은 족히 부셨을 것이라 짐작된다.
뉴스를 보며, 연속극 여로를 보며,
분노하기도 했고 슬퍼하기도 했던 우리의 추억들....
저 흑백 TV처럼 세월은 잊혀져가는 한낮 꿈,
깨어나지 못하는 몽환처럼
기억은 언제나 어둠 속을 헤매는 속절없는 허망함은 아닐지....
롯데가 만든 소고기라면.
1960년대 초반의 내 기억에는 닭 그림이 그려진
삼양에서 만든 라면이 최초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배고프던 시절 아마 그때 돈으로 몇 십원쯤 했을 그놈의 라면은
정말 맛난 음식이었다.
라면을 말하자면 지금은 세월을 달리하신
내사랑하는 어머님의 기억이 언제나 함께한다.
지금은 팔순을 바라보는 큰 누님이 어렵사리 사다주신 라면을
처음 끓이실 제 설명서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라면스프 봉지까지 당당하게 삶아서(?)오시던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하건만 아무리 그리워한들,
못 다함이 사무친들 지금 어디에서 다시 뵈올 수 있을까?
돌아보면 자식으로서 못다 한 불효함만 가슴이 넘치도록 남는 것을...
시집간 딸 아이,
이미 장성하여 일가를 이룰 나이가 된 아들 녀석.
어쩌면 이 아이들은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이 애비의 애절한 심정을 과연 얼마나 알 수 있을지...
그리고 보면 내 절절한 그리움의 원천은 언제나 바람맞이 갓등의 언덕에서
이 자식을 기다리시던 어머님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잡지 가판대와 당시의 군것질 거리 풀빵을 파는 소녀
딸딸이라 부르던 삼륜차
온갖 것을 만들어 내던 대장간.
독서 삼매경
예나 지금이나 책을 많이 읽으면 책속의 길을 볼 수가 있음은 물론
삶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유익한 것임을
굶주리고 배고프던 우리들의 어린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독서를 하는 아이들이 날로 줄어들어가는 것을 보면
삶의 지혜와 무한한 인생의 길을 걸어가기엔 뭔가 걱정스러워 진다.
4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담배.
삐고 멍든데,허리 통증,옆구리 결릴 때,
팔 다리 쑤시고,온갖 신경통,
사랑싸움 하다 눈두덩 밤 팅이 된데,
심지어 배 아픈데 까지 갖다 바르기만 하면
단박에 효험을 보던 만병통치약 안티푸라민.
세월의 치열한 삶,
너무나 지쳐버린 영혼에 저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갖다 바르기만 하면
만병이 치유되는 그러한 단박 약은 없을지....
세월이 변함에 따라 아무리 좋은 약도
몇 번이고 의심의 눈초리를 곁 눈질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세태.
이제 순수함이란 단어는 뜬금없이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막연한 그리움처럼 오래전 사라진 전설,
잊혀져 가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또 하나의 전설 까스 활명수
헛!헛!헛!
우리나라 최초!
세계에서도 최초인 고대인이 붙인 파스를 아십니까?
고대인이 전투에서 몸살 신경통에 파스를 부치고 전투에 임하는 모습
검정 고무신의 추억.
추억은 언제나 저만큼 먼 곳에서 나를 부르는데
닳아 없어진 검정 고무신처럼 다가갈 수 없어 막연 하기만 하다.
옛날 우리가 신었던 고무신의 추억
옛 사진을 보노라니 고단했던 옛날이 묻어나는 듯합니다
마을 길 청소
우리는 그때 주변 환경을 우리가 깨끗이 가꾸고 쓸었습니다
축구는 그때 아주 인기 있는 놀이였지요.
동네에서는 축구공이 아닌 짚으로 뭉친 공,
그나마 학교에서는 고무공으로 하는 축구
그 열악함 속에서도 이회택, 차범근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태어났다
도회 학교 앞의 길거리 군것질 장사
참 불량 식품도 많았다고 하는데 그나마 시골에선 그런 곳이 없어서 다행이기도 했고
시골 초등학교 분교
옛날의 돈
일원부터 십 원 백 원
보이는 오백 원은 지금으로 치자면 거의 몇 십만 원에 해당하지 않을까?
입으로 불어 파리, 모기를 박멸하던 애프 킬라
요새 저런 걸 판매했다가는 맞아(?) 죽겠지요? 흐흐헛!
롯데 왔다 껌.
무척이나 추억이 깃든 판박이 껌.
재미있는 그림이 들어있는 왔다 껌 판박이를 문지르면
그대로 하얀 종이 위에 베껴지던 판박이 껌..
그리움도 하얀 여백에 문지르면 그대로 베껴지는
판박이 껌은 왜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일까?
그리움을 문질러, 못 다한 내 불효함을 문질러,
잊혀진 옛 추억을 문질러,
눈물처럼 세월 속에서 사라진 내 첫 사랑의 그대를 문질러
다시 만 날수만 있다면,
잠시라도, 아니 찰나라도 마주할 수만 있다면
내 엄지 검지, 손가락의 지문이 닳도록
내 손바닥의 껍질이 벗겨져 핏물이 강물처럼 흐르더라도
내 영혼이 마르고 닳도록 문질러 보겠지만
헛된 꿈!
이룰 수 없는 허무함이 아닌가?
부뚜막위의 막걸리 식초병
옛날의 부엌
왕중발
고기 굽는 석쇠
가마솥에 밥을 짓는 모습
이제는 이러한 모습도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스 케키
롯데 자야
시내버스와 버스비 소쿠리
추억은 흘러간 날의 잊지 못할 곳에서 머물다 지쳐가는 허무함.
기억은 날로 무디어지고, 무디어진 기억의 무리들은
나날이 낯선 잊음으로 자리 매김한다.
무디어진 기억,
잊음이 덕지 덕지 붙은 조각들은
그럼에도 더욱 강렬한 그리움으로 가슴에 부딪혀 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슬픔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