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악기론

연재에 들어가며(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3. 11. 11:33

연재에 들어가며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코로나’라는 감염병 사태로 어두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를 타개하려면 이보다 더 어려운 문제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고전 읽기’이었고, 마침내 나는 ‘예기’(禮記)를 손에 들었다.
 알고 있듯이 ‘예기’는 그 내용이 방대하다. 상권은 11절로 되어 있고, 하권은 44절로 되어 있다. 하권 중에 2절로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이 포함되어 있다. 
  예기(禮記)는 오경(五經) 중 하나이다. 그런데 왜 ‘예경’이 아니고 ‘예기’일까? 이는 ‘예’(禮)에 대한 기록 또는 주석(註釋)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자는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삼대의 문물제도와 의례 및 예절 들을 집대성하고  체계화를 이루었다. 또한 논어(論語)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제자들에게 예를 익히고 실천하도록 가르침을 주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제자들은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들에게서 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공자의 예에 대한 기록은 쌓일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후, 공자의 가르침을 잇는 후학들에 따라서 예설(禮說)들의 기록이 늘어나게 되었고, 한(漢)나라 때가 되어서는 그 예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예학(禮學)의 학자 또한 생겨나게 되었다. 그 중에 대덕(戴德)이나 대성(戴聖)이 있는데, 이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예설들을 수집하여 편찬한 사람들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숙질(대덕이 대성의 작은아버지) 사이이다.  
 한나라 학자인 정현(鄭玄)의 ‘육예론’(六藝論)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지금 세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예’는 대덕과 대성의 학(學)이다. 대덕은 기(記) 85편을 전하였으니 곧 대대례(大戴禮)이고, 대성은 예(禮) 49편을 전하였으니 곧 ‘예기’(禮記)이다.” 대대례기는 흩어져서 일부가 없어지고,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40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대대례기 중에서 49편을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 소대례기인지, 아니면 두 ‘예기’가 각각 별개로 편찬되어 전해졌는지 등은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다.
 정현은 주석하면서 원전을 존중하였는데, 그 자세로 말미암아 “예는 바로 정학(鄭學)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태종의 명을 받은 공영달(孔潁達)은 ‘오경정의’(오경정의)의 편수에 참여하였는데, 그는 정현의 주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정리를 하였고. 그 이후로 ‘예기’는 정현의 ‘주’와 공영달의 ‘소’가 존중되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명나라 호광(胡廣) 등이 칙명을 받아 찬집한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 30권이 널리 읽혀졌고 판각도 되었다. ‘예기’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알려지기로는, 중국의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이나 ‘주서’(周書) 등에 “서적으로 오경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수용되었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학자에 따른 주석은 고려 말에 권근(權近)의 연구 결실인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을 시작으로 조선시대에 많은 주석서가 간행되었다.   
 나는 가볍게 예기 전체를 일독한 후에, 다시 ‘악기’(樂記)를 살펴보았다. 이는 그대로 넘길 내용이 아닌 것 같았기에 정독으로 들어갔다.
 이 ‘악기’ 편은 음악의 이치와 뜻의 기록이다. 옛날에 ‘악경’이 있었다고 하지만,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으로서 음악의 뜻을 알려고 한다면 불가분 순자의 ‘악론편’과 이 편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순자’의 악론은 이 편 가운데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편을 악경의 유류로서 가장 완전하다고 한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시조’(時調)는, ‘예’(禮)와 ‘악’(樂)과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시조’에 있어서 ‘예’는 그 ‘형식’이고 ‘악’은 그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시에서는 ‘악’은 존재하지만 ‘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악기’를 한 구절 한 구절 짚어 나가며 ‘시조’와의 연관성을 밝혀 보기로 했다. 이는 곧, ‘고전 읽기’에서 ‘온고’(溫故)에 머물지 않고 ‘지신’(知新)으로 나가는 길이라고 여긴다. 여러 독자가 있기를 바란다.

                                                                                                        낙성대에서   
                                                                                                        녹시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