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악기론

제21절, '화'하는 때가 아니면(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3. 18. 07:39

제21절 ‘화’하는 때가 아니면
 
 化不時則不生 男女無辨則亂升 天地之情也(화불시칙불생 남녀무변칙란승 천지지정야). 

 ‘화’(化成)하는 때가 아니면 곧 나지 않는다. 남과 여의 구별이 없으면 곧 이룸이 어지러워짐은 하늘과 땅의 ‘정’(인정)이다. (녹시 역)

 ‘시조’의 경우- <‘시조 형식’에 음양 2기가 ‘화’(化=化成: 길러서 자라게 함.)하는 때가 아니면 곧 나지 않는다. 남과 여의 구별이 없으면 곧 이룸이 어지러워짐은 하늘과 땅의 ‘정’(인정)이다.>

[녹시 생각]
 여기에서는 ‘예’와 ‘악’의 득실(得失)이 천지(天地)와 서로 관련됨을 말하고 있다. 하늘은 위에 있어서 ‘양’(陽)이고 땅은 아래에 있어서 ‘음’(陰)인데, 하늘의 양의 기운은 ‘화성’하고 땅의 ‘음의 기운’은 ‘구별’짓는다. 시조에서도 마찬가지로 정형으로서의 시조 형식이 없으면 곧 이룸이 어지러워진다. 이는 곧 하늘과 땅의 ‘인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고전 ‘노자의 도경과 덕경’(제7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耶 故能成其私’(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부자생 고능장생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외기신이신존 비이기무사야 고능성기사).
 이는 <하늘은 멀고 땅은 오래 간다. 하늘과 땅이 잘 ‘멀고 오래 갈 수 있는 것’은 그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 오래 산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는 그 몸을 뒤로하여 몸이 앞서고 그 몸을 바깥으로 하여 몸이 살아남는다. 그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그 사사로움을 잘 이룬다.>
 천장지구! 이게 바로 ‘화’(化)를 나타내는 게 아닐까? 이로써 시조가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