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절 ‘악’이라는 것은 ‘정’의 바뀔 수 없는 것
樂也者情之不可變者也 禮也者理之不可易者也 樂統同禮辨異 禮樂之說管乎人情矣(악야자정지불가변자야 례야자리지불가역자야 악통동례변이 예악지설관호인정의).
‘악’(음악)이라는 것은 ‘정’(인정)의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예’(예절)라는 것은 ‘리’(이치)의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악’(음악)은 ‘동’(同: 사람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조화하는 것)을 거느려 다스리고(統) ‘예’(예절)는 ‘이’(귀천상하의 차이)를 나눈다. ‘예’(예절)과 ‘악’(음악)의 ‘설’(가르침. 이치와 도리)은 사람 ‘정’을 맡아 다스리는 것이다. (녹시 역)
‘시조’의 경우- <‘시조 내용’이라는 것은 ‘정’(인정)의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시조 형식’이라는 것은 ‘리’(이치)의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시조 내용’은 ‘동’(同: 사람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조화하는 것)을 거느려 다스리고(統) ‘시조 형식’은 ‘이’(자유시와의 차이)를 나눈다. ‘시조 형식’과 ‘시조 내용’의 ‘설’(가르침. 이치와 도리)은 사람 ‘정’을 맡아 다스리는 것이다.>
[녹시 생각]
시조를 알고 싶다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먼저 들려주어야 할지, 나는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다. 시조나 자유시나 모두 사색의 산물이기도 하고 삶의 발자취이기도 하며 지혜의 형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시조를 알고자 하거나 시조를 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시조를 제대로 아는 ‘안목’(眼目)을 키우라고 말한다. 그 ‘안목’이 비로 ‘지혜’이기도 한다. 그리고 ‘지혜’를 전하려고 하면 우선 두 사람이 ‘가까이 앉아야’ 한다.
먼 나라 인도에서는 기원전 1500년경에 아리아 민족이 인더스 강의 상류지방에 자리를 잡은 다음, 아리아 문화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자연을 섬겼으며, 그에 대한 시가집(詩歌集)인 ‘리그 베다’(Rig veda)를 지음으로써 베다 문학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푸른 물결이 힘차게 흘러오다가 베다 문명의 맨 마지막 단계에서 ‘우파니샤드’(Upanisad)가 생겨났다. 물론 이‘우파니샤드’는 개인의 철학이 아니다. 이게 만들어진 연대는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300년까지로 여겨진다. 당연히 종류도 아주 많아서 ‘우파니샤드’라는 이름이 붙은 문헌이 자그마치 200여 종이나 된다.
‘우파니샤드’에서 ‘우파’는 ‘가까이’, ‘니’는 ‘아래로’, 그리고 ‘샤드’는 ‘앉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파니샤드’는 ‘가깝게 아래로 내려앉는다.’라는 뜻이라고 보면 되겠다. 말하자면 ‘우파니샤드’는, 아무에게나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꼭 들려주어야 할 사람에게 ‘은밀히’ 전달하는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자격을 갖춘 스승과 자격을 갖춘 제자가 무릎이 맞닿도록 가까이 앉아서 아주 비밀스럽게 전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시조를 대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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