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절 ‘본’을 다하고 ‘변’을 아는 것
窮本知變 樂之情也 著誠去僞 禮之經也 禮樂偩天地之情 達神明之德 降興上下之神 而凝是精粗之體 領父子君臣之節(궁본지변 악지정야 저성거위 례지경야 례악부천지지정 달신명지덕 강흥상하지신 이응시정조지체 령부자군신지절).
‘본’(본심)을 다하고 ‘변’(악을 바꿔서 선이 되는 것)을 아는 것은 ‘악’(음악)의 ‘정’(인정)이다. ‘참됨’을 나타내고 ‘거짓’을 버리는 것은 ‘예’(예절)의 ‘경’(經: 常, 常法)이다. ‘예악’이 하늘과 땅의 ‘정’을 의지하여 본떠서 ‘신명’(천지의 신)의 베풂에 통달한다. 위와 아래의 ‘신’을 내리고(降) 나오게(興: 나온다는 뜻) 해서 ‘정조’(만물: 정대한 것도 있고 조소한 것도 있으므로)의 몸을 바르게(是) 길러내고(應) ‘아버지와 아들’이나 ‘임금과 신하’의 구별(節)을 거느려 다스린다(領). (녹시 역)
‘시조’의 경우- <‘본’(본심)을 다하고 ‘변’(악함을 바꿔서 선함이 되는 것)을 아는 것은 ‘시조 내용’의 ‘정’(인정)이다. ‘참됨’을 나타내고 ‘거짓’을 버리는 것은 ‘시조 형식’)의 ‘경’(經: 常, 常法)이다. ‘시조 형식과 시조 내용’이 하늘과 땅의 ‘정’을 의지하여 본떠서 ‘신명’(천지의 주재자)의 베풂에 통달한다. 위와 아래의 ‘주재자’를 내리고(降) 나오게(興: 나온다는 뜻) 해서 ‘정조’(만물: 정대한 것도 있고 조소한 것도 있으므로)의 몸을 바르게(是) 길러내고(應) ‘아버지와 아들’이나 ‘나라와 고을’의 구별(節)을 거느려 다스린다(領).>
[녹시 생각]
시조 내용에서 ‘착함’을 지님은 ‘등불’을 켬과 같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옛 인도 ‘사밧티’(Savatthi)에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밥을 빌어서 겨우 목숨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걷고 있자니까, 온 성안이 떠들썩했다. 그녀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나라의 파세다니 왕이 석 달 동안 싯다르타와 그 벗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오늘 밤에는 수만 개의 등불을 밝혀서 그들을 위로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여인은 생각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어떻게 할까? 나도 그분에게 한 개의 등불이라도 켜서 그분을 위로해야 하겠다.’
그 여인은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여 동전 두 닢을 마련한 후에 기름집으로 향했다. 기름집 주인이 그녀에게 기름을 사서 무엇에 쓸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그분은 깨달음을 얻으셨으며 많은 가르침을 여러 사람에게 베푸시고 계신다는 걸 알고 있지요. 그런 분을 만나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 그분을 뵙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나는 그분께 등불이라도 하나 켜서 바칠 생각입니다.”
그 여인의 말에 감동한 가겟집 주인은 기름을 갑절이나 주었다. 그 여인은 그렇게 산 기름으로 불을 켜서 길목에 걸어 두었다. 싯다르타는 길을 걷다가 그 등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등불이 유난히 밝은 이유는, 가난하지만 마음이 착한 한 여인의 크고 넓은 정성으로 켜진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전하여 들은 파세다니 왕은,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싯다르타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이시여, 저는 석 달 동안이나 선생님과 수행자에게 큰 보시를 하고 수만 개의 등불을 컸습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싯다르타는 잔잔하지만 엄숙하게 파세다니 왕을 향하여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웃에게 여러 가지로 베풀고 좋은 친구에게 많이 배우며 스스로 겸손하여 남을 존경해야 합니다. 자신이 쌓은 공덕을 자랑하거나 내세워서는 절대안 됩니다.”
왕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또 고전 ‘맹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맹자 말했다. “남을 복종시키려는 사심에서 착함을 행하는 사람치고 남을 복종시킨 사람이 있지 않다. 이에 반해서 아무런 사심도 없이 스스로 착함을 행하여 남을 고양시켜 주는 사람이어야만 비로소 천하 사람을 복종시킬 수가 있다. 이를 ‘심복’(心服)이라고 하는데 천하 사람이 심복하지 않고 왕 노릇한 사람은 있지 않다.”
이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孟子曰 以善服人者 未有能服人者也 以善養人然後 能服天下 天下 不心服而王者 未之有也’( 맹자왈 이선복인자 미유능복인자야 이선양인연후 능복천하 천하 불심복이왕자 미지유야) [이루 장구 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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