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절 무릇 ‘음’이라는 것은 ‘성’이라는 것을 본뜨는 것
子曰 居吾語汝 夫樂者 象成者也 總干而山立 武王之事也 發揚蹈厲 太公之志也 武亂皆坐 周召之治也(자왈 거오어여 부악자 상성자야 총간이산립 무왕지사야 발양도려 태공지지야 무란개좌 주소지치야)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하겠다. 무릇 ‘음’(음악)이라는 것은 ‘성’(성공)이라는 것을 본뜨는 것이다. 춤추는 자가 모두 방패를 손에 쥐고(총간) 산처럼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산립)은 무왕의 일이다. 떨치며 일어나서 사납게 밟는 것은 태공의 뜻이다. ‘무’(무악)가 마지막에 모두 (춤추는 자가) 꿇어앉는 것은 주공(이름 旦)과 소공(이름 奭)의 다스림(문치)이다.” (녹시 역)
‘시조’의 경우- <스승이 말씀하셨다.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하겠다. 무릇 ‘시조 내용’이라는 것은 ‘성’(성공)이라는 것을 본뜨는 것이다. 휘청거리는 멋이 모두 쉼표 등을 찍고 산처럼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산립)은 ‘씩씩한 작가’의 일이다. 떨치며 일어나서 사납게 밟는 것은 옛 작가의 뜻이다. ‘씩씩한 시조 내용’이 마지막에 모두 꿇어앉는 것은 선비와 학자의 다스림(베푸는 마음)이다.”>
[녹시 생각]
이 절에서 강조점은 <대무 춤의 마지막에서 춤추는 자가 모두 꿇어앉는 것은 ‘주공’과 ‘소공’이 문덕(文德)의 다스림으로써 ‘무’(武)를 멈추게 한 것에 본뜸>일 성싶다. 시조에서도 ‘씩씩한 시조 내용’을 멈추게 한 것은 ‘여유’와 ‘재치’가 아닐까 한다. 그러면 넉넉한 멋이 깃든 고시조 몇 수를 본다.
초당에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워
태평성대를 꿈에나 보려 하니
문전에 수성어적이 잠든 나를 깨와라.
이는, 유성원(柳誠源)의 작품이다. 유성원은 조선 전기의 문장가이며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1456년에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자(字)는 ‘태초’(太初)이고 호(號)는 ‘낭간’(琅玕)이라고 한다. 144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저작랑(集賢殿著作郞)으로 있었고 1447년 문과 중시에 합격했다. 1456년 성삼문 등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탄로가 나자 자살하였다. 시조 한 수가 ‘가곡원류’(歌曲源流)에 전한다.
오늘은 천렵하고 내일은 산행 가세
꽃 다림 모레 하고 강신으란 글피 하리
그글피 편사회할 제 각지호과/하시소.
이는, 김유기(金裕器)의 작품이다. 김유기는 조선조 숙종 때의 명창(名唱)이자 가객(歌客)이다. 태어난 해와 이 세상을 떠난 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기록을 보면 1717년경에 타계한 것으로 보인다. 자(字)는 ‘대재’(大哉)라고 하며 남원 출생이라고 한다. ‘마음속의 정경(情境)을 말로 모두 하였으며 음률이 고루 조화가 되었다.’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시조 작가라기보다는 당대의 명창으로 이름을 떨친 예술인이라고 전한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이는, 이정(李婷 1454~ 1488)의 작품이다. 이정은 조선조 제9대 왕인 성종(成宗)의 형이다. 즉, 월산대군(月山大君)이다. 자(字)는 ‘자미’(子美)이고 호(號)는 ‘풍월정’(風月亭)이라고 한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7세 때인 1471년 월산대군으로 봉해졌다. 그는 권신들의 농간으로 왕위계승에서 밀려난 후에 양화도 북쪽에 망원정(望遠亭)을 짓고 은둔하며 풍류를 즐겼는데, 어머니인 인수왕후의 병을 간호하다가 35세에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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