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악기론

제64절, 3노5경을 대학에서 길렀다(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4. 1. 12:32

제64절 3노5경을 대학에서 길렀다

 食三老五更於大學 天子袒而割牲 執醬而饋 執爵而酳 冕而總干 所以敎諸侯之弟也(식삼노오경어대학 천자단이할생 집장이궤 집작이윤 면이총간 소이교제후지제야). 

 3노5경(문왕세자편 제5장제2절)을 대학에서 길렀다.(食: ‘養’과 같은 뜻. 밥을 주로 하는 향례인 ‘식례’로서 기르므로 ‘食’ 자를 사용했다고 함) 천자가 웃통을 벗어서 어깨를 드러내고(袒) 제사에 쓰일 짐승의 고기를 베며 장을 처리하여 공궤하고 술잔을 집어서 시동에게 드리며 대부 이상이 쓰는 관을 쓰고 간척(방패와 도끼)을 손에 쥐고 춤을 추었으니 까닭은 제후의 공경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녹시 역)

 ‘시조’의 경우- <‘3장6구12음보’를 학교에서 길렀다. 하늘이 맑게 개어서 본바탕을 드러내고(袒) 노래에 쓰일 소재를 다듬어서 늘어놓으며 ‘운’(韻)을 집어서 ‘대신 내세우는 이’에게 주고, 비운 가슴으로 여러 기호를 사용하여 ‘휘청거리는 멋’을 따랐으니 까닭은 먼동의 공경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녹시 생각]
 이 절에서는 ‘운’(韻)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唐詩)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바로 이 ‘운’(韻)이다. 예컨대 이태백이 지은 근체시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라는 작품을 본다. 

朝辭白帝彩雲間(조사백제채운간)  아침에 고운 구름 사이 백제성을 떠나서
千里江陵一日還(천리강릉일일환)  천리 떨어진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
兩岸猿聲啼不住(양안원성제부주)  양쪽 언덕 처절한 원숭이 울음 이어지고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날쌘 배는 어느덧 첩첩한 만산을 지나네.

 이 당시에서 1행의 끝 글자는 ‘간’(間)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제2행과 제4행의 마지막 글자는 ‘환’(還)과 ‘산’(山)으로 되어 있다. 이 셋은 모두 같은 ‘운’(韻)에 속한다. 이렇게 ‘운’이 맞는 것을 ‘협’(叶)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시조에서 ‘운’(韻)을 밟을 수는 없을까?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히려 시조에서는 3장의 마지막 음절에 멋지게 ‘운’(운)을 넣을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말과 글이 뛰어나다는 뜻도 된다. 그러면 내 시조 ‘동학사에서’ 한 편을 소개하여 그 ‘운’(韻)을 밝혀 보겠다.

골짜기 가린 숲에 머문 새는 멀어지고
꿈결에 뒤척이면 솔 냄새가 이는 바람
천수경 외는 소리만 기둥 위로 감긴다.

어둠을 밝혀 가는 믿음이 곧 하늘이라
구름은 문을 열어 저승까지 환한 달빛
관세음 젖은 눈길이 고운 미소 남긴다.

그림자 끌던 탑이 별자리에 앉고 나면
버려서 얻은 뜻은 산 마음을 따라가고
숙모전 가려운 뜰도 물빛 품에 안긴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각 수의 종장 끝 음보이다. ‘잠긴다.’와 ‘남긴다.’와 ‘안긴다.’로 되어 있다. 모두가 ‘-ㄴ다.’를 지니고 있다. 이 또한 모두가 같은 ‘운’(韻)이다. 이렇듯 ‘운’을 맞추려면 남다르게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노력만 한다면 시조에서 ‘멋진 운’을 얻을 수 있다. 어디에서든 불가능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