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절 황하를 건너서 은 나라 서쪽으로
濟河而西 馬散之華山之陽而弗復乘 牛散之桃林之野而弗復服 車甲釁而藏之府庫而弗復用 倒載干戈 包之以虎皮 將帥之士使爲諸侯 名之曰建櫜 然後 天下知武王之不復用兵也(제하이서 마산지화산지양이불복승 우산지도림지야이불복복 거갑흔이장지부고이불복용 도재간과 포지이호피 장수지사사위제후 명지왈건고 연후 천하지무왕지불복용병야).
황하를 건너서 은 나라 서쪽(‘호경’)으로 돌아오자 말을 ‘화산’의 햇볕이 잘 드는 언덕(陽)에 놓아주어서 다시 타지 않았다. 소는 복숭아나무 숲에 놓아주어서 다시 잡지 않았다. 병거와 갑옷은 피를 발라서 부고에 감추고 나서 다시 쓰지 않았다. 방패와 창은 (칼날이 뒤로 가게) 거꾸로 싣고 이를 호랑이 가죽으로 쌌다. 장수를 제후로 삼아서 그 공로에 상을 주었는데, 이를 이름 붙여서 ‘건고’(‘건’은 열쇠. ‘고’는 병기를 싸는 도구. 병기를 포장하여 부고에 집어넣고 열괴를 잠가 두고 열지 않는 것. 전쟁하지 않을 의사 표현)라고 일컬었다. 그런 다음에야 온 세상이 무왕의 다시 용병하지 않음을 알았다. (녹시 역)
‘시조’의 경우- <흐름을 건너서 옛 나라 서쪽으로 돌아오자 ‘관념어’를 ‘높은 산’의 햇볕이 잘 드는 언덕(陽)에 놓아주어서 다시 쓰지 않았다. ‘한자어’는 복숭아나무 숲에 놓아주어서 다시 잡지 않았다. ‘지나친 파격’은 피를 발라서 부고에 감추고 나서 다시 쓰지 않았다. ‘설명적 진술’은 거꾸로 싣고 이를 호랑이 가죽으로 쌌다. ‘씩씩함’을 ‘먼동’으로 삼아서 그 공로를 칭송했는데, 이를 이름 붙여서 ‘소통’이라고 일컬었다. 그런 다음에야 온 세상이 ‘씩씩한 시조 작가’가 다시 나서지 않음을 알았다.>
[녹시 생각]
이 절은 ‘무왕’이 전쟁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음을 설명하고 있다. 시조도 그동안 ‘파격’(破格)을 두고 다툼이 있었다. 이제는 다툼을 끝내야 한다. ‘지나친 파격’만 아니라면 ‘인정’을 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또한, 더욱 ‘기본 율격’으로 다가가는 것도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 이게 말하자면 ‘소통’이 아닐까 한다. 시조도 시와 마찬가지로,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꼭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법도 없다. 그래서 나는 ‘가지런한 시조’를 짓기로 했다. ‘가지런한 시조’란, 기본형을 지키며 띄어쓰기를 정확히 해서 3장의 길이가 같게 지은 시조 작품을 말한다. 이를 따라서 할 필요는 없다. 이는 하나의 ‘개성’이라고 여기면 된다. 내 ‘가지런한 시조’ 한 편을 소개한다. 이 작품 제목은 ‘묵혀 놓은 가을엽서’이다.
하늘이 몸을 빼니 그 물빛은 한결 짙고
간 길이 너무 멀면 귀를 먹게 된다지만
이 밤도 지친 발걸음 질척이는 임 기척.
타다가 지고 마는 꼭 단풍잎 아픔 따라
떨칠 수 끝내 없는 아쉬움이 앞을 막고
아직껏 띄우지 못한 빛이 바랜 내 소식.
고요를 깬 바람이 보름 달빛 감고 울면
외로운 가슴에다 녹차 두 잔 따라 놓고
긴 어둠 휘젓고 있는 그대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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