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조

낙성대에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4. 1. 30. 06:13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낙성대에서

 

                                              김 재 황

 

시인이 되려는 꿈 차마 버릴 수 없기에

십년이나 살던 섬을 훌훌 털고 떠나자니

가슴속 차는 시름이 파도처럼 철썩거리데.

 

하필 이 자리인가 넓고 넓은 세상에서

천릿길이 서운해도 아내는 봇짐을 풀며

무겁게 남쪽을 누르는 관악산을 바라보았지.

 

멀리 친구를 두고 온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문창성 떨어진 곳, 탑을 찾아 올라가니

고려의 파란 하늘에 서귀포가 출렁거리데.

 

 

(시작 노트)

 

  1986, 나는 그 곳의 농장을 팔기로 하고, 온 가족을 이끌고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관악산 밑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낙성대(落星垈)가 있다. 낙성대는 고려의 명장인 강감찬(姜邯瓚)이 출생한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3대인 정종 3(948)에 하늘에서 문창성(文昌星)이 이 곳으로 떨어지며 강감찬 장군이 태어났다고 한다. 강감찬의 어릴 적 이름은 은천’(殷川)이고, 본은 지금의 시흥인 금주’(衿州)였다. 그의 5대조 할아버지인 여청(餘淸)이 신라에서 경기도 시흥으로 이주해 와 살았고, 아버지인 궁진(弓珍)은 태조를 섬겨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의 명예를 얻었다.

  강감찬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고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는 재물에 욕심이 없었다. 그는 체격이 적고 얼굴도 잘생기지 못하였지만, 일을 처리할 때는 위엄과 수완이 출중했다고 전한다. 그는, 고려의 현종 9년에 거란의 장수 소배압이 이끄는 10만 침략군을 흥화진(興化鎭)에서 대패시켰고, 현종 10년에는 회군하는 적군을 귀주에서 크게 무찔렀다. 그 후, 그가 나이 84세로 세상을 떠나자, 임금은 그에게 인헌’(仁憲)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그 인연으로 우리 동네에는 인헌중학교와 인헌고등학교가 있다. 또 마을 주민들이 동() 이름을 인헌으로 바꿔 달라고 진정을 올렸지만, 어쩐 일인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나는 이 곳에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시조 공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