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고택
김 재 황
간밤에 함박눈이 살금살금 내리더니
반듯한 마당에는 하얀 이불 덮이었다
임의 꿈 짐짓 일어나 하품하는 이른 아침.
세월을 따라가다 잠깐 쉬는 겨울바람
높직한 솟을대문 기왓장을 깔고앉아
먼 하늘 뒹굴며 오는 임의 붓끝 바라본다.
반가운 손님 맞아 버선발로 달려 나온
그 마음 아른아른 격자창에 내비칠 듯
남향한 임의 사랑채에 옛 숨소리 가빠 온다.
(시작
노트)
‘추사고택’(秋史故宅)은,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다. 높지 않은 야산에 자리잡은 이 고택은, 전형적인 명문대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 추사고택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은 영조대왕의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임금의 사위가 되었다. 그는 그에 따른 별양전으로 용궁리 일대의 토지를 하사받았다. 그 때 지은 월성위(月城尉) 김한신의 집이 현재의 추사고택이다.
추사가 태어날 당시에 그의 부모는 이 고택에 살지 않고 서울의 장동에서 살았다. 그런데 서울에 천연두가 유행하여 그의 모친이 예산으로 내려와서 추사를 낳았다고 전한다.
추사고택은 그 당시의 충청도 53개 고을에서 한 칸씩 책임을 맡아서 53칸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집안의 구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고, 그 뒤로 돌아가면 안채가 나온다. 안채가 네모진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ㅁ자(字)형이다. 대청과 안방, 건넌방, 부엌, 문간, 헛간, 청지기방 등이 연이어 있다.
사랑채는 ㄱ자(字)형으로 안채와는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두 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연결되어 있다. 이 곳을 중심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비롯해서 손님접대 등의 사회활동이 이루어졌다. 바로 뒷산의 산자락에 추사 선생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