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머니는/ 김 재 황 이 세상 어머니는 김 재 황 깊어서 푸른 정을 아낌없이 쏟아 주고 마른 논 실금같이 가뭄으로 트던 가슴 동산에 보름달 뜨면 그 물소리 들립니다. 벌겋게 끓는 정을 남김없이 던져 넣고 빚은 쇠 울음처럼 아픔으로 떨던 가슴 마당에 함박눈 오면 그 종소리 들립니다. (2004년) 동시조 2022.09.21
초등학교 그 친구/ 김 재 황 초등학교 그 친구 김 재 황 빛바랜 사진첩에 어린 티로 머문 친구 머리는 빡빡 깎고, 검은 교복 맞춰 입고 그리운 그 모습대로 의젓하게 앉아 있다. 지금은 손자 두고 주름살도 깊을 친구 공부는 키를 재고, 싫은 청소 서로 돕고 아직도 그 이름 석 자 생생하게 외고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정이 가득 담긴 친구 눈빛은 아주 맑고, 고운 입술 굳게 닫고 잘생긴 그 얼굴대로 따뜻하게 웃고 있다. (2004년) 동시조 2022.09.20
교회에 온 꼬마/ 김 재 황 교회에 온 꼬마 김 재 황 분명히 그분께선 환한 웃음 띠시겠죠 세 살인 꼬맹이가 엄마 손을 잡고 와서 예배당 낯선 자리를 구경하고 있으니. 다 낡은 피아노와 낮게 걸린 저 십자가 가난한 이들에게 큰 사랑을 전하는 것 그 모두 손도장 찍고 꼬마 홀로 신나죠. 저 사는 안방처럼 뛰어노는 개구쟁이 어른들은 안아다가 무릎 위에 앉히는데 그분이 계셨더라도 그리하실 터이죠. (2004년) 동시조 2022.09.20
다시 보는 운동회/ 김 재 황 다시 보는 운동회 김 재 황 바람과 손을 잡고 여러 깃발 펄럭인다, ‘나가자 씩씩하게’ 소리 높여 노래하면 하늘도 푸른 마음에 깃털 구름 내보인다. 달리는 아이보다 더욱 빠른 목소리들 있는 힘 다할 때면 손뼉 소리 일어난다, 뛰니까 배가 꺼져서 꿀맛 같은 도시락. 당당히 겨뤘으니 서로 등을 두드리고 모두가 일등이라 호루라기 크게 분다, 다 함께 날린 비둘기 밝은 앞날 그린다. (2004년) 동시조 2022.09.20
개울가에서/ 김 재 황 개울가에서 김 재 황 조약돌 골라 딛고 종다리가 울음 널면 쓸리는 물풀 사이 놀라 숨는 붕어 떼들 휘파람 앉아 불어도 물줄기는 흘러간다. 무더위 벌써 와서 가마솥이 펄펄 끓고 벌거숭이 아이들이 방개 무리 닮아 간다, 원두막 잠기는 졸음 깨워 흔든 소나기. 징검돌 툭툭 치며 가랑잎이 길 떠나면 웅덩이 파인 자리 저 날라리 고이는 꿈 낮달은 눈썹 다듬고 물거울만 바라본다. (2004년) 동시조 2022.09.20
나는 냇물/ 김 재 황 나는 냇물 김 재 황 물이 자꾸 흐르듯이 더 나이를 먹게 되니 엄마가 강물이면 할머니는 바다겠지, 도대체 나는 어딜까? 노래하는 졸졸 냇물! (2004년) 동시조 2022.09.20
키를 재신다/ 김 재 황 키를 재신다 김 재 황 벽 앞에 세워 놓고 내 키를 또 재신다, 내가 살짝 발 돋우면 “밤사이에 많이 컸네!” 엄마는 내가 자라서 무얼 하기 바라실까? (2004년) 동시조 2022.09.20
아빠와 팔씨름/ 김 재 황 아빠와 팔씨름 김 재 황 오늘은 아빠께서 팔씨름을 바라시니 단단히 마음먹고 힘을 끙끙 써 보지만, 아빠는 “더! 더!” 하실 뿐, 꿈쩍도 안 하신다. (2004년) 동시조 2022.09.20
옥수수밭에서 놀다/ 김 재 황 옥수수밭에서 놀다 김 재 황 파랗게 싹이 돋아 쑥쑥 키가 자라나면 날마다 달려가서 누가 큰지 재어 본다, 이제는 안 되겠구나, 너는 정말 키다리. 시원히 비가 내려 암수 꽃이 피어나면 아이들 몰려가서 술래 찾기 풀며 논다, 도무지 못 찾겠구나, 너는 꽁꽁 까투리. 점잖게 바람 와서 열매 수염 흔들리면 살며시 다가가서 어른 흉내 내어 본다, 오늘은 참 멋지구나, 너는 나를 모르리. (2004년) 동시조 2022.09.20
송아지가 맞는 봄/ 김 재 황 송아지가 맞는 봄 김 재 황 어미 소 따라가는 송아지가 겅중겅중 겨울 주춤 물러서고 새봄 성큼 다가온다, 송아지 달려간 길에 보리 싹이 파릇파릇. 어미 소 지나치는 송아지도 끔벅끔벅 구름 듬뿍 몰려들고 봄비 함빡 쏟아진다, 송아지 바라본 내에 버들개지 토실토실. (2004년) 동시조 202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