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놀이터에서/ 김 재 황 어린이 놀이터에서 김 재 황 아직은 꽃샘추위 가지 않은 이 봄인데 조급한 아이들이 바람 안는 그네뛰기 늘어진 개나리 가지 노란 웃음 붙는다. 커다란 버즘나무 조금 뒤로 물러서고 하늘이 뚫어져라, 공을 차는 저 아이들 환하게 열린 앞이마 얼룩 땀도 구른다. 몸보다 마음 먼저 미끄럼틀 오르는데 정글짐 그 아래로 짧은 낮이 내려오고 아이들 떠드는 소리 멍멍 개도 짖는다. (2004년) 동시조 2022.09.19
낙성대의 봄/ 김 재 황 낙성대의 봄 김 재 황 보슬비 내리는 날, 관악산 북쪽 기슭 빛나는 이름 하나 뜨거운 뜻 풀고 있다, 그렇듯 진달래 닮은 마음보를 풀고 있다. 새아침 밝히던 별, 땅으로 내린 자리 돌기둥 우뚝 솟아 올바른 삶 펴고 있다, 그렇듯 대나무 닮은 가슴살을 펴고 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9
겨울밤 그 목소리/ 김 재 황 겨울밤 그 목소리 김 재 황 깊어 가는 겨울밤에 어둠 여는 그 골목길 언 목소리 길게 빼는 “메밀묵 사- 메밀무욱.” 그 숨결 지친 걸음이 그림자를 끌고 간다. 가늘고 긴 겨울밤에 고요 닫는 그 골목길 흰 목도리 짧게 매고 “찹쌀떡 사- 찹쌀떠억.” 그 숨결 높은 걸음이 보름달을 밀고 간다. (2004년) 동시조 2022.09.19
조기 파는 아저씨/ 김 재 황 조기 파는 아저씨 김 재 황 일 톤짜리 고물차를 골목길에 세워놓고 “눈 떴다 방금 감은, 조기요! 조기 사요!” 멀쩡한 거짓말에도 왜 모두가 반길까? (2004년) 동시조 2022.09.19
밀가루 반죽/ 김 재 황 밀가루 반죽 김 재 황 잘한다, 참 잘한다, 추어주면 더 잘하니 아이는 신이 나서 더욱 힘껏 주무르고 마침내 밀가루 반죽 토실토실 살이 찐다. (2004년) 동시조 2022.09.19
본 적 있니?/ 김 재 황 본 적 있니? 김 재 황 손으로 입을 가린 백목련을 본 적 있니? 봄바람이 살랑살랑 간질이는 겨드랑이 참다가 못내 터뜨린 그 웃음꽃 본 적 있니? (2004년) 동시조 2022.09.19
집 없는 비둘기/ 김 재 황 집 없는 비둘기 김 재 황 간밤에 함박눈이 살금살금 내렸어도 웅크린 가슴들은 놀라 깨어 깃을 털고 쫓기는 네 발자국엔 발가락이 모자란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는 검은 숨결 갈 길은 이리저리 빛을 찾아 뚫렸는데 어째서 자리 박차고 높이 날지 못하느냐. 비릿한 강바람이 마음을 쓸고 간 뒤 앉았던 빈 가지에 꿈 한 자락 걸었건만 머물 곳 없는 목숨이 하늘빛에 떨고 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9
그분의 개구리/ 김 재 황 그분의 개구리 김 재 황 알에서 깨어나면 저 하늘과 닿은 물속 꼬리로 춤을 추고 아가미로 숨을 쉬니 따뜻한 사랑이구나, 올챙이가 노는 모습. 뒷다리 자란 다음, 그 앞다리 돋아나며 기다란 꼬리 또한 할 일 없어 줄어드니 크나큰 뜻이로구나, 개구리로 되는 모습. 물 밖을 살펴보면 하얀 달빛 내린 풀밭 허파마저 생겨나고 물갈퀴도 얻었으니 높다란 기쁨이구나, 뭍과 물에 사는 모습. (2004년) 동시조 2022.09.19
바다로 가는 장수거북/ 김 재 황 바다로 가는 장수거북 김 재 황 큼직한 몸뚱이에 목숨까지 길고 긴데 마음은 너그럽고 싸울 줄도 모르건만 서둘러 넓은 바다로 떠나려고 합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8
벼랑의 수리부엉이/ 김 재 황 벼랑의 수리부엉이 김 재 황 낮에는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일을 잡죠, 달빛과 가까워진 그 가난한 눈과 귀여 벼랑에 둥지 틀고도 저 하늘을 안습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