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이 따라와서/ 김 재 황 할미꽃이 따라와서 김 재 황 할머니 계신 무덤 핀 할미꽃 그 한 포기 집에까지 따라와서 나를 보고 웃습니다, 내 머리 쓰다듬을 듯 주름진 손 내밉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8
호박줄기/ 김 재 황 호박 줄기 김 재 황 담 위로 기어오른 힘이 좋은 호박 줄기 산바람 휘어잡아 꽹과리를 치고 있다, 한바탕 더위를 쫓아 더운 꽃을 들고 있다. 땅 위를 걸어가는 보기 좋은 호박 줄기 강바람 모여들게 돗자리를 펴고 있다, 옛 얘기 담아서 꾸릴 넓은 잎을 펴고 있다. 지붕 위에 올라앉은 마음 편한 호박 줄기 신바람 데려다가 가마솥을 걸고 있다, 누구든 입맛에 맞게 익은 열매 달고 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8
바닷가 갯메꽃/ 김 재 황 바닷가 갯메꽃 김 재 황 눈부신 모래밭에 땅속줄기 길게 뻗고 파도 소리 자장가로 가물가물 꿈길 간다, 끝없이 씻고 또 씻어 둥글게 된 그 잎들. 뜨거운 모랫길을 땅위줄기 낮게 기어 나팔 소리 앞장서서 한들한들 꽃잎 든다, 땀나게 참고 또 참아 둥글게 된 그 열매. (2004년) 동시조 2022.09.18
앙증맞은 애기나리/ 김 재 황 앙증맞은 애기나리 김 재 황 바람이 다독거려 자장가를 부른 봄날 은빛 금빛 피어나는 잠투정을 입에 물고 귀여운 애기나리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초록빛 턱받이에 흘린 햇살 떨어지면 젖내 풍긴 그 꿈길을 기어가는 아기 몸짓 깜찍한 꽃송이들이 방긋방긋 웃고 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8
백목련 피고 지던 날에/ 김 재 황 백목련 피고 지던 날에 김 재 황 찾아온 봄바람이 빈 가지를 흔들 때면 내 마음에 다시 뜨는 꽃길 떠난 누나 얼굴 감춰도 번져 나오던 그 눈물을 봅니다. 한밤에 밖에 나와 등불 나무 곁에 서면 그 가슴에 가득 안은 내 눈 시린 누나 봄꿈 상그레 하얀 웃음이 달빛 물고 핍니다. 추위는 아직 남아 휘파람을 날리지만 가다 서서 돌아보는 눈에 선한 누나 모습 말없이 슬픈 꽃잎은 손 흔들며 집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8
눈감은 겨울나무/ 김 재 황 눈감은 겨울나무 김 재 황 옷 벗은 나무들이 눈을 감고 섰습니다, 망나니를 닮은 바람 벼린 칼로 넋을 빼도 오로지 하늘을 향해 마음 열고 있습니다. 더 오래 나무들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온 땅 고루 쓰다듬듯 내려 덮인 하양 이불 나무는 하늘 사랑에 추울 리가 없습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8
앞뜰 치자나무/ 김 재 황 앞뜰 치자나무 김 재 황 치자나무 잎사귀는 왜 그토록 늘 푸를까, 남쪽 바다 물결 소리 듣고 살아 푸른 걸까, 겨우내 동박새 노래 듣고 사니 그런 걸까. 치자나무 꽃부리는 어찌 그리 새하얄까, 남쪽 하늘 구름 뿌리 잡고 피어 그런 걸까, 여름내 흰 사슴 숨결 품고 사니 그런 걸까. (2004년) 동시조 2022.09.17
비파나무 열매는/ 김 재 황 비파나무 열매는 김 재 황 바람에 딸랑딸랑 금방울을 흔든 소리 울 아기 방긋방긋 웃음 짓게 하는 소리 더위도 발을 멈추고 귀 기울여 듣고 있네. 입에서 새큼새큼 목마름이 풀리는 맛 울 엄마 알쏭달쏭 눈이 절로 감기는 맛 누군가 턱을 고이고 침 흘리며 보고 있네. (2004년) 동시조 2022.09.17
나이 많은 느티나무/ 김 재 황 나이 많은 느티나무 김 재 황 시골 마을 큰 길 앞에 나이 많은 느티나무 언제나 하늘 보며 머나먼 길 걷고 있다, 솜구름 그 등에 업고 오랜 길을 가고 있다. 산골 마을 큰 산 아래 나이 많은 느티나무 아직도 강을 따라 기나긴 꿈 잠겨 있다, 산바람 그 손을 잡고 옅은 꿈에 들고 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7
화살나무는/ 김 재 황 화살나무는 김 재 황 시위를 안 당겼어도 바람 소리 묻어 있고 가슴에 안 꽂혔어도 핏빛 아픔 젖고 있다, 그 목숨 여위는 가을 자꾸 하늘 기울고. 부리를 안 지녔어도 구름자락 마구 쪼고 발톱을 안 다듬고도 물빛 슬픔 잡고 있다, 그 숨결 힘껏 날아서 울먹이듯 깃 떨고. (2004년) 동시조 202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