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꽃나무의 봄/ 김 재 황 함박꽃나무의 봄 김 재 황 겨우내 눈을 감고 무슨 알을 품었는지 봄이 오자 빈 가지에 하얀 깃인 어린 새들 저마다 배고프다고 입을 쩍쩍 벌립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7
빈 처마 밑/ 김 재 황 빈 처마 밑 김 재 황 초가집 처마 밑이 설렁하게 열려 있다, 삼짇날이 지났어도 조용하게 비어 있다, 제비는 아직 안 오고 봄바람만 쉬고 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7
그 아이 그 노래/ 김 재 황 그 아이 그 노래 김 재 황 북쪽 애가 들려주는 뚝배기 맛 노래인가, 걸쭉한 목소리에 가락 또한 구성진데 그 모두 타임머신을 옛집으로 타고 간다. (2004년) 동시조 2022.09.17
한여름 원두막에/ 김 재 황 한여름 원두막에 김 재 황 산에서 산바람이 찾아와서 놀고 있다, 햇살 손이 토닥토닥 먹기 좋게 익은 참외 가까이 내려앉아서 그 냄새를 맡고 있다. 강에서 강바람이 올라와서 쉬고 있다, 고운 빗발 주룩주룩 보기 좋게 여문 수박 멀찍이 올라앉아서 그 무늬를 찾고 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7
옛날 그 거북선은/ 김 재 황 옛날 그 거북선은 김 재 황 옛 바다 그 싸움터 앞장서서 달려갔고 물러서고 나아갈 때 용머리는 들락댔네, 입에서 불을 뿜으면 그 얼마나 놀랐을까. 싸움 건 섬나라 배 치받아도 끄떡없고 뛰어들지 못하도록 등에 쇠못 박았는데 함부로 덤비고 나서 그 얼마나 겁났을까. (2004년) 동시조 2022.09.16
추석날 밤하늘엔/ 김 재 황 추석날 밤하늘엔 김 재 황 수많은 별자리가 들꽃들을 피워낸다, 초롱꽃 애기나리 은방울꽃 구슬붕이 저마다 고운 빛으로 눈웃음을 짓는다. 희멀건 보름달이 얼굴들을 그려낸다, 할머니 할아버지 큰어머니 큰아버지 그리움 넓은 가슴에 내 마음이 안긴다. 낯익은 이름들이 친구들을 불러낸다, 얌전이 개구쟁이 새침데기 말괄량이 모두가 동산에 올라 불꽃놀이 즐긴다. (2004년) 동시조 2022.09.16
쉬지 않는 물레방아/ 김 재 황 쉬지 않는 물레방아 김 재 황 산골 물 가득 안고 돌아가는 물레 소리 얼마나 힘이 들까, 하루 내내 빙글빙글 쏟아 낸 물소리마저 언덕길을 돌아온다. 말린 벼 담아 놓고 내려치는 공이 소리 저토록 일만 할까, 하루 내내 쿵덕쿵덕 찧어 낸 신바람마저 고갯길을 내닫는다. (2004년) 동시조 2022.09.16
우리 남대문/ 김 재 황 우리 남대문 김 재 황 서울역 닿고 나서 제일 먼저 만나는 문 그래서 그런 건지 우리나라 첫째 국보 점잖게 입을 다문 채 손님들을 맞고 있네. 이 서울 그 남쪽에 가장 크게 내세운 문 그래서 그런 건지 숭례문이 진짜 이름 의젓이 눈을 감은 채 하늘소리 듣고 있네. (2004년) 동시조 2022.09.16
토끼섬 이야기/ 김 재 황 토끼섬 이야기 김 재 황 서귀포 그 동쪽인 하도리 앞바다에 오순도순 숨결 모은 섬 하나가 있답니다, 더우면 흰 꽃 덮이는 토끼섬이 있답니다. 밖으로 바위 눕고 안에는 모래인 섬 세 마지기 넓이지만 훌륭한 풀 산답니다. 머물 곳 가장 위쪽에 문주란이 산답니다. 추워도 늘푸른잎 크게 펼쳐 내보이면 남제주도 바다 위로 어린 섬이 뜬답니다. 기뻐서 둥근 씨 물고 아기 섬이 뜬답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6
홍도 이야기/ 김 재 황 홍도 이야기 김 재 황 새벽에 목포에서 먼동 밟고 배를 타면 점심때가 되기 전에 닿는 섬이 있습니다, 바닷가 이어진 길이 오십 리쯤 보이는. 소나무 따라가는 사람이 바람 안고 힘겹게 일군 텃밭 높은 돌담 둘렀어도 이웃한 초가지붕은 어깨 짜고 앉지요. 지금은 거북바위 긴 졸음에 잠기는데 살다 보면 흑비둘기 짧은 울음 퍼집니다, 깃대봉 지는 노을빛 물든 숲을 흔들며. (2004년) 동시조 2022.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