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조 269

저 남쪽 한라산에/ 김 재 황

저 남쪽 한라산에 김 재 황 환하게 동이 트고 잿빛 구름 새겨진 날 장끼와 그 까투리 지닌 거리 길게 끌어 철쭉꽃 지고 나도록 내 마음에 감깁니다. 햇살은 겨우 들고 바람 소리 넘치는 곳 한란과 또 새우란 더운 웃음 살짝 물고 앞바다 껴안은 삶이 우리 눈에 보입니다. 산들을 곱게 살려 물빛 안개 덮이는 밤 억새와 저 먼나무 둥근 하늘 닿는 손짓 고갯길 끄는 날개로 어린 꿈을 깨웁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6

지금쯤 남쪽 섬에/ 김 재 황

지금쯤 남쪽 섬에 김 재 황 말없이 품을 여는 마음 넓은 바다인데 안겨서 눈감으면 물비늘이 돋는 낯빛 기러기 나는 곳 너머 꽃바람이 달려올까. 산꼭대기 쌓인 눈도 하릴없이 몸을 풀어 살포시 얼굴 들고 웃음 짓는 그 유채꽃 은어 떼 노는 기척에 노랑나비 눈을 뜰까. 어쩐지 하늘 밖을 저녁놀이 더듬더니 이 아침 이슬비에 머리 젖는 녹나무 숲 흰 사슴 오는 길 저쪽 꽃구름도 흘러갈까. (2004년)

동시조 2022.09.16

아, 임진강에도/ 김 재 황

아, 임진강에도 김 재 황 얼음이 풀리면서 물굽이가 서럽더니 가고 없는 잉어 떼들, 비늘들이 반짝인다, 언제쯤 다시 온 뒤에 지느러미 펼칠까. 나루에 버들개지 빈 가지로 모여들고 갈 길 먼 철새 떼들, 날개깃을 다듬어도 물에 뜬 산봉 그림자 어느 꿈길 머무나. 강물을 휘저으면 갈대숲이 일어선다, 홀로 타는 진달래꽃, 북녘까지 밝히는데 맨가슴 덜 깬 잠 속에 저녁놀이 잠긴다. (2004년)

동시조 2022.09.15

누나와 봄소식/ 김 재 황

누나와 봄소식 김 재 황 발소리 살짝 들고 보슬비가 내리더니 가지마다 불거진 눈 쓰다듬나 누님 손길 산언덕 가물거릴 듯 꽃향기가 납니다. 말소리 길게 물고 봉우리들 일어서면 흘러가는 하얀 구름 바라보나 누님 눈길 산골짝 돌아 나가니 함박꽃이 핍니다. 물소리 듬뿍 이고 초승달은 떠나는데 저문 뜰에 앉았어도 밝게 뜨나 누님 마음 꽃구경 나갈 것 같은 볼우물을 봅니다. (2004년)

동시조 2022.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