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시조 30편) 21. 고니 고 니 김 재 황 모여 앉기 좋은 자리 잘 마른 갈대숲 찾아 좋은 일 모두 비치는 물빛 가슴을 꿈꾸며 하얗게 짚어 나간 길, 또 한 차례 눈이 온다. 넓게 펼친 저 하늘에 그 가벼운 깃을 얹고 힘껏 뻗은 두 다리로 흰 구름을 밀어 낼 때 멀찍이 두고 온 호수 안고 웃는 임의 소식. 정성껏 지어야 한다, 밝은 .. 시조 2008.11.18
(자선시조 30편) 19. 셰르파가 되어 셰르파가 되어 김 재 황 얼마큼 끈을 조여야 옮기는 발이 편할까. 까만 눈동자들 모두 내 가슴에 품고 나서 가난을 앞장세우고 높은 산을 타야 하니. 등을 누르기만 하는 짐 덩이를 고쳐 메고 나른히 늘어지는 긴 능선을 접어 올리며 아직은 쉴 수 없는 걸음 돌아보지 않는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저 여.. 시조 2008.11.16
(자선시조 30편) 17. 이름에 대하여 이름에 대하여 김 재 황 얼마큼 안고 살아야 나와 한 몸을 이룰지 대문 밖에 내걸어도 낯이 설게 느껴지고 밤마다 날 찾는 소리, 꿈결처럼 들려온다. 목숨보다 중하다고 늘 말하며 살았으나 바람 앞에 섰을 때는 너무 초라한 내 깃발 두 어깨 축 늘어뜨린 그림자를 끌고 간다. 한 걸음씩 조심스레 착한 .. 시조 2008.11.13
(자선시 30편) 30. 가마솥을 보면 가마솥을 보면 김 재 황 어느 부엌에 걸려 있는 너를 보면 그 집의 후한 인심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그 크고 우묵한 가슴으로 얼마나 많은 이의 배고픔을 달래 왔을까. 네가 마당 한쪽에 내어 걸리니 그 하루는 즐거운 잔칫날, 온 동네 사람들이 배를 두드릴 수 있다. 너를 위해 마른 장작을 지피고.. 시 2008.10.25
(자선시 30편) 29. 시원한 고요 시원한 고요 김 재 황 나무 밑에 그 가슴만한 넓이로 물빛 그늘이 고여 있다. 그 안에 내 발을 들이밀었다가 아예 엉덩이까지 밀어 넣는다. 고요가 시원하다. 그때, 개구쟁이인 바람이 달려와서 그늘을 튀기고 도망간다. 큰나무 그 깊은 나무 아래에서는 온갖 것들이 이리 어리다. 시 2008.10.24
(자선시 30편) 27. 숫된 새벽 숫된 새벽 김 재 황 안개를 밟고 산을 오른다. 고요에 싸여 있는 먼동 다듬어지지 않았으므로 들쭉날쭉한 가난한 나무들, 어둠을 벗고 숲이 일어서기도 전에 벌써 기침하는 산 울림만이 손끝에 남고 찬란한 느낌으로 무릎을 꿇는다. 그분은 눈빛 찬찬히 내려다보시는데 나는 내 마음밖에 드릴 게 없어.. 시 2008.10.22
(자선시 30편) 22. 지팡이 지팡이 김 재 황 네 걸음은 구름처럼 가벼웠다. 길이 멀고 험할수록 너는 나보다 한 발짝 앞에서 이 땅의 시린 가슴 조심스레 두드려 가며 산을 만나면 산을 넘고 강과 마주치면 강을 건넜다. 그래도 내 젊음이란 천방지축이어서 내민 네 손길 뿌리치고 저만치 홀로 달려가 보기도 했었지만, 결국 작은 .. 시 2008.10.17
(자선시 30편) 16. 시 읽으러 시 읽으러 김 재 황 내가 들에서 데려다가 남몰래 가꾸어 온 마음 속의 작은 풀 한 포기 어느 틈에 다 자라서 꽃을 피웠는가. 가슴을 열자, 먼 곳에서 나비 한 마리 내 시 읽으러 나풀나풀 날아온다. 시 2008.10.10
(자선시 30편) 13. 사랑놀이 사랑놀이 김 재 황 어디만큼 쏘아 올렸나. 우레 소리로 홰를 차고 날아가서 번개처럼 깃을 펴고 꽃피운다. 높이 뿌려놓은 별빛 밟으며 하나로 어우러져 춤을 벌인다. 눈빛 뜨겁게 마주 닿으면 차가운 가슴에도 불꽃이 필까. 저 하늘에 피가 돌아서 어둠의 갈피마다 꽃물 들이고 타다가 스러져서 별을 .. 시 2008.10.07
(자선시 30편) 12. 라이따이한 라이따이한 김 재 황 눈 감으면 더욱 멀기만 한 아버지의 나라 빛바랜 사진 속 아버지의 얼굴 그리며 한 장의 편지를 쓴다. 아직도 알아내지 못한 아버지의 주소 그 아득한 공간, 등에 꽂히는 눈총을 털어내고 밤마다 은하수를 건너서 한 장의 젖은 편지를 쓴다. 이제도 아물지 못한 이별의 상처와 먼 .. 시 2008.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