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산행기(4) 헬기장은 작은 운동장만큼 널찍했는데, 그 곳에서 쉬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나도 넓게 기지개를 켜며 사방을 둘러보니 마침 꽃을 가득 피운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갔다. 이 조선소나무는 우리의 나무다. 위의 길쭉한 게 수꽃이다. 건드리니 꽃가루를 내뿜는다. 그리고 귀여운 .. 바람처럼 구름처럼 2010.05.23
(다시 시조 30편) 7. 터득 터 득 김 재 황 잘사는 모습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지 참으로 오랜 동안 나는 알지 못하였네. 욕심껏 열심히 살면 되는 줄만 알았네. 넓은 땅 차지하고 편하게 누리면 될까 높은 자리 올라서서 으스대면 되는 걸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대체 답은 무엇인지. 눈 내린 다음날에 홀로 눈길을 걷다가 눈이 .. 시조 2009.06.28
(다시 시 30편) 8. 모두 젖는다 모두 젖는다 김 재 황 어둠에 잠기면 남몰래 하늘을 바라보며 읊고 있는 나무의 시를 듣는다. 너무나 시리다. 물결은 흘러가고 물소리만 남은 시 가지를 딛고 내린 달빛이 그 위에 몸을 포개고 시가 닿는 자리는 모두 젖는다. 시 2009.05.25
(다시 시 30편) 7. 비워 놓은 까치집 비워 놓은 까치집 김 재 황 미루나무 꼭대기에 높이 지은 집 하나 지붕이 아예 없으니 오히려 맑고 밝은 달빛이 정답게 내려앉는다. 그분 쪽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앉으니 고운 손길이 바닥을 가볍게 쓰다듬는다. 한꺼번에 많은 비가 쏟아져도 그치면 보송보송 잘 마르는 자리 때로는 사나.. 시 2009.05.23
(자선시조 30편) 13. 황토의 노래 황토의 노래 김 재 황 고구마 푸른 줄기 기어가는 그 밭이랑 우리네 지닌 마음 아주 닮은 흙빛이다. 맨살에 속살로 닿아 따뜻함이 느껴지는. 빈터마다 호박 심는 내 가슴은 촌스럽고 눈웃음 곱게 짓고 그대 오는 모습 먼데 흙먼지 누른 그 곳에 고향 가는 길이 있다. 황소울음 젖어 있는 소나무 선 언덕.. 시조 2008.11.09
(자선시 30편) 26.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김 재 황 불쑥 솟은 연꽃이 활짝 웃으며 살짝 숨을 들이마신다. 바람이 잔가지를 켜서 들려주는 가느다란 음악에 맞춰 아름다운 율동을 내보인다. 물속에서 춤추는 일이 어찌 쉬우랴 남몰래 연꽃도 헤엄치고 있다 넓게 펼친 연잎 그 아래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발, 발, .. 시 2008.10.21
(자선시 30편) 22. 지팡이 지팡이 김 재 황 네 걸음은 구름처럼 가벼웠다. 길이 멀고 험할수록 너는 나보다 한 발짝 앞에서 이 땅의 시린 가슴 조심스레 두드려 가며 산을 만나면 산을 넘고 강과 마주치면 강을 건넜다. 그래도 내 젊음이란 천방지축이어서 내민 네 손길 뿌리치고 저만치 홀로 달려가 보기도 했었지만, 결국 작은 .. 시 2008.10.17
(자선시 30편) 14. 혈서 혈 서 김 재 황 세상을 더듬던 손가락 끝 가장 가려운 살점 베어낸 자리에서 전신의 아픔보다 더한 꽃이 핀다. 그늘진 쪽에 서서 몇 줌 스며든 햇빛에 눈멀지 않고 오직 순수하게 펼친 무명 위에 뜨거운 마음을 적는 아, 속으로 불붙는 나무의 모습 찬바람에 붉은 꽃이 진다. 빛나던 잎에 하나 둘 피가 .. 시 2008.10.08
(자선시 30편) 6. 한란아, 너는 어찌 한란아, 너는 어찌 김 재 황 너는 어찌 똑같은 풀로 태어나 귀한 존재가 되었는가. 너는 어찌 외롭고 그늘진 곳에서 젖은 시름을 견디는가. 너는 어찌 추운 계���에 꽃 피어 매문 품격을 지키는가. 너는 어찌 잡혀 온 몸이면서도 높은 자리에 앉았는가. 너는 어찌 가난한 나에게로 와서 슬픈 의미로 .. 시 2008.10.01
(자선시 30편) 3. 치자꽃 향기 치자꽃 향기 김 재 황 오늘은 그가 냉수 한 바가지 달랑 떠서 들고 나를 찾아왔다. 물푸레마음이 들어앉았던 물인가 맑은 하늘이 가득 담기어 있다. 내가 받아서 마시니 단박에 온 세상이 파랗다 나는 무엇으로 손님을 대접해야 하나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다. 내가 그저 활짝 흰 이를 내보이니 그는 답.. 시 2008.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