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서 있던 자리에는 간판 그림 한 장만---. )
아, 숭례문
김 재 황
온 국민이 자랑하던 우리나라 국보1호
서울로 오는 손님 맨 먼저 맞던 문인데
어느 날, 불길이 솟아 잿더미로 만들었다.
길고 긴 세월동안 당당히 서 있던 모습
이제 우린 꿈에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겹처마 들썩인 소리 시린 귀에 맴돈다.
문이라고 어찌 모두 같은 문이란 말인가
아무리 좋은 솜씨로 공들여서 만들어도
또 하나 새로운 문이지, 옛날 그 문 아니다.
타 버린 문 앞에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어서도 안 되는 법
다시는 이런 일 없게 문화재를 아끼자!
(시작 노트)
금년 2월, 너무나 어이없게도 우리는 국보 하나를 잃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여러 국보 중 제1호인 숭례문을 잃어버렸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줄곧 서울에서 다녔다. 더욱이
내가 살던 집은 신문로에 있었고 내가 다닌 중학교(1955년~1957년)는 선린중학교였다. 그래서 날마다 서울역을 거쳐서 전차를 타고 학교를 다녔는데, 등교 때와 하교 때는 어김없이 숭례문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 숭례문에 대한 우스갯소리 하나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어느 시골 사람이 서울 구경을 하고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허풍을 쳤다고 한다.
“야, 서울은 대단하더라, 서울역을 나가니 그 앞에 커다란 문이 떡 버티고 있는데, 그 문이 어찌나 큰지, 문지방이 무릎까지 오더라.”
숭례문에 문지방이 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나는 아직 어렸을 때였기에 그 말이 긴가민가하여 하루는 직접 확인하러 간 적도 있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만큼 마음으로 가까웠던 숭례문이었다. 그런데 그 문이 화재를 만나서 몇 시간 만에 모두 타 버리고 말았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는가. 그저 말문이 막혔다.
숭례문은 조선시대에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이었단다. 태조4년(1395년)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7년(1398년)에 완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600년 이상을 우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었다. 물론, 세종29년(1447년)에 고쳐 짓기도 했고, 성종10년(1479년)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고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 숭례문은 그 지붕이 아름다웠다. 이를 가리켜서 ‘우진각지붕’이라고 했던가. 겹처마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펄럭거리며 하늘로 오를 듯했다. 앞으로 복원될 이곳의 문은, 더욱 아름답고 견고하며, 특히 완벽한 방화시설을 갖추어서 오래오래 보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일을 거울로 삼아서 문화재를 더욱 아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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