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21) 유년학교에 들어가다

시조시인 2008. 9. 15. 06:58

(21)

이제 나폴레옹은, 군인이 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유년학교에 들어왔으니, 그만큼 희망에 가까워졌습니다. ‘희망’이라는 두 글자 중에서 첫 번째 글자인 ‘희’(希)에 이 말의 속뜻이 숨어 있지요. 놀랍게도, 이 ‘희’는 점괘를 가리키는 육효(六爻)의 ‘효’와 ‘수건 건’(巾)이 모여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이는, 앞으로의 운수를 알려 줄 점괘를 수건이 가리고 있는 형국이므로, 점괘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앞날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는 뜻이 되지요. 그러나 지금은 ‘앞일이나 자신의 이해에 대한 바람, 또는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뜻하는 말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게 있습니다. ‘무슨 일이나 그 시작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를 두고 한문으로는 ‘행원필자이’(行遠必自邇)라고 합니다. 이 또한 ‘먼 길도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됨’을 이르는 말이지요. 중국의 사서(四書) 중 하나인 ‘중용’(中庸)에 들어 있는 글입니다.

절대로 잊어서도 안 되고 잊을 수도 없는 목적이, 나폴레옹에게는 있습니다. ‘목적’(目的)은 원래 ‘눈처럼 생긴 과녁’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활을 잘 쏘는 젊은이’를 사위로 얻고자 했습니다. 그는, 공작의 깃털을 과녁으로 내놓은 후, 그 깃털에 새겨져 있는 눈처럼 생긴 무늬의 한가운데를 맞히는 젊은이를 사위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딸이 워낙 아름다웠으므로, 많은 젊은이들이 그 과녁을 맞히려고 몰려왔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그 눈 모양의 과녁을 보기 좋게 꿰뚫어서 사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답니다. 이렇듯 ‘목적’이란 말은, ‘공작 깃털에 있는 눈 같은 무늬의 과녁’이라는 데에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나폴레옹의 사명은 중대합니다. 훌륭한 군인이 되어서 도탄에 빠진 코르시카 사람들을 구해 내야 합니다. ‘도탄’(塗炭)에서, 본래 ‘도’는 ‘진흙’을 가리키고 ‘탄’은 ‘숯’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도탄’은 ‘진흙 구덩이나 숯불에 빠졌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는 진구렁이나 숯불 속에 있는 것처럼 ‘매우 고통스러운 지경’을 이르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유년학교에 입학하고 나자, 학교에서 지정한 정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 정복을 입으면 모든 학생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보입니다. ‘천편일률’(千篇一律)이란, ‘천 편이나 되는 글이 오로지 한 가지 운율로만 되어 있다.’는 뜻으로, ‘시문들이 모두 비슷한 글귀나 형식으로만 되어 있으므로 참신한 맛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지금은 그 뜻이 넓어져서 ‘사물이 모두 판에 박은 듯이 똑같아서 새롭게 독특한 개성이 없고 재미없음’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교복(校服)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교복은, 1886년에 입은 이화학당의 다홍색 무명저고리였다고 합니다. 머리는 길게 땋거나 트레머리를 하였고, 외출할 때에는 쓰개치마나 장옷을 썼다고 하는군요. 겨울에는 갖저고리를 덧입거나 솜두루마기를 입었답니다.

양복을 제일 먼저 교복으로 채택한 학교는 숙명여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자줏빛 원피스를 입었는데, 1910년에는 이를 폐지했습니다. 그 대신, 겨울에는 자줏빛 치마저고리를 입었는가 하면, 여름에는 자줏빛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 후, 교복을 양복으로 정하여 입기 시작한 시기는, 1930년대 초반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와는 달리, 1910년까지 남학생들은 바지저고리 위에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1915년경부터는 양복을 교복으로 입는 학교가 생겼다고 전합니다. 그 때의 교복으로, 겨울에는 바지저고리에 오버코트나 망토를 입기도 하였답니다. 그리고 1920년대에는 아주 많은 학교의 학생들이 양복을 교복으로 입었다고 합니다. (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