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19) 배를 타고 프랑스로 떠나다

시조시인 2008. 9. 13. 06:05

(19)

마침내 프랑스로 떠나는 날이 왔습니다. 항구에까지 어머니가 전송하러 나왔습니다. 항구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나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귤밭을 가꾸며 10년 동안을 살았는데, 이따금 항구로 나가서 돌아오거나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 때 그렇게 나는, ‘회자정리’라는 말과 의미를 익혔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는 ‘유교경’(遺敎經)에 나오는 말이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을 뜻합니다. 그리고 ‘유교경’이 무슨 책인가를 알기 쉽게 말하자면, 부처가 ‘입멸’할 때에 설한 최후의 ‘계율’을 적어 놓은 책‘입니다. ‘입멸’(入滅)은 불교에서 ‘수도하는 스님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며, ‘계율’(戒律)은 ‘스님이 지켜야 할 규율’을 일컫는 말입니다.

나폴레옹과 그 형,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가 탄 배는 서서히 항구를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손수건을 흔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눈시울’에서 ‘시울’은 본래에 ‘고깃배 가장자리’를 나타내는 말이었지요. 길둥글게 찢어진 배의 가장자리 생김새가 눈과 입의 모양을 나타냄으로써 ‘눈시울’이라든가 ‘입시울’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지금에는, ‘눈시울’이라고 하면, ‘눈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속눈썹이 난 곳’을 가리킵니다. 흔히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말을 쓰지요. 이는, 감정이 북받쳐서 울음이 나오려고 할 때는 눈의 가장자리가 먼저 발갛게 되는 데에서 왔답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코르시카 섬이 가물가물 ‘청산일발’로 보였습니다. ‘청산일발’(靑山一髮)은 ‘먼 수평선 저쪽에 푸른 산이 한 올의 머리칼처럼 보이는 것’을 이릅니다. 그러자, 형인 조제프가 속으로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무리 강한 마음을 지닌 나폴레옹일지라도, 그 때에는 그의 눈에 눈물이 비치고 있었을 겁니다.

이제 나폴레옹은 ‘임중도원’의 고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임중도원’(任重道遠)이란, ‘등에 진 물건은 무겁고 길은 멀다.’라는 말로, ‘큰일을 맡아서 책임이 무거움’을 일컫습니다. 막중한 임무를 지고 떠나는 길입니다. ‘막중’(莫重)은 ‘매우 중요함’을 말합니다.

프랑스는 결코 가까운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편편한 육지도 아니고, 큰 파도가 넘실거리는 ‘망망대해’에 배를 타고 가는 길입니다. ‘망망대해’(茫茫大海)는 ‘아득히 넓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말합니다. 아무리 큰 배라고 할지라도, 넓고 넓은 바다에 떠 있으면 ‘일엽편주’일 뿐입니다. ‘일엽편주’(一葉片舟)란, ‘한 척의 조각배’를 이릅니다. 배가 몹시 춤추었겠지요. 그러니 멀미는 얼마나 심했을까요? 만일에 토하기라도 했다면 참으로 남세스러웠을 겁니다. ‘남세스럽다’의 본뜻은, ‘남의 웃음거리가 될 만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남우세스럽다.’가 줄어서 된 말이지요. 지금은 ‘남에게 조롱이나 비웃음을 받을 만하다.’로 쓰입니다. 흔히 ‘남사스럽다.’나 ‘남새스럽다.’라고 잘못 쓰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이나 항해를 하였다니 지루하기도 했을 터이고, 그리고 울렁거림을 참노라면 녹초도 되었을 터입니다. ‘지루하다’의 본말은 ‘지리(支離)하다.’입니다. 이는, ‘어떤 사물이나 상황이 서로 갈라지고 흩어져 있어도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형태를 알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 바뀌어서 오늘날에 쓰이는 뜻은, ‘같은 상태가 너무 오래 계속되어 진저리가 날 지경으로 따분하다.’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녹초가 되다.’는, 본뜻이 ‘녹은 초처럼 되어서 흐물흐물해지거나 보잘 것 없이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바뀌어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뜻은, ‘아주 맥이 풀려서 늘어진 상태’를 일컫지요. ‘파김치가 되었다.’와 비슷한 말입니다. 파는 평소에 빳빳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갖은 양념을 해서 김치를 담가 놓으면 잦아든 양념 때문에 까부라져서 풀이 죽게 됩니다. 이럴 경우, ‘기사지경’(幾死之境)이라고도 합니다. ‘거의 죽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1951년, 나폴레옹과 같은 나이였던 10살 때에 나도 먼 바다를 건넌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6.25전쟁이 일어난 다음해였어요. 일 년 동안은 시골에 숨어 살다가, 아버지를 찾아서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어찌나 멀미가 심했던지, 제주항에 닿은 후에서야 가까스로 ‘기사회생’했지요. ‘기사회생’(起死回生)이란,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남’을 이릅니다. (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