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똬리
김 재 황
결마다 더운 숨결 고운 사연 담겼느니
목숨을 이어 가듯 잘게 쪼개 엮은 왕골
물동이 쓸린 자리가 빛깔 잃고 부서진다.
정화수 가득 채워 철철 넘치던 인정미
오로지 인내하는 미덕 하나 입에 물면
정수리 눌린 아픔도 손때 묻어 윤이 난다.
샘처럼 머리 드는 수줍음도 함께 이고
물 긷는 저 아낙네 낡고 삭아 덧댄 일상
몸뚱이 젖은 민속만 시름 끌며 멀어진다.
(2002년)
(시작 노트)
‘똬리’란, 물건을 일 때 머리 위에 얹고 짐을 괴는 고리 모양의 물건을 말한다. 이 똬리를, 나는 어릴 적에 많이 보았다. 특히, 시골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동이에 담아 이고 오솔길을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똬리를 묶은 끈을 길게 늘여 입에 살짝 물고, 이따금 물동이가 출렁거릴 때마다 조금씩 흘러내리는 물을 털어 내며 걷는 그 모습. 그렇다. 여인은 꽃보다도 아름다웠다.
이 똬리는 짚으로 만들었다. 둥글게 빙빙 틀어서 만들면 되는데, 솜씨가 좋은 사람이라면 쉽게 만들 수가 있다.
똬리의 역할은 ‘그릇받침’이다. 토기 중에도 똬리 모양의 그릇받침이 있다. 대가야에서 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군곡리 조개더미의 삼한 시기 문화층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이 출토되었으나, 대가야의 것과 연관 짓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토기를 받치는 똬리로, 토기 아닌 다른 재질로 만든, 유사한 형태의 그릇받침은 널리 쓰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삼한시대의 나무로 만든 받침도 발견되었다.
예전에 전래놀이로, ‘띠바리 묻기’라는 게 있었다. 이는, 풀따먹기의 일종인데, 농촌의 총각들이 즐겼다. 여기서 말하는 ‘띠바리’는 ‘똬리’의 사투리이다.
똬리는 지금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의미를 가슴에 새겨 둘 필요가 있다. 지금은 ‘받침’이다. 즉, 위에 올라앉는 우두머리보다 밑에서 그를 돕는 ‘참모’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