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백송을 바라보며
김 재 황
대세를 거슬러서 자각의 침 치켜든 채
저물어 가는 세상 탄식하며 깨운 세월
이 시대 앓는 숨소리, 그대 만나 듣습니다.
켜켜이 떨어지는 일상 조각 모두 모아
저승꽃 피워 내듯 몸 사르며 걸어온 길
그대가 남긴 발자취, 내가 지금 따릅니다.
뒤꼍의 외진 자리 이제 다시 찾아가서
남루한 입성 걸친 그림자를 밟고 서면
하늘에 오른 흰 구름, 그대 닮아 보입니다.
(2002년)
(시작 노트)
1987년, 나는 신춘문예만을 고집하지 않기로 하고, 월간문학 신인 작품상 모집에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그 무더운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이었다. 그때의 기분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이제는 갈 길이 정해졌으니, 그 길만 걸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곧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가입되었고, 여러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그런 중에도 나무들과의 교류는 이어졌다. 내가 서울에서 그때부터 사귀게 된 나무는, 조계사 경내에 있는 ‘회화나무’와 옛 창덕여고 교정인 ‘재동’(齋洞)의 ‘백송’, 그리고 새문안교회 뜰에 있는 ‘느릅나무’ 등이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그들을 만나러 다녔다. 특히 나는 백송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나무를 친구로 사귀면 그처럼 든든하고 편안할 수가 없다. 게다가 높은 품위를 지닌 나무일수록, 오래 사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나무를 닮게 되어서 향기로운 품격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사귀고 있는 이 백송은 나이가 6백 살 정도로 추산되고, 키는 15m에 이른다. 이 백송은 1962년 12월 3일에 천연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서울에는 이 나무보다 더 큰 백송이 있었는데, 바로 통의동(通義洞)의 백송이다. 나무 높이가 16m에 이르렀으나, 폭풍의 피해로 쓰러져서 고생하다가 1992년 초에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재동의 백송보다 작은 ‘수송동(壽松洞) 백송’을 조계사 경내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백송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제9호이다.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