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조

연시조 1편

시조시인 2022. 9. 29. 06:09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아내

                                           김 재 황

 



   언제나 그 걸음은 흘러서 가는 춤사위
   무성한 월계수를 가슴 안에 세워 두고
   하늘은 너무 푸르네, 안개 가득 머금었다.

   밤길이 멀었는데 벌써 달은 기우는가,
   문풍지 울음 뱉는, 결 삭은 툇마루 앞에
   그 숨결 부서져 내린 서릿발이 한 사발.

   출렁인 서러움은, 물빛 시린 그 미소는
   기러기 지친 날개 휘어져 걸린 고달픔
   그래도 그대 얼굴은 내 꿈마다 밝게 뜬다.
                                                (2002년)


  (시작 노트)

 내가 시인의 길을 가고자 하였을 때, 아내는 극구 만류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가장이라는 사람이 돈을 열심히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릴 생각은 안 하고, 돈 한 푼 생기지 않는 시를 쓰겠다고 나섰으니, 어디 그게 말이나 되는가.
  그러나 나는 막무가내였다. 말리지 못한 아내는 자포자기했다. 지금도 내가 시인의 길을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다만, 내가 하는 일에 무관심하게 방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마음이 무겁다.
  아내는 늘 돈에 쪼들리며 산다. 어디에 가서 어른 노릇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공연히 시인의 길을 걷겠다고 나서서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가 고생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속이 뜨끔해 온다. 
  이 작품은 월간문학을 통해서 발표되었는데, 어떤 문우가 이 작품을 읽어 보고는 아부성이 다분히 들어 있다고 평했다. 그렇다. 나는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었다. 의도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이 작품 안에 그러한 내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발표한 지가 꽤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아내는 이런 작품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내는 내 작품을 일절 읽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에 재미있는 일들도 있었다. 방송국에서 대담도 나누었고, 텔레비전 생방송 프로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신문 지상을 통해서 ‘나무 시인’이라는 애칭도 얻었으며,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의 기행문이 수록되기도 했다.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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