삵/ 김 재 황 삵 김 재 황 밤이면 살금살금 산과 들로 나서는 때 풀잎이 흔들려도 눈이 반짝 크게 되고 멋지게 노래 긴 끈을 호기심이 찾는다. 하늘에 달이 뜨면 그림자를 낮게 끌고 그늘로 들어서는 갈색 바탕 검은 무늬 꼬리는 가락을 탄 듯 가로띠가 빛난다. 어디서 들려오나 맑게 열린 냇물 소리 작지만 세운 발톱 날카로운 어둠 아래 거슬러 물길 오르는 은빛 시를 움킨다. 대표 시조 2022.11.03
여창 가곡을 들으며/ 김 재 황 여창 가곡을 들으며 김 재 황 강물이 벗이 되어 한바탕을 이룬 소리 오늘은 가슴 열고 우면당에 와서 듣네, 예전에 얽혔던 사연 풀어내는 그 소리. 거문고 앞세우고 대금 등은 뒤에 두며 게다가 장구까지 몇 이웃을 옆에 끼고 날 듯이 한복차림에 앉은소리 여는 임. 느긋이 돌아가는 그 가락을 잡다 못해 저 홀로 어둠길에 잠시 잠깐 꾸벅이면 가슴에 시린 물소리 처진 어깨 흔드네. 대표 시조 2022.11.03
묵혀 놓은 가을엽서/ 김 재 황 묵혀 놓은 가을엽서 김 재 황 하늘이 몸을 빼니 그 물소린 빨리 쫓고 간 길이 너무 멀면 귀를 먹게 된다지만 이 밤도 지친 발걸음 지척대는 임 기척. 타다가 지고 마는 꼭 단풍잎 닮은 아픔 떨칠 수 끝내 없는 아쉬움이 눈에 닿고 아직껏 띄우지 못한 빛이 바랜 내 소식. 고요를 깬 바람이 울며 안는 보름 달빛 외로운 가슴에다 녹차 두 잔 따라 놓고 긴 어둠 휘젓고 있는 그대 손을 잡는다. 대표 시조 2022.11.03
넝마/ 김 재 황 넝마 김 재 황 처음에 마주한 건 진열장 밖 바로 너지 잘 빠진 박음질에 놀랄 만한 빛깔 무늬 단번에 네가 골랐고 우리 둘은 짝 됐지. 만난 후 많은 날을 너와 나는 찰떡궁합 어디든 네가 가면 나도 또한 함께 갔지 누구나 나만 보고도 금방 넌 줄 알았지. 아직 넌 멋지지만 나는 이미 낡은 거야 착 붙은 때가 있고 올이 풀린 꼴이라니 제발 날 내버리진 마 걸레라도 되지 뭐. 대표 시조 2022.11.03
숲 아침/ 김 재 황 숲 아침 김 재 황 산새들 잰 울음에 단풍잎이 젖어 있다 멀찍이 기지개를 몰고 가는 산 메아리 간밤엔 마루턱 너머 풍악 소리 잦더니. 이슬로 눈물 빚는 별자리를 짚어 보면 들리듯 고운 음성 긴 빛으로 내려앉고 잎사귀 벌린 사이로 하늘 보는 얼굴들. 문 열린 골짝마다 물소리를 묻는 샘터 고뇌도 산과의 맛 깊은 연륜 새겼어도 먼동이 일군 고요에 불이 붙는 갈채여. 대표 시조 2022.11.03
동학사에서/ 김 재 황 동학사에서 김 재 황 골짜기 가린 숲에 머문 새는 멀어지고 꿈결에 뒤척이면 솔 냄새가 이는 바람 천수경 외는 소리만 기둥 위로 감긴다. 어둠을 밝혀 가는 믿음이 곧 하늘이라 구름은 문을 열어 저승까지 환한 달빛 관세음 젖은 눈길이 고운 미소 남긴다. 그림자 끌던 탑이 별자리에 앉고 나면 버려서 얻은 뜻은 산 마음을 따라가고 숙모전 가려운 뜰도 물빛 품에 담긴다. 대표 시조 202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