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잎이 지다/ 김 재 황 은행나무, 잎이 지다 김 재 황 울고픈 아이인데 귀싸대기 올린 듯이 싸늘히 바람 부니 옳다구나 우는구나, 때맞은 서러움으로 넋을 따라 구른다. 길이야 언제인가 끝나는 곳 마련되고 발버둥 늘였다고 피할 수도 없겠는데 심술에 나뭇가지들 바라본 이 찌른다. 북녘엔 검은 구름 가위눌릴 일이라도 들개는 짖어대고 기러기는 또 머무나, 꿈길만 친친 동이고 어지럼을 사른다. 대표 시조 2022.11.06
나야말로 뚱딴지/ 김 재 황 나야말로 뚱딴지 김 재 황 물드는 가을보다 열리는 봄 좋아하니 아직도 철이 없는 나야말로 뚱딴지야 날마다 꽃밭 찾아서 나들이를 떠나지. 흐르는 강물보다 우뚝한 산 껴안으니 늙음을 잊고 사는 나야말로 뚱딴지야 눈뜨면 사랑 주우러 오솔길을 거닐지. 잘생긴 얼굴보다 고운 마음 따라가니 척 봐도 영락없는 나야말로 뚱딴지야 언제나 휘파람 불며 구름집을 가꾸지. 대표 시조 2022.11.06
정자나무/ 김 재 황 정자나무 김 재 황 안개 낀 꿈속에서 걸어 나온 허울인데 뒷산과 시냇물을 벌린 품에 감싸 안고 넉넉히 큰 몸짓으로 달을 향해 웃는다. 이따금 저린 무릎 주무르며 앉은 자리 잊었던 조상님들 굵은 함자 펼쳐 들고 말없이 가꾸는 고향 하얀 소식 보인다. 살과 살 비비면서 살려 가는 불씨인가, 정다운 이야기를 줄에 꿰어 목에 걸고 등 넓은 느티나무가 동구 밖을 지킨다. 대표 시조 2022.11.06
관악산을 바라보며/ 김 재 황 관악산을 바라보며 김 재 황 새롭게 눈을 뜨니 어제 숲이 아니기에 서둘러 일어서서 옷을 여민 오늘 아침 앞으로 더 오를 길도 새파랗게 보인다. 어딘가 숨어 있을 물소리에 귀를 열면 가파른 가슴에서 돌 하마가 다시 살고 바람에 높이 든 깃발 휘날리는 연주대. 저녁놀 물든 깊이 저 단풍은 빠져드니 산길이 솔을 따라 돌아드는 쪽빛 언덕 마지막 꿈 한 송이만 연꽃처럼 시든다. 대표 시조 2022.11.06
꿈/ 김 재 황 꿈 김 재 황 따뜻한 햇볕 아래 작은 꽃이 피어나면 기쁜 듯 즐거운 듯 맨몸으로 나서는데 무언가 느낄 것 같은 더듬이가 보이지. 가볍게 들녘 위로 바람처럼 그냥 훨훨 푸른 숨 부르는 곳 어디든지 찾아가게 옷보다 얇고 가벼운 두 날개를 지니지. 아무리 곱더라도 서두르면 절대 안 돼 향기가 손짓해도 마음 풀지 말아야 해 더 환히 눈에 띌수록 거미줄이 숨었지. 대표 시조 2022.11.06
오! 저 단풍/ 김 재 황 오! 저 단풍 김 재 황 내보인 네 슬픔이 어찌 그리 고운 건가, 뜨거운 그 빛깔에 절로 마냥 눈 적시며 온 가슴 모두 내주는 이 가을을 맞는다. 나무도 겨울 앞에 외짝 날개 펴는 건지 서늘히 바람 불면 날린 옷깃 여며 가듯 잎들이 두 눈 못 뜨게 울긋불긋 물든다. 떠나는 이들 모두 긴 발자국 두고 가니 숲과 숲 놓인 곳에 아픔 자락 쓸리는데 하얗게 눈 내릴 때는 잡아 봐야 모른다. 대표 시조 2022.11.06
추석날에 부르는 노래/ 김 재 황 추석날에 부르는 노래 김 재 황 그리운 그 사람은 어느 곳에 머무는가, 띠 풀고 나앉아서 느긋하게 열린 들녘 아득히 논두렁 위에 함께한 길 보인다. 다 듣게 그 이름을 손나팔로 소리치니 높은 산 낮은 골에 메아리는 살아나고 나루로 돛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구나. 어둠이 깊을수록 그 얼굴은 높이 뜰까, 뭐 그리 즐거운지 빙글대는 저 보름달 바람만 대숲 지나듯 내 마음을 흔드네. 대표 시조 2022.11.06
닭/ 김 재 황 닭 김 재 황 아침이 또 왔다고 목을 빼며 외쳐대도 잠에서 깨지 못한 숨결들이 많았을 때 수탉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게다. 힘들게 알을 낳고 둥지 안에 머물러도 노랗게 솜털 돋은 병아리를 못 본다면 암탉은 그 놀이터를 버려야만 할 게다. 어째서 사람 손에 길이 들게 되었으며 어떻게 언제부터 날 수 없게 되었는지 오늘은 너희 둘에게 묻고자 할 뿐이다. 대표 시조 2022.11.06
인삼을 앞에 놓고/ 김 재 황 인삼을 앞에 놓고 김 재 황 풀들을 알아보면 우리 몸에 이로운 것 어디에 좋겠는지 그 모양이 닮은 대로 조물주 크나큰 뜻이 담겨 있을 성싶다. 캐고서 바라보면 놀랄 만큼 사람 모습 골고루 모든 곳을 맑게 하지 않겠는가, 불로초 바로 그것이 따로 없을 성싶다. 아무리 먹은 나이 꼽아 봐서 많더라도 힘 있는 팔다리에 고운 넋을 지닌다면 세상에 꽃송이처럼 살 수 있을 성싶다. 대표 시조 2022.11.06